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취하다] 전업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

   
▲ 지승호 작가 ⓒ투데이신문

15년간 46권 낸 전업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으로 돌아와

투데이신문 기자들과 함께한 취중인터뷰
그가 인터뷰를 통해 비추고 싶은 세상은?


목차(누르면 해당 부분으로 이동합니다)

ⅰ. 인터뷰어에 필요한 건 수다
ⅱ. 지승호의 역사와의 회견
ⅲ. 무례한 물음표를 던지는 인터뷰어들
ⅳ. 텍스트와 콘텐츠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ⅴ. 지승호에게 글이란
ⅵ. 지승호가 기억되고 싶은 지승호

 

【투데이신문 남정호 정지훈 기자】 비정규직 독립 인터뷰 노동자. 전업 인터뷰어 지승호(50) 작가는 스스로를 이같이 표현했다. 지 작가는 지난 2002년 첫 인터뷰집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시작으로 15년간 45권의 책을 통해 300여명이 넘는 인터뷰이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 꾸준한 노동은 그의 46번째 책인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에 오롯이 담겼다. 이 책에는 인터뷰에 대한 그만의 15년간의 철학과 지승호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투데이신문>은 지승호 작가와 홍대 보난자에서 만나 맥주와 함께 4시간여 동안 인터뷰에 대해 이름 그대로 보난자(노다지)를 캐왔다. 이날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지승호 작가와 그의 15년 넘는 지기 홍상표 사진작가, 그리고 이제 기사 쓰기를 조금은 알 것 같은 3년 차 남정호 기자와 막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된 정지훈 기자다.

 

인터뷰어에 필요한 건 수다
“수다 떨 수 있다는 건 그 누구하고도 대화할 수 있다는 것

  

   
▲ ⓒ투데이신문

 

   
정지훈

첫 시작하는 신입의 자세에서 질문을 준비해봤습니다. 작가님께서는 300여명이 넘는 분을 인터뷰하셨는데 그 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후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지승호

300명 모두 관리할 수는 없죠.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흔히 인맥 만들기 해서 페이스북, 트위터 팔로워 10만 만들기 같은 거 하잖아요. 그 관계가 생각해보면 얼마나 허약한 관계입니까.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지요. 이를테면 제가 만약 그 사람들하고 인터뷰하기 위해 관리했다면 그거에 신경 쓰느라 일을 더 많이 못 했을 거예요. 차라리 ‘저 사람은 인터뷰를 정말 열심히 한다, 저 사람이랑 인터뷰하면 괜찮다’라고 생각해야 그 사람들이 연락도 주고 그러는 거지요.

 

   
정지훈

작가님은 책이나 다른 인터뷰를 통해 본인은 수줍고 과묵한 성격이라고 밝히셨는데 그런 성격이 인터뷰어로서의 강점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지승호

수줍다기보다는 사람 관계를 좀 무서워한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죠. 말도 안 되는 욕을 먹는 걸 싫어하고요. 성격이라는 게 각각 장단점이 있잖아요. 외향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들하고 잘 소통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사람들을 또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고요. 이를테면 모든 게 운동 종목이라고 치면 그 운동에 맞는 근육과 전술이 필요하잖아요. 수영 근육과 농구 근육은 완전히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모든 운동을 한다고 다 잘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기 성격에 맞게끔 접근을 해야 하는데 많이 얘기했지만 인터뷰어가 수줍어한다는 건 굉장한 단점이죠. 근데 외향적인 사람들의 단점은 준비를 많이 안 해도 난 잘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안 할 거예요. 근데 사람하고 얘기를 잘 못 하는 사람은 그 사람한테 가서 얘기하기 위해서 준비를 많이 해야 하잖아요. 그거 자체가 인터뷰어에게는 굉장한 힘이 되는 거죠. 그냥 자신 있게 가서 막 떠들어서 나올 수 있는 텍스트보다는 준비를 할 때 훨씬 더 좋은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는 부분도 많아질 거고요.

 

   
정지훈

책을 보면 ‘특히 남성 인터뷰어에게 필요한 것은 수다’라는 구절이 나오더라고요. 근데 샤이한 성격과 수다는 상반되는 개념이지 않을까요?

 

   
지승호

이를테면 야구에서 9회말 8대 7의 상황하고 비슷한 거겠죠. 그동안 3대2에서 4대3이 되고 역전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처럼 여유 있게 수다를 떨다 보면 계속 얘기가 되잖아요. 그러면 서로 이제 마음이 풀리고 분위기가 올라가는 건데 거기서 갑자기 누군가가 ‘아 왕년에 내가 군대 있을 때’ 이런 얘기 하면 싸해지는 거잖아요(웃음). 수다는 상대방도 알 수 있는 얘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서로 피드백이 오가고 하는 거죠. 처음 기자 생활하신다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정지훈

정말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어제 침대 누워서 생각한 질문입니다.

 

 

   
지승호

그러니까. 진짜 차라리 정말 궁금한 걸 질문해야 좋은 질문이 되는 거지. 김중혁 작가가 칼럼 쓴 거 보니까 자기는 기자가 a라고 질문해서 b라고 대답하고 c라고 질문해서 d라고 대답했는데 기자가 창피해서 그런지 질문을 바꿨더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인터뷰이가 바보처럼 느껴지게 되고 또 분노하게 되고요. 그 기자는 당장의 창피함은 면했을지 몰라도 정말 신뢰감을 잃는 거지요. 평소 문자 보내고 관리하는 거 보단 그런 실수 안 하는 게 낫지요.

 

   
홍상표

나도 어디 전시장가서 작가와의 대화하거나 하면 질문하기가 되게 눈치 보이는 거지. 질문이랍시고 했는데 ‘필름은 뭐 쓰세요’, ‘카메라 뭐 써요’, ‘렌즈는 뭐로 찍었어요’ 이런 질문은 할 수가 없거든. 이 사람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무슨 사진을, 이런 사진에 대한 차원이 높은 질문을 하고 싶은 게 사람이거든. 근데 인터뷰어가 그런 생각을 했다가는 완전히 폭망할 것 같아. 근데 형은 기초 준비를 많이 하기 때문에 질문의 고저가 너무 좋은 거지.

 

   
▲ 지승호 작가 ⓒ홍상표 작가

 

   
남정호

책에 보면 인터뷰 잘하는 법에 대해 ‘인터뷰 A to Z’라고 정리를 해주셨는데요. 거기서 W는 Woman이라며 여성성을 키우는 게 좋은 인터뷰어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여기서 여성성은 아까 말씀해주셨던 수다와 같은 부분일까요?

 

   
지승호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은 신해철씨도 얘기했지만, 누구하고도 대화할 게 있다는 거잖아요. 특히 인터뷰라는 게 타자에 대한 이해잖아요. 타자를 이해한다는 건 너무 어렵잖아요. 강신주 선생 표현으로 여자분들은 아이라는 타자와 10개월 동안 생활하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남성들에 비해서 기본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거죠. 특히 꼰대들이 문제가 되는 게 거절당한다는 데 대한 가능성을 잘 못 보기 때문에 괜히 찝쩍거리다가 개저씨 얘기를 듣고 그런 거잖아요. 이 사람이 거절할 수도 있고 이런 것 때문에 내가 쪽팔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조심스러울 텐데.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여성분들이 훨씬 더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갖고 있고 또 사회적 약자인 부분이 있으니까요. 상대적 비주류에 있는 사람들이 타자에 대한 더 많은 감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부분들을 얘기하는 거죠.

