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거리의 변호사’ 박주민 국회의원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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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위해 일한 인권 변호사, 국회의원 되다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정치인의 길을 택했다”

세월호 참사‧구의역 사고‧옥시 사태…개선된 부분 없어
문제점 해결 없으면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 반복될 것

국가 공백 메우는 국민에 실질적 보상 필요
붕괴된 대한민국 공동체 회복에 이바지 할 것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지난 17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실종자 수색과 희생자 시신 수습에 나섰던 故 김관홍 잠수사의 사망 소식에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그날 밤 유가족 외에 김관홍 잠수사의 빈소를 지킨 한 사람이 있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밤낮으로 뛰며 ‘세월호 변호사’를 자처, 얼마 전 20대 국회의원으로 여의도 국회에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44·은평갑)의원이다.

국회의원이란 타이틀이 아닌, 단지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정치의 길을 택했다는 박주민 의원. 그가 말하는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듣고자 <투데이신문>은 지난 20일 박주민 의원을 직접 찾았다.

“법은 항상 한 발 느려…故 김관홍 잠수사에 미안한 마음뿐”

Q. 김관홍 잠수사는 의원님께서 선거를 준비하시는 기간 동안 운전기사와 수행비서의 역할을 하며 의원님에게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빈소를 지키시기도 하면서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셨다고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우선 오늘 발의한 민간잠수사를 특별법상 지원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의 법안을 김관홍 잠수사와 함께 같이 만들었는데 법안 작업을 마치고 이를 법제실에 보내 회신을 받은 날이 그가 세상을 등진 날이 됐다. 원래 법안이 발의가 되고 통과되면 김관홍 잠수사도 지원을 받으실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 그동안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잘 지내고 계셨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드셨던 것 같다. 항상 법이 어떤 사건보다 늦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Q. 故 김관홍 잠수사 뿐만 아니라 참사 당시 피해구제 활동을 한 민간잠수사들 중 상당수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트라우마에 의해 고통 받고 있다고 들었다. 이들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법에 따른 보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보상기준이 너무 낮아 일반 산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민간잠수사분들은 이미 생계수단을 잃은 분들이다. 좀 더 실질적인 보상기준이 들어간 법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Q. 세월호참사 피해지원특별법 개정안인 ‘김관홍 잠수사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참사 당시에 직접 바다에 뛰어들며 희생자들을 수색하신 분들이 바로 민간잠수사분들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그럴 능력도, 인력도 장비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공백이 있었던 것이고 그 공백을 국민들이 나서서 메워준 것이다. 그런데 이 때문에 그분들은 여러 가지 피해를 입으셨다. 지금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치료를 받고 있고 심지어 18명 중에 10명은 더 이상 잠수가 불가능하다. 생계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즉 법안이 통과돼야하는 이유는 첫째로 국가의 공백을 메우려고 국민이 나섰으면 이에 대한 배려를 해줘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둘째로 앞으로 국가가 이런 식으로 대우한다면 국민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적으로서의 의미가 될 것이다. 내가 국가를 도와주면 나중에 국가도 나를 돕는다는 하나의 시그널을 만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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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 내 삶의 방식”

Q. 변호사 시절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밀양 송전탑, 쌍용차 해고 사건 등 많은 사건 등에서 모두 약자의 편에 서 ‘거리의 변호사’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다. 약자의 편에 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는데 그 때 철거촌, 농촌, 공장 등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때가 가장 기쁘다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생활까지 통틀어 봐도 내가 남들에게 도움이 될 때가 제일 보람 있었고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물론 스트레스도 받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Q. 변호사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의원님 역시 최종 목표를 정치로 뒀던 것인가.

원래 정치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이전에 몇 번의 제안들이 들어왔을 때 모두 거절했다. 물론 정치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있었다. 이는 변호사 시절 오랜 시간 어려운 분들 옆에 있으며 ‘정치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되면 이런 분들이 덜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내게 정치를 많이 권유했다. 하지만 이는 단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후에 “너 이러려고 활동했지?”라는 말도 들을 수 있고, 도전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공하지 못했을 때 본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사회에서도 정치에 한번 발을 들였던 사람이 들어오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이렇듯 다양한 이유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지금 내가 이곳에 뛰어 들게 된 것은 지금이 내가 꼭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Q. 자신의 그동안의 인생을 돌아보며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들을 이야기해 주신다면.

