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괄의 난, 잘못된 논공행상(論功行賞)이 부른 참사
[칼럼] 이괄의 난, 잘못된 논공행상(論功行賞)이 부른 참사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4.21 2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논공행상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을 따져서 포상을 실시한다’는 뜻이다. 사전에 등장하는 뜻을 보면, “공적의 크고 작음 따위를 논의해 그에 알맞은 상을 줌”(네이버 사전)이라는 뜻이다. 주로 역사상 정변(政變)이나 반정(反正)이 일어난 후 여기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 대하여 포상할 때 쓰는 용어이지만, 현대의 정당한 정치적 승리에서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한 포상을 이야기할 때도 쓰이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괄의 난은 말 그대로 이괄이라는 사람이 1624년(인조 2) 정월에 일으킨 반란이다. 이괄이 반란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로 꼽는 것이 바로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괄은 무신(武臣)으로, 1622년(광해군 14) 함경북도병마절도사에 임명돼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할 즈음 평소 친분이 있던 신경유(申景裕)의 권유로 광해군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해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를 옹립한 인조반정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인조반정 성공 후 막상 이괄은 한성부판윤(지금의 서울시장)에 임명된 것이다. 목숨을 걸고 반정을 일으켰고 무신으로서 선두에 섰는데, 그리 높은 직책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1623년(인조 1) 포도대장을 지낸 뒤 평안병사 겸 부원수에 임명됐다. 그리고 이 해 윤10월 반정에 참가한 공신들의 공훈을 책정할 때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의 첫째가 됐다. 처음에 받은 직책도 높은 직책이 아니었는데, 인조반정의 논공행상 결과 1등공신에 책봉되지도 못한 것이다.

이괄의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불만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인조반정 당시 자신의 집에 숨어서 사태를 관망했던(이라고 표현하지만 우유부단하게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하지 못했던) 김류는 1등공신으로 책봉되어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으니, 그의 불만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일부 학계에서는 이괄의 난의 원인에 대해 이괄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 이유로 이괄이 한성부판윤에 임명된 뒤 포도대장을 거쳐서 평안병사 겸 부원수로 임명됐는데, 이것은 당시 후금과의 국제 관계에서 긴장이 커지고 있었고, 인조와 신하들이 후금과의 대립에 대한 대처에 무신인 이괄이 가장 적절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괄은 상당 부분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평안병사에 임명된 뒤 평안도 영변에 출진해 군사 훈련에 힘쓰는 한편 그 지방의 성책(城柵)을 보수해 진의 방비를 엄히 했다. 이것을 보면 이괄 역시도 후금 방어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았을 때 이괄이 논공행상에 크게 불만이 없었음을 보여준다고 이야기 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괄이 반란을 일으킨 원인에 대해 누명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괄이 부원수로 평안도에 있는 동안 서울에서 정권을 잡고 있던 세력이 그 반대 세력에 대하여 강력한 견제를 펼쳤고, 이괄 역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다. 그런데 북방 방어에 대한 의지가 있었고 인조반정을 주도했다면, 누명을 썼다고 반란을 일으킬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괄의 반란 음모는 무고임이 밝혀져서 이 고발을 한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누명 역시도 이괄의 반란에 원인이 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괄이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이 반역 누명이 모두 반란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합리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괄의 난은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반란사상 최초로 수도가 점령되었고, 이로 인해 인조가 수원으로 피난을 갔다. 또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서북지역의 군사들이 이괄의 세력에 많이 편입됐고,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기타 변방의 군사들이 투입됐다. 거기에다가 이괄의 난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후금으로 도망갔고, 이들이 후금의 길잡이가 됐다. 즉 이괄의 난이 훗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을 도모하고, 그 일이 성공했을 때 혹은 실패했을 때 공을 세운 사람에게 상을 주고 피해를 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대 총선이 끝났고, 각 정당에서는 선거의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는 벌을 줄 것이다. 그러나 정당을 패배시킨 것도, 정당을 승리로 이끈 것도 전부 국민들의 표심이다. 논공행상의 기준은 국민의 뜻이 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괄의 난의 사례처럼 국가 자체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인기기사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