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27일 열린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원인과 대책’ 긴급토론회

   
 

“정확한 진단·원인 분석 후 제도적인 대책 마련 필요”
“사후 발생성 대책보다는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 필요”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얼마 전 강남역 인근의 노래방 건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한 30대 남성에 의해 흉기로 수차례 찔려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단순 ‘묻지마 범죄’”라는 의견과 “여성만을 노린 ‘여성혐오범죄’”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본 사건의 원인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6일 오후 3시 국회의원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20대 국회의원 권미혁, 정춘숙, 표창원 당선자가 공동 주체한 긴급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는 좌장을 맡은 정춘숙 당선자 중심으로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사무국장,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허민숙 연구교수, 경찰대학 행정학과 노성훈 교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권익‧안전연구 장미혜 실장이 발제자로 참석했다.

이외에도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과 본 사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 많은 국민들이 토론자로 참석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원인을 분석하고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춘숙 당선자는 “이번 토론회가 우리 사회 전체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자리가 보여주는 것 같다”라며 “이 문제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대안을 모아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하며 열띤 토론의 막을 열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이번 사건이 ‘묻지마 범죄’나 ‘화장실 문제’가 아니다”라며 “여성폭력을 근절할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송 사무처장은 “우리나라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등 폭력 유형에 따라 법률에서 다루고는 있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고 실태 전반을 알 수 있는 통계자료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불평등의 악순환은 강력한 사회적 개입으로 중단될 수 있다. 때문에 여성폭력 근절기본법 제정, 국가 성평등 정책 총괄 기구 마련, 여성폭력범죄에 대한 통계구축, 여성보호와 물리적 환경 개선 극복, 일상의 성평등 정착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본 사건을 두고 남녀 간의 성대결을 부추기는 것은 언론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사건이 처음 보도됐던 일주일간 이 사건과 관련한 언론이 어떻게 다루고 있지 관련 보도의 문제점을 4가지로 분석했다.

이 사무국장은 “CCTV를 활용한 자극적인 뉴스 화면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범죄 예방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선정적인 보도에 불과하며 이 때문에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 범죄라는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하고 사건에 대한 현상만 나열할 뿐 심도 있는 분석을 하지 못하는 것은 받아쓰기 식 보도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이번 사건의 대책으로 경찰이 내놓은 범행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 환자를 반강제로 입원시킨다던지 공용 화장실 개선 등의 실효성 없는 대책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여성 혐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고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 구도를 부각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계속해서 언론이 성차별적인 시각을 확대재생산한다면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며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부추기지 않는 보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언론 스스로가 정립해야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임을 확인시켜줬다”라며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여성혐오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공기처럼 퍼져 있었고 남성들이 이 공기로 호흡해왔다”라며 “한국사회 곳곳에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해 있었는데 누구도 언급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건은 여성들이 이 사회의 소수 약자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사건이고 이는 여성혐오 이데올로기라는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다”라며 “여혐이라는 이데올로기기가 교체되지 않으면 여성을 향한 폭력‧ 무시‧경멸 등이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궁극적인 대책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허민숙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여성혐오에 대한 개념 정의가 불분명하다”라며 “여성을 역겨워하고 증오하는 일부 남성의 일시적인 태도만을 일컫는 훨씬 다양한 형태를 띤다”라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여성을 비인간화해 여성이 피해자가 된 사건에서 여성의 입장은 배제하고 가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바로 여성혐오 문화이다.”라며 “이러한 과정에서 다수의 남성들은 이에 대해 침묵해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많은 남자들이 ‘여성을 좋아하는데 남성들이 무슨 여성을 혐오한다는 것이냐, 모든 남성이 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응징을 반대하고 자신에게 닥칠 일이 아니기에 피해자를 유기하고 방관하며 이들의 호소를 냉소하는 등의 행동들이 직접적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한다”라며 “이는 실질적인 폭력과 다를 바 없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이유 없는 죽음이 내게도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공포와 분노를 통해 폭력이 왜 차별의 문제인지, 젠더권력이 왜 여성혐오의 배경인지를 충분히 인지한 여성들이 앞으로 더 이상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성훈 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범죄예방 관련 정책이 더 이상 ‘젠더 중립적’이 아닌 ‘젠더 중심적’으로 변해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노 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은 그간 부주의로 간과해온 또 하나의 범죄사각지대로부터 느닷없이 ‘허를 찔린 사건’”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지불해야하는 위험 비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혐오범죄라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범죄 유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다수의 살인사건 가운데 하나로 치부되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노 교수는 “경찰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발표한 치안 강화 대책은 다소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라며 “이것들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위험공간의 관리와 문제 지향적 경찰활동으로의 예방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문제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분석, 구체적인 맞춤형 해결방식의 적용, 객관적인 효과성 평가로 구성되는 환류과정이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노 교수는 “살인, 폭력, 성폭력 범죄에 있어서 여성은 피해자가 되고 남성은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기존의 범죄예방정책에서 여성피해자의 문제를 이미 발생한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강조하는 ‘젠더 중립적 방식’이 아닌 여성으로 산다는 이유 자체만으로 삶 자체가 더 위험하고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하는 ‘젠더 중심적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권익안전실장은 “지금 당장의 상황에 급급한 사후 발생성 대책보다는 오래도록 시행 가능한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장 실장은 이와 관련해 “그동안 여러 정책이 마련됐었고 현재도 수많은 대책들이 계속해서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으로는 향후에 이런 사건의 재발을 방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정책간의 중복성이 심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라며 “사후 발생성 대책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과 직결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과 법률이 딱 하나라도 나와 꾸준히 시행될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면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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