[칼럼] 수렴청정의 두 사례, 문정왕후 vs. 순원왕후
[칼럼] 수렴청정의 두 사례, 문정왕후 vs. 순원왕후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3.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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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수렴청정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발을 내리고 정치를 하는 것을 듣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발은 인체의 한 부분이 아니라 시야나 햇볕을 가리기 위해 화문석 등으로 만든 차양막을 의미한다. 공식적인 뜻은 왕이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했을 때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 즉 대비(大妃)나 왕대비가 왕을 대신해서 정사를 펴는 것을 말한다. 굳이 발을 드리운 것은 ‘남녀칠세부동석’으로 대표되는 엄격한 양성간의 구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즉 신하들이 함부로 대비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고, 전부 남성으로 이루어진 신하와의 엄밀한 구분에서 비롯된 것으로 예상된다.

수렴청정이 있는 경우는 앞에서 언급한데로 왕이 “왕이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했을 때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 즉 대비(大妃)나 왕대비가 왕을 대신해서 정사를 펴는 것”이다. 이 말을 굳이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수렴청정을 하는 사람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기존의 조선의 정치 지향점을 크게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왕이 정사에 참여할 나이가 되었을 때 큰 무리가 없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에 집중해서 조선시대의 수렴청정의 두 사례를 보자. 하나는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다. 문정왕후는 중종(中宗)이 세 번째로 맞이한 왕비이자, 중종의 다음다음, 즉 인종(仁宗)에 이어서 왕이 되는 명종(明宗)의 친어머니였다. 인종은 명종의 배다른 형제로, 중종이 두 번째로 맞이한 왕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아들이었으며, 재위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열두 살에 불과했던 명종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됐던 것이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기간은 8년. 그 기간 동안 문정왕후는 자신의 동생인 윤원형(尹元衡)과 그의 첩 정난정을 양팔로 삼아 국정을 펼쳤다.(농단했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만 객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렇게 쓰지는 않겠다.) 을사사화(乙巳士禍)를 배후조정해서 중전 시절 자신을 핍박했던 인종의 외척들과 인종을 지지했던 신하들을 숙청했고, 불교 부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을사사화는 인(仁)을 중시하는 조선 지배세력의 뜻과 반대되는 권력 투쟁의 결과였고, 윤원형과 정난정이 권력의 핵심에 자리 잡음으로서 외척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경계했던 당시의 풍조와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불교 부흥을 위한 노력은 기존에 성리학을 국가 지배의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던 조선의 정책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 결과 8년의 수렴청정 이후 명종이 직접 정치를 했을 때 윤원형과 정난정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불교 부흥의 상징이었던 보우(普雨)는 암살당했다. 그리고 문정왕후 스스로는 이런 평가를 받는다.

사신은 논한다. 윤비(尹妃)는 천성이 혹독하고 급해서 비록 임금을 대하는 때라도 말과 얼굴을 부드럽게 하지 않았고, 수렴청정(垂簾聽政)한 이래로 무릇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도 모두 임금이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불교에 마음이 고혹(蠱惑)되고 환관을 신임해 나라의 창고를 다 기울여 승도(僧徒)들을 봉양하고 남의 땅과 노비를 빼앗아 왕실의 재산만을 부유하게 하며 상벌(賞罰)을 함부로 해서 사람들에게 경계하고 권할만한 것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권세가 외척으로 돌아가 정사가 개인 가문에서 나오고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며 기강이 문란하고 국세(國勢)가 무너져서 장차 구원하지 못하게 됐었다. 다행히 명종 대왕이 전의 잘못을 깨달음에 힘입어 장차 크게 바로잡으려는 뜻이 있었는데, 정령(政令)을 베푼 지 오래지 않아서 문득 승하하니, 아, 슬픈 일이다. <『명종실록』 31권, 명종 20년 4월 6일 2번째 기사>

이와 반대되는 사례는 순원왕후였다. 순원왕후는 헌종과 철종 두 왕에 걸쳐 수렴청정을 한 색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당대 최고의 명문 가문이며 조선 왕조의 쇠퇴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박한 평가를 받는 세도정치의 핵심인 안동 김씨 가문 사람이었다.

두 명의 왕을 거친 당대 최고 권력을 가진 안동 김씨 가문의 대비. 그러나 그녀의 수렴청정 기간에는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권력을 휘두르기보다는 신하들과 의논해서 정무를 수행했고, 안동 김씨 가문이었지만 외척 가문 사이의 권력 균형에 신경을 썼으며, 오히려 왕권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조선 말기 혹독한 자연재해가 계속될 때 왕실의 재산을 풀어가면서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안동 김씨 가문의 김문근의 딸을 철종의 왕비로 맞이하게 함으로서 세도정치를 더욱 강화시켰지만, 수렴청정기간 동안 순원왕후의 정책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즉 외척을 경계하거나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주창했던 조선의 기본적인 지향점에서도 크게 벗어남이 없었고, 오히려 선정(善政)에 가까웠던 것이다.

2016년,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총선정국이다. 여당의 공천에 개입하고 있는 현직 대통령, ‘외부’ 인사가 야당을 바꾸려는 행태. 모두 수렴청정과 비슷하다. 역사는 2016년 여야의 공천을 어떻게 평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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