 

   
정지훈

A to Z 부분에서 Honesty, 정직이라고 말씀해주셨고 Zebra, 얼룩말 표현하시면서 위장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정직과 위장은 상반된 개념이 아닌가요? 어떤 부분을 더 우선시해야 할까요?

 

   
지승호

얼룩말의 위장은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거잖아요. 위장해서 누구에게 손해를 끼친다기보다 벌레가 나뭇잎에 숨는 것 같은 위장을 얘기하는 거지 이를테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하고 하는 걸 얘기하는 건 아니죠.

 

   
정지훈

흔히 말하는 선의의 거짓말?

 

 

   
지승호

선의의 거짓말까지도 아니고 굳이 나쁜 걸 보여줄 필요는 없고 자기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자기 약점을 숨기는 정도?

 

   
정지훈

거짓이라는 표현과는 맞지 않는 거네요.

 

 

   
지승호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인터뷰하고 나면 나도 모르는 웬 비열한 놈이 여기 있더라’라고 표현한 것처럼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거든요. 그런 거에 비하면 우리나라에는 좋은 인터뷰어가 많다고 생각해요. 씨네21 김혜리 기자도 그렇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도 그렇고 다른 좋은 인터뷰어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자기를 왜곡했다고 느끼지 않을 만큼의 좋은 인터뷰를 하는 기자들이 많이 생겼는데 깔때기를 조금 들이대자면 거기에 저도 조그마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웃음).

   
 

  

 

지승호의 역사와의 회견
“박정희에게 어떤 나라 꿈꿨는지 묻고 싶어

 

   
▲ 지승호 작가 ⓒ투데이신문

 

   
남정호

책에서 세계적인 인터뷰어 오리아나 팔라치의 ‘역사와의 회견’ 부분을 써주셨는데요. 오리아나 팔라치는 잔 다르크나 올리버 크롬웰, 나폴레옹 같은 역사적 위인들에게 직접 질문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표현했더라고요. 만약에 작가님께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인물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승호

박정희 전 대통령한테 어떤 나라를 꿈꿨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어쨌든 대한민국 역사에서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가장 중요한 인물이잖아요. 아직도 박정희 체제 하에 한국이 있는 거고.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이 박정희하고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본인은 나름대로 변절도 많이 했지만, 철학이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근데 지금 이쪽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화를 내는 데 이건 객관성을 가져야 하는 거잖아요. 이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았던 사람이예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했던 사람이잖아요. 오히려 지금 정치인들을 보면 이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인지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고요. 진도가 그때보다 훨씬 더 나갔어야 하는데 그때보다 진도가 못 나가 있고. 자꾸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박정희를 옹호하는 줄 아는데 누구보다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 중에 하나죠. 그렇지만 어쨌거나 인간을 이해하려다 보면. 민혁당 사건 때도 사형선고하고 나서 나중에 그렇게 술자리에서 후회했다고 해요. 황태성 간첩사건 때도 이 사람을 사형시키고 나서 자기가 형인 박상희의 친구를 죽였다는 것 때문에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정지훈

과거 말고 지금 현재에 가장 만나고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은 누구시고 어떤 질문인지요?

 

 

   
지승호

카운터파트로 지금 대통령님한테 도대체 지금 나라를 어떻게…(웃음). 정말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거든요. 대답은 잘 안 해주시겠지만. 대답을 못 한다는 거 자체도 어마어마한 거잖아요. 현 상황에 대해서 인지를 못 하고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고백한다는 건, 이거 자체가 7시간 없어진 거랑 똑같은 얘기일 수 있는 거죠. 정치인은 말로 국민을 설득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런 게 없다는 거는 자기가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요. 이를테면 김을동 의원이 벌금을 내고 토론을 안 나갔잖아요. 그건 정치인으로서 엄청난 직무유기 행위죠. 자기가 말로 누굴 설득할 수 있는 자신이 없다는 거잖아요. 그런 분이 정치를 한다는 건 어폐가 있는 거죠. 정치란 건 갈등을 조정하는 건데.

 

   
남정호

오리아나 팔라치 같은 경우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나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같은 사람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잖아요. 근데 인터뷰 과정에서 호메이니 앞에서 차도르를 찢어버리기도 하고 ‘당신 독재자 아니냐’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요.

 

   
지승호

오리아나 팔라치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인터뷰어잖아요. 그분의 일화지만 늘 그렇게 했던 건 아니거든요. 일단 겸손하게 접근해야지 얘기가 되는 거고. 기 싸움이 필요할 때 그런 연출을 했던 거죠. 그래도 그런 배짱을 부릴 수 있다는 게 대단한 거죠. 정말 독재자 앞에서 ‘당신은 독재자야’ 이러고.

 

   
▲ 지승호 작가 ⓒ투데이신문

 

   
남정호

만약에 작가님께서 호메이니를 직접 만나는 상황이라면 어떤 식으로 질문지를 짜고 질문을 하실까 궁금한데요. 스타일이 다르시니까.

 

   
지승호

실제로 만나기까지 과정이 어려운 거지 일단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자기 얘기를 터놓을 각오가 돼 있는 거거든요. 일단 저는 만날 수만 있다면 오리아나 팔라치하고는 다르게 조금 더 돌아가는 방식으로 결국은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정호

강한 액션보다는 돌아가는 방식으로?

 

 

   
지승호

네. 돌아돌아 질문을 해서 이를테면 ‘당신 독재자야’ 이렇게 안 해도 ‘어떤 사람들은 당신을 독재자로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돌려서 물어볼 수도 있고요. 핑퐁처럼 치고받아서 좋아지는 인터뷰도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상대방 얘기를 깊숙이 들어서 내놓는 결과물이 그 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신해철씨 만나서도 훨씬 더 자극해서 재밌는 텍스트가 나왔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냥 그 결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안타깝게도 그분이 돌아가셔서 결과물이 그거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다른 인터뷰어인 김어준 총수가 만난 결이 다른 기록이 또 남아있는 거고 그런 건 많이 남아있을수록 좋은 거죠. 여전히 저는 인터뷰어로서 기술이나 재주로는 김 총수나 김혜리 기자가 저보다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자기의 장점과 에너지를 갖고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중요한 거죠. 저도 까먹고 있었는데 이번에 한겨레21 기자가 저를 인터뷰한 기사에서 2007년도에 나온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 쓴 걸 인용하셨더라고요. ‘그동안 나왔던 좋은 인터뷰들은 다음 작품이 안 나오는 모차르트라면 나는 작품이 나오는 살리에르이고 싶다. 예술적인 게 떨어지면 어떠냐.’ 인터뷰는 기록으로써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명문이면 더 좋겠지만, 그 기록이 남아있는 거와 남아있지 않는 것은 정말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기록이 많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지훈

책에서 ‘인터뷰이를 바라볼 때 선입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선입견을 갖는 게 득이 될 게 없다’고 얘기를 하시는데 사전조사 역시 많이 강조하시잖아요. 원래 인터뷰이에 대한 아무 배경지식이 없었는데 사전조사를 하다 보면 없던 선입견이 생겨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지승호

