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얼마 전 여동생과의 대화 중 심하게 짜증을 냈던 적이 있다. 계기는 정말 사소한 것이었다. 요즘 집안에 골치 아픈 일이 많아 의논 겸 부탁을 했더니 신앙심 깊은 이 친구가 ‘기도해 줄 게’라는 답을 해 준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의논했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왔다. ‘아직 해결이 안되서 골치 아프다’라는 대답에 또다시 돌아온 대답 역시 ‘기도해 줄 게’였다.

사실 이런 장면에서 짜증내는 것이 도리는 아닐 것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잘되기를 빌어주겠다는 호의에 자증으로 답한 것 자체가 잘 한 일은 아닐 테니까. 그렇지만 ‘기도해 줄 게’라는 말이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지는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드라마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왔다. 재개발에 엮여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가게를 빼앗기게 된 주인공이 재개발 회사 오너를 붙들고 사정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내가 새벽기도 나가서 빌어 주겠다. 그러니 너는 돌아가서 해결되도록 애쓰라’였다. 물론 말로만 기도해주고 개발 밀어부친 덕분에 주인공은 재산을 빼앗겨 버렸다. 이에 앙심을 품은 주인공은 몇 년 후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 간 당사자를 상대로 똑같은 상황을 만든 다음, 살려 달라고 매달리는 당사자에게 같은 말로 앙갚음을 해주었다.

이 자체야 드라마에 나오는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비슷한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쫓기면서 세상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시간이건 돈이건, 절박하게 쫓기는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못하면 살아가는데 타격을 받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기도해 줄 게’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까?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 처한 상황이 심각할수록, 입에 발린 립서비스는 모욕을 넘어 절망감만 심어줄 수 있다.

아프리카에 선교활동 나갔던 사람들 일부가 기관총을 들고 싸우게 됐다는 실화가 있다. 이 배경은 내전으로 무법천지가 된 세상에서 폭력집단이 아무나 해치고 어린아이 잡아가 노예처럼 이용해먹는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을 뻔히 보면서 하나님 말씀 전한다며 ‘기도나 해주겠다’고 할 일 다한 것처럼 구는 행각이, 당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가 될 지는 분명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양심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성경책 대신 기관총’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니, 경건하게 하늘의 뜻에 맡기자는 것이 기도의 의미라고 할 것이다. 이런 말도 일리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실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늘에 해결해 달라고 투정만 부리라는 뜻은 아니어야 한다. 우리 속담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할 만큼 다 해놓고 하늘의 도움을 기대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남의 일이라고 빈말로 때우려는 것은 하느님도 노할 일이다.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사회에는 립 서비스만 넘쳐 나는 것 같다. 필자만 하더라도 얼마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를 여생에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본다. 그래서 나름대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부를 털어놓게 된다. 그러면 아무 근거도 없이 ‘잘 될 테니 걱정 말라’는 덕담으로 응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 자체야 뭐라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답을 들으면서 느끼는 허탈함은 뭘까. 진지하게 같이 고민해주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듣기 좋은 한마디 던져 주는 것은, ‘어려울 것도 손해날 것도 없으니 그냥 한마디 던져 놓는다’는 식이라면 달가울 것이 없다.

물론 이런 정도는 개인적인 속앓이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풍조가 쌓이고 쌓여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분야에까지 영향을 주면 사정이 달라진다. 요즘 세상은 ‘이성보다 감성 자극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말을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사람들이 냉정하게 현실적 도움이 되는 것보다, 실질적인 이득이 없더라도 따뜻하게 마음 달래주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을 느낀다.

아이들 교육에서까지 ‘할 것 못할 것 가르치기보다 아이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고 마음으로 감싸주는 것이 먼저’라는 말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자체는 일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지나치다 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보기 십상이다. 아이들 마음 이해하는 것 자체야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이 세상을 자기 마음 가는대로만 살게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이 그럴 만큼 여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간과 조수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격언도 있다. 이런 측면 외면하고 ‘그저 네 마음 이해 한다’며 제멋대로 하도록 방치한다면 뭐가 될까.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만 가르치다가는 험한 세상에서 난제를 헤쳐 나아가면서 뭔가 이루어내도록 키우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그보다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으면서 투정만 늘어놓도록 부추기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위기감이 느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태도를 보기는 어렵다. 위기를 헤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대책을 세우려 하기보다, 그저 싫은 소리 나오는 거나 틀어막으면서 위기를 키워 나아가는 상황이 되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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