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대통령의 이번 이란 방문에서도 어김없이 패션이 화제가 됐는데, 바로 ‘히잡’ 착용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히잡 착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이번에 방문한 이란의 문화를 존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성차별적인 문화를 받아들인 굴욕적 외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이 대통령의 히잡 착용과 관련해 논의가 많이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이슬람 문화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양측의 의견에 모두 일리는 있다. 이슬람에서는 여성의 히잡 착용을 스스로의 시선을 낮추고 성적 유혹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고 『코란』에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와 여러 율법학자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지극히 여성의 성적 욕망을 죄악시하고, 여성을 유혹의 주체로만 취급하는 여성비하적 규정이다. 또한 이전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서도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던 다른 나라의 여성 정치인들의 사례를 근거로 대통령의 히잡 착용이 굴육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히잡착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교가 일치돼 있는 이란과 같은 국가에서 이란의 정책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한다. 즉 이란은 종교의 최고지도자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다. 실제로 이번 대통령 이슬람 방문과 관련해서 취재를 갔던 방송인의 전언에 따르면, 이란에서는 다른 이슬람 국가와 달리 외국인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히잡을 착용하지 않으면, 촬영과 관련된 일을 협조받기가 쉽지 않았고, 심지어 거의 여성들만의 공간이라 히잡을 착용할 필요가 없는 미용실과 같은 곳에서도 여성 스스로도 히잡 착용에 대해 쉽게 반론을 이야기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과 무엇인가 도모하기 위해서 대통령이 히잡을 쓴다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양자 모두 일리도 있고 한계도 있다. 히잡이 여성 억압의 상징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슬람 국가에도 외국인 여성의 복장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히잡이 여성 억압의 상징이긴 하지만 이슬람이 생겼을 당시 서남아시아 유목민족 속에서 여성이 처했던 상황에서 여성의 보호가 필요했던 사회문화적 맥락을 검토한다면, 당시의 상황이 문화로 정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작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우선 우리가 이슬람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것을 자각해야 된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와 이슬람과의 교류의 역사는 길다. 역사학자에 따라서는 남북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는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우리나라에 군대를 보내줬고, 중동 건설 붐이 일었을 때 우리나라의 많은 노동자들이 서남아시아에서 모래바람과 싸우며 외화를 보내줬다. 특히 서울 강남의 세계적인 IT거리가 된 테헤란로는 한국의 중동 진출이 한창이던 1977년 6월 17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장의 방문을 기념해, 서울시청이 테헤란과 서울의 지명 한 곳을 바꿔 부르는 것을 제안해 지금의 명칭에 이르렀다.(네이버 두산백과)

그런데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이슬람은 ‘테러’, ‘성차별’, ‘후진성’, ‘석유’ 등으로 이미지화 돼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슬람도 엄연한 거대 종교 중 하나고, 많은 나라에 많은 신자들이 있는데, 막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슬람을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오죽하면 이슬람 신자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 ‘할랄 푸드’ 단지를 만들어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공약과 정책이 일부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서 반발을 사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촌극이 일어날까.

다음으로 대통령이 히잡까지 쓰면서 이란에 가서 그만큼 성과를 얻었냐는 것이다. 벌써부터 MOU라는 말을 필두로 해서 성과를 이번 이란 방문의 성과를 홍보하려는 노력이 느껴지고 있다. 아울러 “42조 수주다, 52조 수주다, 아니면 우리가 이란에 250억불을 투자하는 것이다” 등 논란이 분분하다. ‘사자방’이라고 명명되면서 이명박 정권 최대 비리 의혹 중 하나인 자원외교에서도 엿보였던 상황이다. 제발 일부 언론은 히잡을 쓴 대통령의 미모를 칭찬하지 말고,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까지 꺾으면서 무엇을 했는지에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

조선시대 명(明)이나 청(淸)과의 외교에서 사대(事大)의 예를 취했던 것에 대해 지금의 역사가들이 치욕스럽거나 굴욕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마치 중국의 속국이었던 것처럼 왕이나 세자의 책봉에 대하여 일일이 결제를 받아야 됐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엄청난 양의 예물을 보내야 되었고, 때로는 굴욕적인 현상도 있긴 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당시 중국은 이슬람 문화권과 함께 세계 양대 강국 중 하나였다.)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서 조선이 중국 문물을 유입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될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여당은 그렇게까지 해서 무엇을 얻었느냐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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