대학교 4학년 시절, 사회에 이바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운동을 하며 작은 철거촌을 도와드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변호사로서의 꿈을 품었다. 그때 영구 임대 주택에 들어가길 원하는 주민들과 함께 구청장의 도움을 받고자 면담을 신청했는데 만나주시겠다던 구청장은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눈이 많이 오던 크리스마스이브, 꼬마들과 함께 주차장에서 수 시간을 기다렸다. 눈을 펑펑 맞고 발길을 돌리며 처음으로 ‘그래도 내가 변호사였으면 만나게는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사법시험을 보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게 됐다.

Q. 국회 입성 두 달이 조금 지났다. 변호사 시절과 비교해 본다면. 

먼저 국회의원과 변호사의 공통점은 법을 다룬다는 점이다. 변호사도 법을 다루고 국회도 법을 다룬다. 미국의 한 정치학자는 “정치인에 가장 걸 맞는 직업은 변호사다”라고 말했다. 반면에 차이점은 법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법적으로 다루느냐 입법적으로 다루느냐의 차이다. 법을 사법적으로 다룰 때는 그냥 내 주장을 하면 되는 것이지만 입법적으로 다룰 때는 협상과 타협을 전제로 자기주장을 펼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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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Q. 의원님에게 세월호 특별법이란 무엇인가.

내가 꼭 해야 될 과제이다. 그리고 이 사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Q. 의원님의 별명을 살펴보면 성장과정이 보이는 듯하다. 고등학교 시절엔 ‘깨알’ 고시생 시절엔 ‘스터디 머신’, 그 이후 ‘거리의 변호사’, ‘세월호 변호사’ 등으로 불렸다. 이 중 어떤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드시는지.

‘거리의 변호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세월호 변호사’ 역시 불러주시는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지만 거리의 변호사가 더 큰 개념인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슈를 포함하는 의미 같고 또 현장에 있었다는 말이 내포돼있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거리의 변호사’를 꼽고 싶다.

Q. ‘세월호 변호사’라는 타이틀 어떠한가. 부담되는 부분은 없는가.

일단 세월호 문제가 어떤 특별한 일을 당한 특별한 사람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문화, 관리와 감독을 해야 될 정부가 관리와 감독을 받아야할 기업과 유착된 것 등이 모두 참사의 원인이 됐다. 최근 구의역 사고, 옥시 가습기 사태와 같은 경우를 봐도 개선된 부분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계속 온전하고 있는 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는 반복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사회의 문제를 집약시켜서 보여준 사건으로 볼 수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세월호 변호사’ 라고 불리는 점은 참 감사하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다루고 싶은 주제와 이슈가 많은데 나머지 것들이 조금 묻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Q. 선거기간 동안 경쟁후보로부터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들은 바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에 대해서는 내가 당에 입당했던 시기를 보면 될 것이다. 당시는 새누리당이 200석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수도권에서 출마하면 무조건 실패라고 말했을 때였다. 그때 입당한다고 하니 주위에서는 이를 미친 짓이라며 말렸다. 아마도 내가 정치가 목적이었다면 들어가기 좋은 시기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전에도 영입 제의들이 있었다. 어떤 당에서는 나를 두 번이나 찾아온 적도 있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이처럼 그 당시 주변의 상황을 합리적으로 본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세월호 진실규명과 관련해 현 정부의 태도는 어떠하다고 보는가.

사실 현 정부가 진실규명을 원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진상규명에 대한 어떤 활동에도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Q. 세월호 유가족들이 선거를 많이 도왔다고 들었다.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도와준다는 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를 돕는다는 것을 밝히지 않으려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월호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심지어 당에서 나를 처음 영입했을 때 그 담당자마저도 세월호는 내세우지 말자고 했다. 세월호를 내세우는 순간 상품가치가 더 떨어진다며 10년 동안 해왔던 인권변호사시절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 그것만 내세우자고 했다. 유가족 분들도 인형 탈을 쓰고 와서 청소도 해주시고 드러나지 않게 많은 일들을 해주셨는데 이는 정말 감사한 일이다. 간혹 일부 사람들은 유가족 분들이 드러내놓고 선거운동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Q. 당선 결과 소식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많이 기뻐했을 것 같다. 당시 어떤 말을 들었는지,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

2년 만에 처음으로 웃어본다는 말씀을 하신 분이 있다. 그 말이 가슴을 많이 울렸다. 사실 세월호 참사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내가 당선이 된 것은 별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 자식이 서울에 가서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 돌아온 것처럼 기뻐해주시며 2년 만에 처음 웃는다는 말씀을 하시니 그게 굉장히 감사하고 좋았다.

