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이슈화 되기 전, 정부는 “규제 풀어야”
이슈된 이후 화학물질에 대한 대대적인 관리 들어가

환경부·산업부 등 그 어느 정부도 책임지는 자세 없어
옥시포비아, 잠자는 경제민주화의 콧털을 건드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로 인한 이른바 ‘옥시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가 팽배해있다. 화학물질 관련 제품의 사용을 꺼리고 있고 옥시 제품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가 불거질 때까지 과연 정부와 재계는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뒷북 대응은 물론 과연 정부와 재계는 소비자(국민)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 아니면 ‘돈’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경제성장에 얽매여 사람의 생명은 뒷전이 돼버렸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는 지난 2002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2012년 임산부 사망 사건이 발생한 이후부터이다. 가습기 살균제 독성에 대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사용 자체가 중단됐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가 계속 보고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또한 기업들은 계속해서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정부는 오히려 재계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9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화학물질의 등록·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해서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좋은 취지가 시행과정에서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달라”고 말했다고 김행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당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화평법 등은 R&D용 화학물질은 등록의무 대상에서 면제하는 등 기업부담을 최대한 완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하자 박 대통령은 “규제를 강화하는 기본취지는 이해하나, 민관협의체 등을 통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 화평법 등 일부 환경규제가 의원입법으로 진행되면서, 관계부처나 산업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향후 의원 입법안에 정부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대국회 협력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정부는 화학물질 관리를 보다 유연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부, 입장 변화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정부가 규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신규화학물질 또는 연간 1t 이상 제조·수입되는 기존 화학물질 가운데 유해성이 높은 물질을 대상으로 제한물질 추가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제한물질로 지정되면 말 그대로 특정용도에서 수입, 제조, 판매, 사용할 수 있는 용도가 대폭 제한된다. 또 유럽연합(EU)사례를 참고해 살생물제와 살생물제품 등의 사후 관리 체계를 사전 관리로 변경하기로 했다. 이처럼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이슈를 기점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재계 역시 가습기 살균제 이슈를 기점으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5년 12월 16일 ‘산업경쟁력을 고려한 환경정책 방향’ 보고서를 통해 “주요국은 자국 여건을 충분히 고려한 환경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산업 경쟁력을 고려해 현행 규제 중심의 환경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화평법에 대해 전경련은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주요 제품군에 대해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화학물질 규제도 약한 수준으로 도입해 기업들의 대응시간을 배려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요 국가들은 환경 정책을 자국 산업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데 우리나라는 자국 산업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경련의 보고서는 주장했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 이슈가 불거지자 화학업계가 오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환경부와 ‘화평법 공동등록 표준모델 이행 협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화평법에 시행에 따라 화학업체가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기 이전에 유해성 등 자료를 정부 기관에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화학업계는 한 종의 화학물질을 등록하는 데만 최소 수백만원이 소요됨에 따라 화평법 이행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그런데 화학업계가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공동등록 모범사례를 만들고 이를 자발적으로 확산시키자는 취지에서다. 이들 기업은 공동등록 전 과정을 이행하고, 내년 상반기 내로 등록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처럼 재계가 불과 몇달 전과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은 가습기 살균제 이슈가 불거지면서 여론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적절한 대응책이 나오지 않아서 오히려 사태를 키웠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이 입수한 지난 2011년 당시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는 산업부 산하 기술표준원 유관기관인 한국건설생활 환경시험연구원(이하 KCL)에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 조사를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부 직속기관인 기술표준원은 2011년에 가습기 실균제 위해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28일 간 반복흡입실험 기간 10마리의 쥐가 폐사했고, 공통적으로 폐 섬유화와 간 독성이 확인됐다. 폐와 간의 변색·부종뿐만 아니라 여타 장기의 위축 등 전반적인 장기손상이 발견됐다. 만약 이 보고서대로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백 의원은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부와 기표원은 KCL이 작성한 보고서를 확보조차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사건이 발생했는데 관련부처 중 하나인 산업부가 직무유기를 했다는 지적이다.

책임자는 없는 옥시 사태

또한 가습기살균제는 당시 공산품(산업부), 유해화학물질(환경부), 의약외품(식약처)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정부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각 부처의 관법에 따라 가습기살균제를 세정제로 판매할 시 산업부 산하기관 인증을 거쳐야 하지만 당시 살균제로 판매되어 인증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 산업부의 해명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가습기 살균제가 의약품으로 지정된 것은 불과 일년도 안됐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발생할 당시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환경부 역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정의당 심상정 위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최소 2013년 경에 가습기 독성물질인 PHMG, PGH가 동물실험을 통해서 ‘폐’ 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에 치명적인 독성이 있음을 알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검찰이 조사에서 제외한 독성물질 CMIT, MIT도 2016년 1월에 ‘폐’ 외에 다른 기관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실상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범위를 축소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가는 대목이다. 환경부가 지난 4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서 “폐 이외의 건강피해 가능성을 조사·연구하고 있으며 해당분야에 대한 진단·판정기준이 마련될 경우 지원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동물실험결과 폐 이외에 다른 기관에도 손상이 간다는 사실은 이미 습득한 상태다. 따라서 환경부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사실을 덮기에만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더욱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수입할 때 심사 서류가 조작되고 이를 환경부가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송기호(53) 변호사는 11일 서초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퓨’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유해 성분인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수입하기 위한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가 엉터리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 윤성규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입법 미비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로 직접적인 사과를 거부했다.

분명한 것은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12일 성명을 내고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 발생한 것은 비단 제조·판매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감독의 주체였던 정부에게도 책임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리·감독의 부실이 사건을 더 키웠고, 결국 국민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기관 그 어디서든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전혀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 누구도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사과 ‘한 줄’이라도 내놓지를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다른나라의 일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구제를 해야 했었는데 그렇지 못하면서 피해자도 고통스러웠고, 국민들도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옥시포비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옥시포비아는 단순히 옥시 제품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화학물질로 만든 생활용품’에 대한 공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화학물질로 만든 생활용품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통해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해 국민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환경부가 전수조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옥시포비아’가 확산된 시점이기 때문에 뒷북대응이라는 지적이 있다. 복지소사이어티라는 사단법인은 수사와 법적 제재를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는 업체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관리·감독이 왜 미온적이었는지 그리고 피해 발생 후에도 소극적 대처로 일관했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 바람 불어

이번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우리나라 경제성장 시스템의 전반적인 개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의 경제성장 우월주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물론 나아가 앞으로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위해 대대적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늘 주장해왔다. 하지만 규제를 무작정 푸는 것으로 인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만큼 기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경제민주화’도 직결된다. 즉, 이제는 무조건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식의 국정운영이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19대 국회가 마무리 되기 전에 경제활성화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활성화 법안이 결국 규제를 푸는 법안인데 이에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동의를 할지는 이제 미지수가 됐다. 그것은 바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20대 국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야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된 법안을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형평성’ 문제라거나 ‘규제 완화’ 등을 이유로 반대해왔다.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관련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이슈가 국민으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즉,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또 다시 발의돼서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20대 국회는 여소야대 국회이다. 가습기 살균제 관련 법안 처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쉽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여론을 등에 업고 있고, 숫자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20대 국회에서 기업의 규제에 대해 대대적으로 손을 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기업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눈을 감아줬는데 그 결과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관련 법안 처리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이 기업의 과도한 규제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서 규제에 대해 제고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미 옥시포비아로 대변되는 기업에 대한 규제가 일정부분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들도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풀어져야 경제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데 옥시포비아로 대변되는 기업에 대한 규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오히려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제 누군가 나서서 결자해지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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