선입견이 생기죠. 근데 이 사람을 공격하는 데이터든 공부하는 데이터든 읽다 보면 오히려 균형 감각이 생길 수도 있고요. 선입견이라는 거는 자기 성격하고도 비슷한 것 같거든요. 자기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도 있잖아요. 책에도 쓴 거처럼 자기도 의심해봐야 해요. 이 사람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되, 이 사람 말이 틀릴 수도 있고 오히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이런 걸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자꾸 대조해보는 게 중요하거든요. 대화에 있어서 그다음 질문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김어준 총수도 그렇고 저도 얘기한 거지만 사실 인터뷰하는데 다음 질문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어요. 다음 질문 생각 안 하고 그냥 듣다 보면 이 사람 두 시간 만났는데 ‘어 우리 농담하고 왔네’ 뭐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죠. 일단은 만나는 몇 시간 안에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거잖아요. 그 다음 질문을 생각해서 대화를 그쪽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도 나쁘지만, 다음 질문을 또 생각 안 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런 모순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죠.

 

   
정지훈

다음 질문을 생각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척하면서 또 말을 잘 경청하고 하는 것은 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거 같은데요. 특별한 방법 같은 게 혹시 있을까요.

 

   
지승호

제가 볼 때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절실함 같아요. 아는 선배가 얘기한 게 있어요. ‘카바레에서 아줌마를 꼬시는 건 심리학자가 아니라 제비족’이라고요. 심리학자는 아줌마를 분석하려 하죠. 근데 제비족은 절박하죠. 이 사람은 생계니까. 아줌마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온몸을 던지죠. 이 아줌마가 어떤 동작에 마음을 움직이는 건지 제비족은 하나하나 체크하고 분석하려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잖아요. 물론 범죄자지만(웃음).

   
 

 

 

무례한 물음표를 던지는 인터뷰어들
“‘내가 시험을 망친 건 전날 술을 먹었기 때문’ 핑계와 같아. 날카로움 아니야

  

   
▲ 지승호 작가 ⓒ투데이신문

 

   
남정호

작가님께서 여러 매체에서 나오는 인터뷰 기사들을 많이 챙겨보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타 매체의 인터뷰 기사들에 대한 작가님의 시선은 독자로서의 시선일까요, 아니면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시선일까요?

 

   
지승호

독자로서 봐요. 그걸 분석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잖아요. 궁금해서 보는 거지. 이 사람은 어떻게 인터뷰했을까. 어떤 면에서는 저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서 긴장감을 많이 느끼고. 그래서 일찍 하길 잘했다 이런 생각도(웃음).

 

   
남정호

물론 독자로서의 시선으로 다른 기자들의 인터뷰를 보셨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없으셨나요?

 

 

   
지승호

그렇게 생각하면 제 인터뷰도 아쉬운 부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걸 보기보다는 ‘이 기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많이 고생했겠구나’ 하는걸 먼저 느끼죠. 제가 많이 해봤으니까. 최근에 저를 만나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 ‘원고지 얼마 안 되는 짧은 기사일 텐데 이렇게 많이 보고 오셨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해드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고요. 그리고 책 뒤에도 썼지만 이게 신(scene)이 형성되는 것 같아서 솔직히 기분 좋은 부분도 있거든요. 이를테면 제가 비비 킹(1960년대 미국 블루스 가수 겸 기타리스트)이라고 하면 비비 킹은 나중에나 사람들이 다시 찾아 듣게 되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많이 들었던 에릭 클랩턴이랑 같이 연주하는데 서로 라이벌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서로 좋은 동료로 같이 잼(즉흥 연주)을 하는 게 느껴지잖아요. 서로 리스펙트하는게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때 힘이 생기는 거고. 나이 차가 많이 나도 두 사람이 정말 동료, 친구, 아주 친한 아버지와 아들처럼 연주하잖아요. 근데 그게 서로에 대한 리스펙트가 없으면 안 되는 거고. 나이가 들어서도 꼰대가 안되는 비결은 그런 거잖아요. 후배들의 작업에 대해서도 같이 동료로서 존중할 수 있고 같이 무대에 서도 전혀 어색함이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그런 거. 그래서 사람을 똑같이 사람으로 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요. 의외로 되게 순수한 척하고 하는 사람들이 사람을 딱 나눠서 보는 게 있어요. 나는 이 정도 되는 사람이랑 만나야 되는 사람이지 이런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게 정말 꼰대 같은 태도죠. 성장하는 젊은이들을 못 보는 거고. 이미 픽스된 사람들만을 인정하고 이러면서 대외적으로는 무지하게 순수한 척해(웃음). 어쨌든 저는 어떤 결과를 볼 때 그 자체에서 즐기고 배우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찾아보면 즐거우니까 보는 거지 제가 굳이 이걸 통해서 배워야겠다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궁금하니까. ‘이번엔 누굴 어떻게 인터뷰했을까?’ 궁금하니까 보고 ‘음 이건 좀 재밌네’ 하는 거죠. 실제로 젊은 분들이 인터뷰를 잘해요. 즐겁기도 하고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렇죠. 또 거기 깔때기를 들이대자면(웃음) 그렇게 된 데는 제가 한 15년 한 게 조금은…(웃음)

 

   
남정호

작가님의 인터뷰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승호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근데 누구를 자꾸 규정하려 하고 그런 것들이 많았잖아요. 아까 말씀드린 한겨레21 기사를 보고 좀 울컥했는데 어떻게 제가 상처받았던 부분을 찾아가지고. 제가 그거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웃음). ‘문장이 안돼서 책 못 내주겠다’ 이런 얘기 들을 때 되게 힘들고 속상했어요. 저는 이걸 직업으로 택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진짜 밤새 울었어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썼죠. ‘문장이 안돼? 안되면 어때. 남들이 알아먹으면 되지’, ‘너는 지식인이냐’ 그러면 ‘지식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그 사람이 계속 무슨 활동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고 그 사람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가가 중요한 거지 타이틀이 중요하냐고 그렇게 얘길 많이 했거든요. 근데 실제로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이상한 짓 많이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는 여전히 그런 자의식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지식인이라는 자의식도 별로 없고. 근데 제가 어떤 공동체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고 고민이 있는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책에서도 나오는 얘기지만 가장 인터뷰를 많이 한 인터뷰 노동자라는 자부심은 있는 거거든요. 야구 선수로 치면 스타플레이어는 아닐지 몰라도 팀을 위해서 가장 많은 게임을 뛴 선수죠. 그런 저를 보면서 모델로 삼아 하는 분들이 있고. 자기가 굳이 빛이 날 필요가 없잖아요. 한국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가 너무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한도전도 유재석 혼자서 안 되잖아요. 유재석이라는 빛나는 별을 김태호 피디라는 사람이 소중하게 감싸 안아서 서포트를 해주니까 그런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는 거고요. 모든 게 다 협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게 대답이 될 수 있겠네요. 세상이 금세 안 변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처음부터 느리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서 여러 사람이 같이 소통하고 이런 과정들이 계속 퍼져나가고 오래 함으로써 뭔가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는 소중한 힘이지 않을까. 그리고 각자 그런 영역,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힘을 합치면 조금씩 변하잖아요.

