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근대 이전 국가에 내는 세금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었는데, 조용조(租庸調)라는 것이었다. 조(租)는 경작지에서 나오는 것에 대한 세금, 용(庸)은 국가에서 하는 대규모 공사에 차출되는 것이나 군에 복무하는 것, 조(調)는 지방의 특산품을 바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세금제도는 중국의 당(唐) 왕조 때 정착한 것인데, 이후 근대 이전까지 세금 제도의 기반이 됐다. 세금을 내는 것은 근대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국민의 의무다. 그런데 국민의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에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조선을 처음 건국한 태조 연간에는 도성(都城)을 새로 구축하는 등 새 왕조에 맞는 각종 대규모 공사가 있어서 국가 차원의 부역(負役)에 사람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희생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국가가 가볍게 여기거나 희생당한 사람에 대한 보상을 가볍게 여기진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사례를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성문 밖 세 곳에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 역부 중 죽은 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복호(復戶)시키다.
-『태조실록』 9권, 태조 5(1396)년 2월 27일 을묘 1번째 기사

수륙재는 불교에서 바다와 육지(陸地)에 있는 고혼(孤魂)과 아귀(餓鬼-굶어서 죽은 사람의 귀신)를 위하여 올리는 의례를 말하고, 복호(復戶)란 “조선시대에 군인·양반·충신·효자의 일부와 및 궁중의 노비 등 특정한 대상자에게 조세나 그 밖의 국가적 부담을 면제하여 주던 일”을 뜻한다. 태조 때면 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신하들이 불교를 비판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교 의례를 거행하면서라도 죽은 사람을 위로하고, 국가의 부역을 수행하다 희생당한 사람들의 집안에는 이후의 세금을 면제해 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태조 때 몇 차례 더 나타난다. 국가에 부역하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태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태조 3(1394)년, 태조가 성 쌓는 역도(役徒)를 놓아보내도록 하고, 교지(敎旨)를 내리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 왕조의 말기에 요역(徭役)이 실로 많았으므로, 백성들이 매우 이를 고통스럽게 여기었다. 내가 즉위한 이래로 (백성들이) 편안하게 모여서 휴식(休息)하게 하려고 생각했다. 성(城)이란 것은 국가의 울타리로서 난폭한 적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장소이니, 방비(防備)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까닭으로, 지난해 가을에 경기도(京畿道)·양광도(楊廣道)·서해도(西海道)·교주도(交州道)·강릉도(江陵道)의 백성들을 징발해 도성(都城)을 수리하고 짓게 했는데, 부역(賦役)을 치르러 나온 뒤에 나무와 돌을 운반하거나, 질병으로 인하여 목숨이 끊어진 사람이 있었으니, 내가 매우 민망하게 여긴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 명하여 3년 동안 그 집의 호역(戶役)을 면세해 주고, 이내 이름을 갖추어 아뢰게 하라.

태조는 자신이 무너뜨린 고려 왕조 때 국가 차원의 부역이 많아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음을 지적하고, 이것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을 짓는 것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백상들에게 부역을 부과해서 공사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표하면서 나중에 세금을 면제해 준 것이다.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시점,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청년이 사망했고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고 있다. 이 청년은 적은 임금을 받았고,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컵라면을 가지고 다녔다. 이 사고는 그 청년의 탓이 아닌,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회사의 탓이 컸으나, 되레 책임이 있는 회사에서는 그 청년의 탓으로 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동은 우리나라 헌법에서 규정한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특히 이 청년은 공기업에서 운영하는 지하철 관련 시설을 수리하다가 희생당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기관에서는 추모하고 보상하며,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노력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그리고 국민의 의무이자 국방과 관련이 있는 병역에서는 각종 비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비난하는 조선시대만도 못하다. 이 칼럼에서 앞의 말을 쓰지 않을 날이 오긴 할까?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