Q.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해 어떠한 해결책을 찾을 것인지.

이제 의회의 구성원이 됐으니 의회차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크게 입법, 국정감사, 자료제공요청이라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특조위와 같은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기관들이 활동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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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

Q.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나쁜나라>(2015)를 보면 의원님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해 욕설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님이 더민주를 택해 의아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국회의원 자체가 하고 싶어서 이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길을 선택했다. 해야 할 일을 이뤄내는데 있어서 어떠한 조건이 가장 유리한 길일까를 생각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안된다고 판단했고 야당에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실제로 모든 당으로부터 제안이 왔었다. 그 중 현실적으로 해야 할 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정말 어려운 여건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당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보였다.

Q. 출마를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라기보다 스스로가 많이 고민했고 당시 옆에서 조언을 주신 분들이 좀 있다. 고민하고 있을 때 세월호 유가족 분들도 그 사정을 듣고 “변호사로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다 도와줬으니 계속해서 우리를 생각한다면 가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결정적으로 출마에 영향을 미쳤던 건 아니다. 사실 출마 여부와 관련된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다른 곳에 퍼져나갈 수 있고 또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혼자 많은 고민을 했다.

Q. 은평갑은 이미경 전 의원이 오랜 시간 자리를 닦아온 지역이다. 여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사실 이 전 의원과 같은 무게감을 지금 당장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전 의원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을 받으며 인적인 자원이나 데이터와 같은 부분들을 많이 물려받을 수 있었다. 단지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이 전 의원도 열심히 하셨지만 그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Q. 의원님은 친문(친문재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표가 있을 때 내가 영입이 됐기 때문에 친문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내가 어디 특정계파에 소속돼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단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정치인이 된 거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정도다.

Q. 다른 인터뷰에서 의원님을 보면 ‘올바른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일단 민주주의라는 것은 국민이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들이 수시로 정치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하고 쉽게 비판하고 쉽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제도가 우리나라는 많이 부족하다. 때문에 이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Q. 과거에 범민련, 통합진보당 등과 함께 국보법 폐지를 주장해 온 이력이 있다. 때문에 종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현재 대북관계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보다 평화통일이 우선시 돼야 할 것이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과의 네트워크를 끊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것이 평화통일을 위한 길인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가다가 붕괴된다면 과연 붕괴되는 곳이 어느 쪽일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는지 모르겠다. 실질적으로 북한은 아직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때문에 차라리 6자회담을 부활시켜 중국과 함께 대화를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점점 멀리하고 미국의 힘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독일의 통일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조차도 많은 교류와 지원 끝에 통일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한참동안 그 간극과 갈등이 계속됐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대로 흡수통일을 해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의문이다.

“올바른 민주사회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 될 것”

Q. 앞으로 국회의원 임기 동안 세월호 문제 외에도 꼭 해결하고 싶은 이슈나 문제가 있다면.

민주주의를 실질화 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들을 만들어 보고 싶다. 첫 번째가 강정해군기지, 밀양송전탑공사와 관련된 경험에서 얻은 것인데 우리나라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할 때 제대로 된 절차법이 없다. 밀양 같은 경우도 0.67%의 주민만 불러 모아서 설명회를 하고 바로 실행했고 강정의 경우는 1900명의 주민 중 87명을 모아 주민총회를 진행했다. 조약을 체결할 때는 올바른 절차를 거쳐야하는데 우리나라는 조약체결절차법 자체가 없다. 이와 관련된 법은 꼭 만들어져야 한다. 다음으로는 권력감시기구가 권력의 눈치를 과하게 본다는 점이다. 국민들을 생각했을 때 어느 정권이 들어오던 검찰이나 국정원, 경찰 등이 정치적 중립성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제도개선이 꼭 필요하다.

Q. 대한민국 20대 국회의원으로서 앞으로의 방향과 계획은.

민주주의를 실현 시킬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세월호 문제 등 지금껏 관심있게 해왔던 현황들이 좀 더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지역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바지하며 다양한 측면에서 골고루 성과를 낼 수 있는 그런 의원이 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소망, 각오가 있다면.

우리나라가 점점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동체라는 것은, 또 그 공동체가 유지된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소위 말해 있는 사람들은 이익만을 챙기고 희생은 전 사회에 떠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강남역 희생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내용을 보면 ‘난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공동체로서 여성들이나 약자의 삶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지금 현재 우리사회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동체의 붕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동체라는 개념이 회복 됐으면 좋겠고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정치인으로서 이바지 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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