 

   
 

 

   
남정호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질문이란 건 어떤 걸까요?

 

 

   
지승호

좋은 질문과 대답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걸 제대로 보여주는 정직한 태도가 제일 중요할 거 같고요. 바둑에서도 제일 좋은 수가 없잖아요. 상대방이 두는 수를 보고 두는 것처럼 질문도 서로 간의 주고받는 대화잖아요. 가장 좋은 질문이라는 건 그 상황에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게 중요한 거 같고요. 상대방을 후벼 파려는 질문이 아니라 배려하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겠죠. 책에도 썼지만, 흔히들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걸 좋은 기자라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인터뷰이들이 인터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요. 특히 힘센 매체일수록 상대방 구겨 넣고 나서도 사과하지 않고 ‘니가 얘기하지 않았냐’ 하면서 따옴표 뚝 따와서(웃음). 이 사람 말을 두 마디 중에 한 마디만 잘라도 되게 이상해지거든요. 그러고 ‘니가 얘기한 거 아니냐’ 그러면 사실은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닌 왜곡한 거죠. 제가 요즘엔 보면서 많이 감동을 하는 게 진지하게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많아졌어요. 특히 젊은 기자들이. 이른바 젊은 매체나 이런 데서 젊은 분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걸 보고 ‘아, 이게 신이 형성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좀 감동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고요. 깔때기를 들이대자면 제가 한 15년…(웃음)

 

   
남정호

작가님 페이스북에 있는 글을 보니 인터뷰를 축구에 비유를 해주셨더라고요. 인터뷰는 이제 수비라고 생각하신다면서 10번 잘하다가도 1번 잘못하는 순간 욕먹는다고.

 

   
지승호

축구가 아니라 모든 운동경기에서의 공격과 수비에 대해서 말한 거예요. 흔히들 공세적으로 해야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아까 오리아나 팔라치 말씀을 하셨는데 오리아나 팔라치는 평소에 부드럽게 접근했다가 기 싸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차도르를 던지는 거지 처음부터 그러는게 아니예요. 근데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런 태도로 가서 ‘오리아나 팔라치는 그랬어’하고 인터뷰 망치고 나서는 인터뷰이 탓을 하는 거죠.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에요. 자기는 그 사람에게 뭔가를 들으러 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면 전략을 잘 짜서 가야 하니까 인터뷰어는 수비형에 가깝다는 거죠. 인터뷰이가 정말 민감할 얘기를 할 때 얼마나 민감해지겠어요. 정치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데. 실제로 오리아나 팔라치한테 헨리 키신저는 한마디 했다가 진짜 정치인생에 위기가 와서 나중에 ‘내 인생에 제일 후회되는 거는 저 여자랑 인터뷰했던 것이다’고 말할 정도였잖아요.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준비와 기 싸움이 필요한데 그냥 가서는. 마치 시험 전날 꼭 술 먹고 나서 ‘내가 시험을 망친 건 술을 먹었기 때문이다’라고 핑계를 찾고 싶어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그건 날카로움이 아니예요. 예의 없게 굴어서 이 사람 얘기를 끌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죠. 오리아나 팔라치 경우는 독재자를 만났는데(웃음). 거기서 밀당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계산을 하고 가야 하는 거예요. 근데 그 태도만 뚝 따온 거예요. 그렇게 못하는 지승호는 바보야 뭐 이런. 세계 최고의 인터뷰어와 비교해줘서 고맙긴 하지만(웃음). 마라톤 보면서 100m 17초에 왜 뛰냐고 하는 바보들과 같은 거지. 그걸 인터뷰라고 하고 있잖아요. 뭔가 공적인 활동을 하고 책을 내든 뭐 하는 사람들은 오해든 뭐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사람들 일일이 상대할 수 없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이랑 비평을 좀 성의있게 해달라고 할 수 있잖아요. 비평이 대체로 그런 식이라는 거죠. 이 종목을 특성을 알고 비평을 해야 하는데 이 종목의 특성도 생각하지 않고 마라톤 경기를 보고 있으면서 ‘얘는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이상화는 500m를 몇초에 끊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답이 안 나오는 거죠.

 

   
남정호

전에 인터뷰하셨던 고 신해철씨 같은 경우, 작가님에 대해서 ‘이 양반이 뭔가를 물어보면은 뭔가 물어본 이유가 있겠지’라고 얘기하셨더라고요. 작가님은 질문 순서 등에 대해 복선을 준비하시는 편인가요?

 

   
지승호

그렇지 않아요. 아까 바둑의 수에 대해 말씀드린 거처럼 제가 질문을 몇백개 준비해가서도 어떤 질문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면서 계속 고민을 해요. 그것도 일종의 감인 거 같아요. 어떤 때는 170번째 질문으로 시작할 때도 있고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게 제가 계획한 대로의 인터뷰가 되는 건데 이게 1번이 첫 질문이 아니다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중간서부터 질문해서 왔다 갔다 하게 되죠. 그리고 그걸 살려요. 왜냐면 그걸 편집하면 포장이 될 수도 있고 제가 인터뷰를 잘못했다는 기록조차 남기는 게 정직한 태도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초기에는 지승호 인터뷰 못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근데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제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죠.

 

   
홍상표

난 오히려 초기의 형 인터뷰가 더 재밌었던 거 같아. 그때는 상처 입은 동물처럼 뭔가 누군가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지만 그만큼 어떤 논쟁적인 질문이나 날카로운 질문들에 대해서 비교적 덜 두려워했었던 거 같아.

 

   
지승호

그래서 지금 오늘 나한테 퇴보했다고 얘기하러 온 거구나(웃음).

 

 

   
홍상표

아니 퇴보가 아니라. 하여튼 그래서 그때는 그런 날카로운 질문들도 있었고 그런 부분들이 좋았어요. 그땐 그거 나름대로 되게 좋았는데.

 

   
지승호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웃음).

 

 

   
홍상표

아니 지금이 더 좋아졌다는 거야. 결론적으로는 지금이 더 좋은데 그때 초창기에 그랬던 모습들이 오류로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이 오히려 인터뷰어로서 성장하는 과정의 모습들을…

 

   
지승호

들었다 놨다 하네(웃음).

 

 

   
 

 

 

텍스트와 콘텐츠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정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낸 사람에게 너무 쉽게 충고해

 

   
▲ 지승호 작가 ⓒ투데이신문

 

   
남정호

작가님은 인터뷰이로서도 많은 인터뷰를 경험하셨잖아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에 간극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지승호

책에서도 인용한 거지만 그런 얘길 하신 분들이 많잖아요. 인터뷰를 당해보고 나면 그 간극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그게 사람을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거잖아요. 내가 생각하는 걸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데 상대방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근데 이번에 정말 놀랬던 게 이 책을 읽고 나서 저하고 소통하러 오신 거잖아요. 근데 책을 꼼꼼하게 읽고 재밌는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다 즐거웠거든요. 대화 자체가 즐거웠는데 기록 자체도 놀라울 정도로 저를 닮게 표현해주셨어요. 감사하는 마음이 많았고요. 좀 아쉬운 부분이 그전에는 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아무래도 난 이렇게 표현했지만,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이 안에서 표현하기에는 지면 관계상도 그렇고 이 분의 시간도 그렇고 힘들거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대학내일하고 한겨레21 나온 거 보면 굉장히 깜짝 놀랐고요. ‘진짜 고생하셨구나. 저에 대해서 애정을 갖고 읽고 오셨구나’ 하는 게 느껴져서 정말 감사했어요.

