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이 칼럼의 전체 제목은 ‘역사 거울’이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했듯이, 역사가 현재를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이며, 역사 속에서 우리의 현실의 모습을 바라보자는 뜻에서 이런 제목을 지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역사가 아닌 ‘역사를 많이 다루는’ 인문학 열풍을 거울로 삼아보겠다.

인문학 열풍은 인문학 강연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문학 강연은 일반 강연뿐만 아니라 방송 매체를 통해서도 시행되었고, 시청자나 청취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거나, 현재까지 끌고 있다. 얼마 전까지 JTBC에서 방영되었던 ‘차이나는 도올’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방송인과 방청 신청을 한 시청자, 그리고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김용옥씨가 중국, 그리고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역사에 관하여 강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중국에 관한 재미있는 역사, 우리나라의 역사,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엿보는 내용이었는데, 김용옥 특유의 강의 스타일과 재미와 깊이, 감동을 갖춘 내용과 구성 덕분에 인기를 끌었다. 또한 라디오에서도 경제, 삼국지를 소재로 한 방송 등 다양한 소재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 매체로 등장하고 있는 팟캐스트에서도 교양 도서를 소재로 한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대화(약칭 지대넓얕)’, 역사를 대상으로 한 ‘이이제이’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심지어 ‘이이제이’의 경우 고정 구독자만 20만 명이 넘고, 비고정 청취자를 합치면 500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추측이 있어서, 그 수가 이미 최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의 구독자수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 강연에서 강사가 사실과 다른 내용의 방송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OtvN에서 방송중인 ‘어쩌다 어른’이라는 제목의 성인 대상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이었다. 이 방송에서 강사로 출연한 최진기씨가 우리나라 미술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군마도’와 ‘파초’라는 그림을 소개했는데, 이 그림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인 오원 장승업의 그림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미술사학계에서 이 그림이 오원 장승업의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고, 그 결과 최진기씨는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본 칼럼의 필자가 ‘어쩌다 어른’의 다른 출연자인 설민석씨의 강연 일부에서 결론에 내용을 맞추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강연을 진행해서, 그 내용을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에 작성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많은 비판이 있다. 그 비판의 주요 내용은 ‘인문학 강연할 정도의 학문적 깊이가 없는 사람들이 인문학 열풍을 등에 업고 사실과 다른 내용의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본 칼럼에서 언급한 강사 중 최진기, 설민석씨는 학계에서 연구 실적은 쌓은 분이 아닌, 학원 강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분들이다.

이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묻고 싶다. 그렇다면 인문학 강연은 박사학위를 받고 해당 분야에 대하여 학위논문을 쓰고, 연구논문을 게재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인가? 개인의 노력을 통해 강의 내용의 오류를 최소화하고, 강의 준비만 잘 한다면, 그동안 축적된 강의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 훌륭한 강의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인문학 연구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부르짖으면서 과연 인문학 대중화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동종 분야 연구자들이나 찾아서 읽는 어려운 내용의 논문과 책을 생산해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분야를 공부하진 않았지만, 인문학에 대한 욕구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쉬운 글은 얼마나 썼는지 묻고 싶다. 또한 그러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잡글을 쓴다’, ‘연구자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하진 않았는지도 자문했으면 좋겠다. 혹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사용, 루터의 기독교 경전의 독일어 번역 이후 발생한 종교 개혁같이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연 열풍으로 자신들의 학문적 권위와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어쩌다 어른’에서 강의한 강사나 제작진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꼼꼼하게 강의를 준비하고, 제작진은 강사의 강연이 옳은 이야기인지 끊임없이 교차검색을 했어야 된다. 제작진이 출연진을 보호하는 것은 제작진의 의무이며, 방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해프닝이 일어났으며, 이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어쩌다 어른’ 제작진의 시도가 폄하되지 말아야 한다. 살기 힘든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문학은 분명히 현재의 팍팍한 삶을 돌파하고, 삶의 환경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미의 여부와 시청률을 고려하지 않은 ‘어쩌다 어른’ 제작진의 시도는 찬사를 받아야 하며, 개인적으로는 이번 해프닝을 계기로 더 좋은 방송이 나오길 희망한다.

인문학 열풍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생존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 인문학계가 ‘인문학이 위기이며,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고고함을 빙자하여 대중과의 소통에 인색하고, 나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인문학 강연을 듣는 시청자, 청취자, 수강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인문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좀 더 능동적으로 강연이나 방송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 일부는 ‘나 이런 것에도 관심 있어!’라고 자랑하고 싶은 지적 허영심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채우고자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은 인문학이 장신구가 될 뿐 삶을 윤택하게 할 자양분이 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인문학에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강의를 듣고, 능동적으로 찾아보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소통하길 바란다. 클릭 한 번이면 오류를 찾을 수 있는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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