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Carr 《역사란 무엇인가》 中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 아래 결코 서지 않는다 《정관정요》 中

역사를 아는 것, 역사를 공부하는 것에 대한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알고 공부하는 것에 대해 강조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이 칼럼의 제목을 “역사거울”로 짓는 과정에서 “역사”라는 단어와 “거울”이라는 단어 사이에 생략된 단어는 바로 “라는”이라는 조사이다. 즉 이 칼럼의 실제 제목은 “역사라는 거울”인 것이다.

역사를 아는 것에는 시대도 신분도 없다. 권중달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변법자강운동으로 유명한 량치차오(梁啓超)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제왕의 정치교과서’라고 딱 잘라 말한 일이 있다고 한다. 『자치통감』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가 ‘(백성을) 풍요롭게 하는 다스림을 위한 밑천이 되는 통시대적인 거울’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 통수권자라면 전제군주이건 대통령이건 오히려 더 정확하고 바른 역사 의식과 지식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다. 도대체 ‘역사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역사를 아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최근에 있었던 사건(사고라고 해야되나?) 하나를 다시 언급하겠다. AOA라는 유명한 여성 아이돌 팀의 설현과 지민이라는 팀원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누군지 아느냐”고 질문하자 ‘긴또깡(일제강점기 깡패이자 해방 후 우익 테러리스트, 그리고 국회의원이었던 김두한의 일본어식 발음)?’이라고 답변했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서 두 사람은 순식간에 역사에 대한 인식이 없는 속된 말로 ‘골빈’ 아이돌이 돼버렸다. 그리고 그들을 비롯한 AOA 전 멤버들은 그들의 새 앨범 발표회에서 눈물의 사죄를 했다. 이 사건에 대해 다른 어떤 사람들은 ‘무지가 대국민사과를 할 죄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설현과 지민에 대한 비난이 너무 과했다는 주장을 했다.

묻고 싶다.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안중근 의사인줄 알아보는 것이 안중근 의사에 관한 역사를 아는 것일까? 아니면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 의거, 동양 평화의 정신을 아는 것이 안중근 의사에 관한 역사를 아는 것일까? 논쟁의 대부분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안중근 의사인 줄 모르는 것이 잘못인가 잘못이 아닌가?’에 관한 것이지,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안중근 의사인 줄 아는 것이 안중근 의사를 아는 것인가?’에 대한 것은 거의 없다.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모르면 안중근 의사의 활동이나 정신도 모른다고 100% 단정할 수 있는가? 결국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의 사진을 보고 안중근인 줄 모른다고 역사에 대하여 무지하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현과 지민에 대하여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설현과 지민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무지를 뭐라고 할 수 있는가? 학교도 제대로 출석하지 못하면서 아이돌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논법을 사용한다. 둘 다 잘못되었다.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안중근 의사인지 모르는 것과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ᄒᆞᆫ글 프로그램에서 F9 키만 누르면 한자로 바뀌는 세상에 한자를 쓸 줄 모른다고 한자를 모른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잘못된 논점이 더 문제인 것은 진짜 잘못한 사람, 그리고 진짜 심각하게 역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을 덮는다는 것이다. 설현과 지민이 역사를 모른다고 비난한 언론들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군인들에게 발포를 명령했던 사람들에 대하여 그 언론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가! 또한 지금 청소년과 청년이 역사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이 그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탓인가? 아니면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기성세대의 탓인가? 필자가 칼럼에서 늘 강조하지만 청소년과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만든 환경 속에 던져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과 청년이 고통 받는 이유는 모두 노력하지 않는 청소년과 청년의 탓이 된다.

마지막으로 언론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설현과 지민이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사회적 영향을 많이 끼치는 공인(公人)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공인이라는 이유로 아이돌들에게 공인이라고 규정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에 미치지 못하면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돌들은 공인이라는 이유로, 상처받고 한 순간 사회적 약자가 된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배려하기는커녕 고통 받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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