 

   
남정호

인터뷰이로서 인터뷰를 겪고 나서 인터뷰어로서의 질문이나 접근방식 등이 달라진 부분도 있을까요?

 

   
지승호

특별히 많이 달라진 건 없을 것 같아요. 이전에도 인터뷰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인터뷰 요청은 많이 들어왔거든요. 그동안 책 한 권 나오면 두 번 정도는 나왔던 거 같고 한 40~50번 한 거 같은데 웬만한 매체는 다 인터뷰를 했던 거 같고요. 어쨌든 대화잖아요. 거기서 역할을 조금만 달리하는 거죠. 대화인데 내가 조금 더 상대적으로 묻는 입장이 되는 거고 또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은 얘길 하는 입장이 되는 거죠. 인터뷰이가 되면 편한 건 녹취를 안 들어도 되는 건데(웃음).

 

   
남정호

이 책이 작가님의 그동안 경험들을 응축해서 담은 책이잖아요. 이 책을 업계 라이벌, 그 신의 라이벌들도 다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15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공개되는 거 아닐까요?

 

   
지승호

뭐 대단한 노하우도 아니고 이걸 본다고 해서 그렇게 도움이 될 거 같지도 않거든요. 근데 공부하시는 분들한테는 어떤 면에서는 공부가 되는 요소도 있겠죠. 일단은 필드가 형성되고 팀이 강해지고 강한 팀들이 많아져야 사회가 좀 더 재밌는 리그들이 생기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너클볼을 던질 수 있다, 근데 그걸 비밀로 해서 내가 이걸로만 경쟁력을 만들려고 하는 거 보다는 조금 더 우리 팀이 강해지려면은 후배가 가르쳐달라면 가르쳐 줘야죠. 그 친구가 그걸 통해서 새로운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더 좋은 공 던질 수 있고. 그러면 또 배우면 되고.

 

   
홍상표

똑같은 질문도 누가 질문하느냐에 따라 어떤 태도로 하는가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형은 형 나름대로 스타일이 있어요. 듣는 사람이 그 질문에 대해서 맘 놓고 대답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에너지가 있거든요. 사람을 약간 무장해제 시키는. 아까 형도 얘기했지만 좀 큰 매체 기자들이 날카로운 질문할 수 있죠. 근데 너무 모욕적인 거지. 똑같은 질문을 해도 공격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그 사람들의 아우라나 포스가 있단 말이죠. 근데 형은 인터뷰어로서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모습 중의 하나가 그런 공격적인 질문인데도 ‘아, 이게 저기 어…’ 그러면서 약간 뜸을 들여. 그래서 질문을 던지는데 그 질문 자체는 날카롭고 공격적인 거야. 근데 받는 사람이 ‘이건 나를 공격하자는 게 아니라 정말 듣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그런 마음이 들게 만들어 형은. 그런 것들은 이 책을 본다 해서 알아지는 건 아닌 거 같아.

 

   
지승호

그건 경험이라기보다는 태도라고 보거든요. 그냥 딴 사람들은 괜히 그냥 자기 몸을 키워서 상대방을 누른다라고 생각하고 물어봐요. 근데 또 인터뷰이는 웃기는 거지. 자기가 기자지만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놈인데. 그러니까 기분 나빠서 대답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사람은 딴 데 가서 그렇게 얘기하는 거지. ‘아, 대답을 안 하네. 인터뷰이가 피해가고’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저는 기술도 아니고 몸을 낮추고 온갖 세간의 이상한 얘기를 다 전하는 편이에요. 남의 얘기인 거처럼 해서. 근데 이게 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한 태도가 아니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대답을 듣기 위한 건데 또 미안하니까 눈을 피하고(웃음). 실제로 책 한권에는 공격적인 부분이 없을 수가 없잖아요. 근데 이 사람들은 그냥 천몇백매짜리를 7매로 줄일 때는 그렇게 보여줄 수 있죠. 근데 저는 책 한 권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정지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셨을 텐데 이런 분야의 사람은 유독 즐겁다던가, 지루하다던가 하는 특정 분야의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지승호

사람이 다 다르잖아요. 굳이 특정 분야에 있는 사람이 재미없는 경우는 없는 거 같고요. 사람마다 그 사람과 할 수 있는 대화가 있잖아요. 그 대화가 재미없었다면 수다를 떨 자세가 안됐던 거죠. 그 사람이 무한도전을 좋아하면 무한도전 얘기를 하면 되고 1박2일 좋아하면 1박2일 얘기하면 되는데 군대 얘길 하거나 이러면 얘기가 겉도는 거잖아요.

 

   
▲ 지승호 작가 ⓒ투데이신문

 

   
정지훈

작가님의 지금까지의 경력이라든가 능력을 생각해볼 때 어느 매체라도 들어가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은 혹시 해보신 적이 없는지요.

 

   
홍상표

안 불러줘요.

 

 

   
지승호

얘 말이 맞아요. 실제로 매체들은 자기 특성들이 있고 인터뷰는 웬만하면 내부에서 소화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 같아요. 제 입장에서 섭섭한 거는 몇 년 전부터 셀럽들을 불러다 인터뷰 하는 게 있었잖아요. 물론 재미도 있고 장사도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보다는 소비만 되는 측면이 있는 거 같아요. 길게 못 갔잖아요. 차라리 내부에서 소화하겠다는 건 내부의 사람들 키우겠다는 것이니 제 입장에서는 옳은 태도일 수 있다고 봐요. 근데 셀럽을 부를 때는 제 입장에서 상처를 받은 부분이 있죠. 그러려면 나같이 꾸준히 하는 사람을 키우는 게 나은데 셀럽을 불러다가 일회성으로 길게 가지 못하는 걸 하는지. 제 입장에서는 아쉽고 서운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죠. 이런 얘기를 하게 하려고 술을 먹인 거구나(웃음).

 

   
홍상표

내가 봤을 때 형은 마라토너예요. 글을 써도 굉장히 잔잔하게 깊이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는걸 반복하는 큰 웨이브를 가지고 있는 그런 인터뷰를 좋아하고 그거에 특화된 선순데.

 

   
지승호

중간에 포카리스웨트 있어야 되고(웃음).

 

 

   
홍상표

중간에 두어개씩 있어야 되고. 살짝 올라왔을 때 먹어줘야 되고(웃음). 그런 고래 같은 스타일이라면, 월간지나 일반 매체에서의 인터뷰어들은 사실은 날치 같은 파닥파닥 뛰어야 하거든요. 매체의 색깔에는 그게 맞아요. 그래서 여성지, 월간지 같은데 100페이지 정도를 인터뷰에 할애해서 긴 호흡으로 봐주는 기획을 해주는 매체가 있다면 모를까 거의 힘들 거예요. 근데 그게 현실이야. 호흡이 짧아요. 갈수록 호흡이 짧아지기 때문에 그게 좀 아쉬워요.

