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한동안 우리나라를 뒤덮은 고전 열풍이 의외로 아직도 채 식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판단의 단초를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이라는 신간이 주목을 받고 있는 현상에서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세인트존스라는 유명한 학부중심 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에 대한 안내서이다. 리버럴아츠 칼리지는 하버드나 예일 등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명문대학과 다르게 교육을 중심으로 한다. 연구자 양성이 아니라, 교양인 양육에 목적이 있다.

세인트존스 칼리지와 고전 학습

세인트존스 칼리지의 명성은 (우리가 흔히 주목하는) 입학생들의 레벨이 아니라 고전 중심의 커리큘럼에 있다. 대학 재학 기간 중에 총 100권의 고전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중심 프로그램으로 삼지만, 여기에 운동과 음악, 실험과 외국어(불어와 라틴어) 등이 추가된다. 결코 만만한 과정은 아니다. 그러니 고전 독파가 전부인 지적 도락(道樂)의 여정으로 착각하면 곤란할 것이다.

한데 제목은 좀 유감스럽다. 고전100권 공부‘법’이라니 누가 봐도 자기계발서 같다. 이 책의 중심에 고전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공부법은 그 핵심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세인트존스에서 만난 고전 100권 이야기’ 정도가 되겠다. 더 나아가 말하자면, 저자 조한별이 배운 세인트존스 자체가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학부중심 교양대학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 고전학습 커리큘럼의 이수과정과 그 결실에 대해서 재기발랄하게 풀어나간다.

고전 학습과 자기 발견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은 (제목과 다르게)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을 고전을 통한 세속적 성공에 대해 말하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와 혼동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렇지 않다. 저자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게다. 고전 읽으면 천재가 된다고 주장한 적도 없다. 고전 읽으면 세상에서 성공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외려 고전을 통해 자기를 만나게 된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저자 조한별은 고전을 통한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저자는 숙련된 작가가 아니다. 그래도 <오마이뉴스>에 연재할 당시보다는 필력이 개선된 것 같지만, 글 자체는 여전히 소박하다. 하나 그건 아무래도 좋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저자의 소박한 글쓰기에 호감이 간다. 자기계발서 특유의 허장성세와 거리가 멀지만, 세련된 언변이나 화려한 자랑보다 낫다. 저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정신적 여정을 풀어나간다. 외려 나는 거기에서 작가가 교양대학에서 고전을 바르게 공부한 흔적을 엿보게 된다.

내가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에서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책이 학부중심 교양대학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고전 공부의 진정한 힘이 무언지를 잘 드러내어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고전의 바다에 뛰어들게 될 때에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저자 조한별은 바로 그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고전에 대한 마음이 있는 분들에게 일단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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