 

   
남정호

‘더 인터뷰’에서 한희정씨와 인터뷰하셨잖아요. 거기서 고 신해철씨의 말씀을 인용해 현재 음악과 음악가들에 대한 리스펙트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거기에 대해서 한희정씨 같은 경우에는 현재 음원 시장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더라고요. 그렇다면 여기서 음원에 대한 부분을 텍스트로 바꾼다면 현재 출판시장과 포털의 기사 독점 등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승호

이를테면 텍스트나 콘텐츠가 존중받지 못하는 그런 사회라는 거잖아요. 계속 우리가 그런 얘길 하고 있지 않나요? 누군가의 정신적인 결과물들에 대해 점점 존중하지 않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 같고요. 물질적으로 뭔가를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뭐라고 함부로 얘기 못 하지만 정신적인 결과물을 만든 사람에게는 너무나 쉽게 충고하고. 이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듯한 이런 얘기들이. 아마 기자님들도 고민하고 있는 지점들 중 하나같은데요. 점점 정신적인 부분들을 무시하는 사회에서 기자생활을 해도 되나 이런 고민을 하실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제가 15년 인터뷰했던 과정은 그 싸움이었기도 하거든요. ‘이거 되게 중요한 싸움이다. 사람의 어떤 생각, 정신, 가치를,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니가 무슨 한 발짝 더 나가겠냐’라고 생각을 해서 한 거거든요. 근데 사람들은 그걸 징징거림으로만 받아들이고 지가 억울해서 이런다, 근데 제가 억울해서 만약에 다른 가치를 통해서 저를 구현하고 싶었으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방법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그런 선택을 안 하고 이걸 하고 있는데 그걸 같은 진영에서 더 많이 비웃어요. 그게 모순이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정말 제가 존중·존경하는, 정말 밑에서 뭔가를 만들어가시는 분들이 아닌 거죠. 저는 <좌파하라>에도 썼지만 정말 좌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예요. 좌파가 아름다운 가치가 아니지만, 정체성은 되잖아요. 제 정체성이 그쪽인 거 같아요. 분배문제 등에 대해서 더 과격한 생각을 갖고 있고. 근데 과격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그렇게 표현해버리면 그건 바보 같은 짓이잖아요. 그걸 구현하려면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근데 저는 여기서는 듣보잡이잖아요. 예전에 운동을 치열하게 했던 사람도 아니다 보니까 여기에서는 배제된 사람이예요. 거기서 저는 제 자리를 내달라는 게 아니고 제 목소리를 통해서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이 나아졌으면 하는 거거든요. 책 서문에 제가 그렇게 썼을 거예요. 내가 죽기 전에 후배들한테 형이 옳았지라는 삶을 살고 싶다고. ‘내가 얘기했던 거 옳았지?’ 지금까지 그랬던 거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남정호

책에서 본 내용으로는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경우 인터뷰이가 자신한테 어떤 질문을 받고 싶어 하는가 상상을 한다고 적어주셨더라고요. 이어서 작가님도 질문지를 짤 때 인터뷰이와 어떤 대화가 이어질지에 대해서 상상을 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오늘은 인터뷰이로서 어떤 질문과 대화가 이어질지에 대해서 상상해보셨나요?

 

   
지승호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영화 대사가 있었거든요. 상상이 많으면 인생이 고달프다고(웃음). 오늘 그냥 즐기려고 왔습니다.

 

   
 

 

 

지승호에게 글이란
“사람을 표현하는 건 기술 아닌 마음

 

   
▲ 지승호 작가 ⓒ홍상표 작가

 

   
정지훈

저는 올해로 26살입니다. 작가님께서 26살이실 때 무엇을 하셨고 그때의 꿈은 어떤 거셨나요.

 

   
지승호

그때 군대에 있었어요. 그리고 꿈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뭐 늘 뭔가에 꿈은 있었겠지만, 그때는 지금 젊은 분들처럼 암담한 상황이었죠. 제대하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요.

 

   
정지훈

그러면 혹시 지금의 길로 들어서신 건 어느 시기에 어떤 생각으로 하신 건지요.

 

 

   
지승호

30대 초반이었던 거 같아요. 책에도 나오지만, 그때 ‘핫윈드’라는 잡지 편집장님이랑 얘기하면서 ‘사회나 폭력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시면 써보세요’ 하길래 써봤죠. 이게 어떻게 보면 치유잖아요. 상처를 고백하고 글로 쓰는 게 치유의 시작인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여전히 고맙다고 얘기를 하는 거고요. 제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누군가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거는 있잖아요. 근데 그 시점에서 저를 생각해보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 전혀 아니었던 거죠. 그냥 의지만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내가 책도 많이 읽기도 했고 글을 통해서 뭔가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학자가 되고 싶은 부분도 있었는데 빨리 포기했죠. 꿈은 두 가지였던 거 같아요. 록 기타리스트 아니면 학자. 둘 다 너무 일찍 포기했죠. 좀 여유가 생기면 기타를 일단 배워보려고요.

 

   
정지훈

작가님께서 훌륭한 인터뷰어가 되기 위한 최고의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 연습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데 글쓰기 연습이라는 게 범위가 너무 넓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체적으로 연습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지승호

글을 못 쓰는 사람이 글쓰기 연습에 대해 쓴 거는 약간 오바했다 생각하고요. 그래도 필요하니까. 글쓰기는 다독, 다작, 다상량 이렇게 많이 얘기하잖아요. 그게 옛날부터 나온 촌스러운 얘기기도 하지만 정확한 거 같거든요. 계속 써봐야 느는 거지. 아직도 저는 문장에 대해서는 별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그게 약점이자 장점이라고 말씀드렸고요. 근데 사람이 알아듣게 쓴다는 건 되게 중요한 거 같고요. 이게 전문가들과 대중이 소통이 안 되는 그런 문제들이 좀 생기기도 했잖아요. 실제로 저는 그런 쪽의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생긴 장점이 있다고 봐요. 전문적 용어를 배우지 않았으니까 쓸 수가 없는 거죠. 근데 계속 뭔가를 써왔거든요. 인터넷에서부터 30년 가까이 대중하고 소통하는 글을 써왔기 때문에 어쨌든 쉽게 쓰는 거 같아요. 그건 저의 한계이자 장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자라는 건 이상호 기자가 예전에 표현했지만 무당이잖아요. 무당은 사람들이 아프고 할 때 굿을 하면서 상처를 치유해주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기자는 사회적 무당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기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 지식을 표현하려고 잘난척하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뭔가 아프면 그걸 표현해서 아픈 사람 얘기 들어주고 ‘이런 게 있는데 바꿔봅시다’라고 얘기하는 게 기사잖아요. 그러면 거기서 표현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제일 잘 표현하려면 그분들 안에 들어가서 들어야죠. 기술이 아니잖아요. 마음으로. 여전히 전 문장 안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안 좋으면 어때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내가 뭘 소중해. 자기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 같고요. 실제로 요번에 인터뷰를 당하면서 느낀 게 ‘아, 이분들 너무 똑똑한 분들 많다’ 인문학적 교양이나 이런 거 보면 갑자기 작아져요. 근데 이런 거 소통하면 서로 배우는 거잖아요. 어쨌든 이게 하나의 화두를 던지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서 좋아요. 이 소통하는 과정들이 더 많은 걸 고민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또 깔때기로 잘했다고 생각해요(웃음).

 

   
▲ 지승호 작가 ⓒ홍상표 작가

 

   
홍상표

내가 연예인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이유가 그들에게 오랜 시간 공들이지 않으면 절대로 본모습을 볼 수가 없어. 연예인들 내면을 찍은 사진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늘 보던 모습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무슨 내면 모습이야. 그 사람의 연기를 보여주는 거지. 그 사람의 진짜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을 찍고 싶으면 정말 그 사람에 대해 진실하게 접근해야 해.

 

   
지승호

네 말에 반쯤 동의하고 반쯤은 동의하지 않는 게 그 사람들은 어차피 그걸로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들인 거야. 그런 포장으로 상대하는 사람들인 거지. 그 사람의 이미지가 그거라면 절반의 진심은 있는 거지.

 

   
홍상표

하지만 인터뷰라는 것은 그 사람의 진실에 내면에 좀 더 접근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 않나? 포장만 자꾸 보여주면 무슨…

 

   
지승호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왜냐면 어떤 사람이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속이고 좋은 사람으로 살았어. 그럼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내 마음은 막 사람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근데 위선적으로 사람들한테 좋은 모습 보여주기 위해서 평생 죽을 때까지 나쁜 짓 안 하고 평생 좋은 모습 보여주고 죽었어. 그러면 그 사람 나쁜 사람이야?

 

   
홍상표

굉장히 재밌는 전제야.

 

 

   
지승호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이 자기한테 그런 마음이 있지만 좋은 걸 보여주고 싶어서 평생 그렇게 살다 죽으면 그건 좋은 사람인 거야.

 

   
홍상표

응. 그건 좋은 사람이지. 간디가 속으로는 때리고 싶었던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근데 비폭력으로 나 노벨상도 받았는데 야 이거 때리면 안 되지, 진짜 저거 뒤통수 한대만 때려도 정말 좋겠는데 그런 마음을 평소 가졌을 수도 있지.

 

   
지승호

근데 평소 선한 마음을 가졌는데 누군가를 그냥 성질나서 죽였어. 그러면 범죄자지.

 

 

   
홍상표

그럼 인터뷰어의 역할은?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거야? 그 사람의 내면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찾아서 왜 그런 마음을 갖고 있지만 왜 이렇게 보여줘야 하는가에 대한 이 사람의…

 

   
지승호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냐(웃음).

 

 

   
홍상표

내가 얘기했잖아. 우리는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어설프지만. 사실 그런 부분도 중요하잖아요.

 

   
지승호

그러니까 그렇게 질문한다면 나는 그렇게 대답을 하겠습니다. 이 사람 마음에 더러운 게 있는 걸 보여주는 게 더 좋은 게 아니고 ‘당신이 좋은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살아가십쇼’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 사람 까발려서 보여주는 거 보다는.

 

   
홍상표

오케이.

 

 

   
지승호

‘당신이 좋은 마음이 있는데 이렇게 살아가시면 안 될까요?’라는 거지. 독재자 만나서 ‘니가 독재자니까 니 마음 다 보여줘’라고 하는 거보다 ‘당신 마음에 선한 부분이 있는데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챙겨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는 게.

 

   
정지훈

제가 앞으로 인터뷰어로서 사람들 만나게 된다면 그래도 작가님께서 많은 분야의 사람을 만나셨으니까 그중에서 어떤 분야의 사람들부터 먼저 만나라고 조언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승호

아무래도 문화적인 분들을 많이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그게 좀 깊이가 생길 것 같아요. 이를테면 범죄에 대해서도 공부할 때 우리 표창원 교수님과 그 얘기 했잖아요. ‘<죄와 벌>이 나한테 범죄 심리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려줬다.’ 그리고 저도 최근에 틈나면 <노인과 바다>, <햄릿>을 보고 있는데 인간 심리에 대해서 보여주는 게 있어요. 지금 느낄 때는 촌스러운 텍스트 같지만 사람의 심리를 잘 보여주거든요. 물고기 한 마리 잡자고 이런 개고생을 하나(웃음). 그리고 햄릿의 고뇌 이런 것들이 이해가 가는. 아무튼, 고전을 많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지훈

이제 한 달 된 신입 기자인 제게 조언 한 말씀만 딱 해주시고 저는 이제 개인적인 질문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지승호

이런 마음을 갖고 계시면 정말 훌륭한 기자가 되실 것 같고요. 기자가 중요한 직업이지 않습니까.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게 많은데 이 마음을 계속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지승호가 기억되고 싶은 지승호
“때론 기억 안되는 사람 되고 싶기도 하지만 좋은 텍스트를 만들고 갔다는 얘기 듣고파

  

   
▲ 지승호 작가 ⓒ투데이신문

 

   
남정호

작가님의 시그너쳐 질문이라고 적어주셨더라고요. 앞으로 더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승호

예전에는 욕심도 많았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버리게 되는 거 같더라고요. 아니면 상처받게 되니까요. 너무 욕심을 내면 누구를 만나고 싶은데 못 만나면 상처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저분은 못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일 꾸준히 하다 보면 또 만날 수 있는 거고요. 제가 계속 말씀드리는 게 우리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면 하고 하는 일이 언론 계통의 일이잖아요. 아까 이상호 기자를 인용해서 무당이라고 얘기했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 위로해줘야 하는데 그동안 못해왔잖아요. 그런 일들을 많이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제 15년, 깔때기일 수도 있지만, 동료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동료는 이미 어디선가 늘 존재해 있었는데 이제 만나게 된 거예요. ‘아 이 사람들이 각자 자기위치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라는 걸 만나게 된 과정이고요. 그런 분들이 너무 많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저는 인터뷰라는 콘셉트로 계속 얘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얘기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그걸 통해서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얘기하고 이런 과정들이 기분도 좋고 조금은 사람들을 챙겨주는 사회가 되는데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 좋습니다.

 

   
남정호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지승호

때로는 기억이 안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래도 저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 느끼기에 좋은 텍스트를 만들고 갔다는 얘기를 듣고 싶기도 하거든요. 이번에 절반 왔다고 생각하는데 잠깐 쉬어야 되는 건지 계속 고민은 있어요. 그전에 인터뷰에서 100권을 하고 싶다고 많이 얘기했죠. 근데 100권은 상징적인 거예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기간 동안 뭘 하겠다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어쨌든 이제 절반은 왔는데 이걸 좀 멈추고 다른 경험을 하는 게 필요한 건지 싶어요. 근데 또 어떤 면에서는 한번 멈추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어요. 어쩌면 제가 계속 15년 동안 한해도 쉬지 않고 평균 서너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너무 힘들어서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경제적으로 좀 안정이 돼 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내가 여기서 너무 멀어질 거 같아서 못 떠났던 측면이 있는 거 같거든요.

 

   
남정호

그게 또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내신 계기가 될 수가 있기도 한 거네요.

 

 

   
지승호

계기라기보다는 못 도망가는 거잖아요. 계기는 다른 계기를 통해서 도망가야지. 주변에서, 또 가족들도 힘들어하니까. 딴 데서 돈 벌어서 생활비로 갖다 줘야 하는데 그걸 못했던 이유는 그 계기를 못 찾은 거일 수도 있겠죠. 그냥 저는 그런 생각을 갖고 해왔던 거 같아요. 지나다 보면 구걸하시는 분이나 빅이슈 판매하시는 노숙자분들 같이 힘든 분들이 많이 보이잖아요. 새누리당 사람들은 그쪽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던 거 같고 이쪽(진보진영)도 그동안 그런 분들한테 별로 공감을 느끼게 활동을 해오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또 외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게 그거잖아요. 한국은 아직도 변화하고 싶어 하는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거. 시민사회 운동이 남아있고 이번 선거로 그래도 보여줄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사회라는 거죠. 근데 그런 힘 자체가 각자 자기 위치에서 고민하시는 분들의 힘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걸 모아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정호

이전에 작가님이 인터뷰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쓴 나라가 지금에 와서는 기록에 대해서 정말 무신경하다고 말씀해주셨더라고요.

 

   
지승호

무신경한 정도가 아니라 그때보다 더 무식한 사회가 됐는데. 조선왕조가 500년을 갔잖아요. 근데 그때 기록 중에 없어진 게 별로 없어요. 왕이 그걸 못 버리게 막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걸 권력들이 없애버리고 태워버리는 사회가 됐죠. 공개 안 해도 될 걸 공개해버리고.

 

   
남정호

사관이 사라져버린 거죠.

 

 

   
지승호

선비라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멋진 태도가 있거든요. 나라가 안 좋을 때 비분강개하면서 목을 맸던 그런 분들의 전통이 있잖아요. 근데 지금은 어떻게 보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리더가 된 사회가 됐는데 언론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알려줘야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근데 언론사가 뭐 조중동보다 작다? 그건 뭐 어쩔 수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좀 다른 방식으로 길게 보면 다른 얘길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누가 저한테 네 라이벌이 누구냐고 얘기하면 동아일보 황호택 선생 얘길 하거든요. 좀 세계가 다르잖아요? 전 라이벌이니까 그분한테 이기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이쪽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서 하나하나 이길 때 우리가 이기는 거잖아요. 김어준 총수랑 저는 라이벌이 아니예요. 우리 편이지. 이 사람이 야구로 치면 박병호가 되고 내가 강정호가 되고 아니 유한준이면 어때요. 더 잘 쳐서 우리 팀 이기는 게 더 중요하지.

 

   
▲ 지승호 작가 ⓒ홍상표 작가

 

   
남정호

몇 번 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죠.

 

 

   
지승호

그 안에서 노력하면 되잖아요. 내가 나중에 박병호보다 더 잘 칠꺼야라고 노력하면 되는 건데 깎아내리고. 이쪽 진영이 그런 게 너무 많았어요. 가디언지에서 작년에 세계 5대 혁신시장 뽑은 적 있어요. 거기에 박원순 시장이 들어갔어요. 10~20년이내 정도 당대 시장 중에 뉴욕의 마이클 블룸버그부터 여러 명이 뽑혔어요. 그런데 현역시장 중에는 박원순 시장밖에 없었어요. 이거 우리 자랑 아닌가요. 가디언이 만만한 매체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박원순 시장 뵙고 물어봤어요. ‘너무 홍보 못하시는 거 아니예요?’ 그랬더니 ‘에이 뭐 저 자랑할 것도 많은데요 뭐’(웃음) 근데 슬픈 건 이쪽 진영에서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아까 유한준, 박병호, 강정호 얘기했지만, 이쪽 진영의 사람들이나 지지자들이 저 사람이 저거 해서 MVP 될까 봐. 야구선수들보다 못한 거야. 내가 유한준이 안타 치고 나갔기 때문에 타점 올릴 수 있었고 박병호 걸렀기 때문에 강정호는 내가 타점 많이 올릴 수 있었어요라고 얘기를 해야지 강팀이 되는데. 강팀이 될 생각이 없는 거예요. 강팀이 되려면 좋은 일이 있으면 칭찬해 주면서 우리 팀을 강하게 만들어야 하잖아요. 근데 이쪽에 있는 그 사람들부터 해서 지지자들도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데 이 사람이 뜨면 안되라고 해서 그런 텍스트는 또 무시해요.

 

   
남정호

야구로만 생각을 해봐도 그런 4번 타자가 내 뒤에 있는 거잖아요. 그럼 3번 타자도 되게 든든한 거잖아요.

 

   
지승호

그러니까. 저쪽이랑 경쟁해서 이길 생각이 없는 거지. 이쪽에서만 경쟁하고. 오히려 이번에는 이 사람이 4번 쳐야겠네. 이 사람이 4번치고 나 5번 치면서 나 열심히 쳐서 이 사람 이길 꺼야라는 경쟁심, 또 안되면 어때. 5번 치면 되잖아요. 정권 바꿔서 국무총리 하거나 뭔가를 바꾸면 되지.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동안은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진 거거든요.

 

   
남정호

그렇게 볼 수 있는 거군요. 이제 정말 마지막 질문입니다. 끝으로 작가님께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해주세요.

 

   
지승호

투데이신문이 번창하길 바랍니다. 오늘 너무 즐거웠고요(웃음).

 

   
홍상표

사랑해요. 투데이신문(웃음).

 

 

   
지승호

어쨌든 오늘 너무 즐거웠고요. 이걸로 제 인터뷰 인생이 끝날 거 같긴 하고요(웃음). 저를 밟고 투데이신문이 잘되는 것도 시대의 발전이겠죠(웃음).

 


인터뷰가 끝나고 난 뒤

 

   
남정호

지승호 작가는 취중인터뷰가 그리 좋지 않다고 했다. 나중에 녹취 듣는 게 곤욕이라고 했다. 하고 보니 알겠다. 4시간짜리 녹취를 풀어보니 100페이지, 줄이고 줄였는데도 20페이지다. 원래 이런 걸 늘어놓으려 한 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계속 보태고 있다. 어느 기자의 말처럼 인터뷰계의 타짜인 그를 인터뷰한다는 건 꽤나 부담이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동안 기자는 어떻게 해왔는가가 자꾸 떠올랐다. 무례한 물음표를 남발해온 건 아닌지, 인터뷰이들을 담은 게 아니라 질문지에 대한 그들의 답변만을 담은 건 아닌지. 이 인터뷰가 그의 인터뷰처럼 지승호의 대답이 아닌 지승호를 담았길 바란다. 그날, 그가 곧 인터뷰였고 우리들의 밤은 길었다. 아 참, 2차로 우드스톡을 간 건 비밀이다.

 

   
정지훈

사회에, 또 ‘기자’라는 직업에 첫발을 디딘 새내기 기자에게 40권 이상의 인터뷰집을 낸 전업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를 인터뷰한다는 것은 큰 기대도 됐지만 사실 적잖은 부담과 걱정도 함께였다. 하지만 작가님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가득 찬 맥주잔이 비어가는 순간마다 기자가 가졌던 부담과 걱정도 함께 비워져 나갔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선배와 같은 모습이었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기자로서 지금의 마음을 계속 가진 채 남아주었으면 한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아직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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