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평소 경외심을 갖고 있는 다섯 가지의 직무가 있다. 야전군 지휘관과 강력계 형사, 소방관, 외과의사 그리고 에어컨 설치기사.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외과의사까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마지막에서 다들 의외란 표정을 짓곤 한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작은 계기가 있다.

2년 전 봄날이었다. 가까운 지인이 그해 여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신혼집은 남산 근처 어느 고층아파트 단지로 결정되었고, 결혼식 날짜보다 두 달 앞서 입주하게 됐다. 그 전에 가전제품과 가구들이 먼저 들어오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지인의 아파트에서 그 들어오는 모습들을 모두 지켜보게 됐다.

냉장고와 TV 등 일반적인 가전제품들은 하루 만에 설치가 끝났고, 다른 가구들도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배달됐다. 마지막으로 에어컨만 들어오면 입주 준비는 마무리가 됐다. 에어컨 설치는 하루에 끝나는 작업이 아니었다. 설치하기 전날, 젊고 잘 생긴 담당 설치기사가 약속을 잡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에어컨을 어떻게 설치하면 좋을지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견적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지인 부부는 스탠드와 벽걸이가 하나의 실외기를 사용하는 2in1 에어컨을 들이기로 했는데, 아파트 구조 때문에 이 둘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스탠드가 놓일 마루와 벽걸이가 걸릴 안방에 베란다로 향하는 각기 다른 구멍을 내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베란다 한쪽이 에어컨 호스들로 지저분해지게 되어 미관상 좋지 않았고, 생활하기에도 불편했다.

기사는 고심 끝에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마루에서 베란다 방향으로 대각선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면 여러 난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말을 꺼내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 부분에 수도관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 견적을 내던 당일에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작업 당일인 다음날이 되었다. 그의 최종 결정은 결국 대각선으로 구멍을 뚫는 것이었다. 전날 다른 선배 기사들과 그 문제를 놓고 회의를 했는데, 경험 많은 백전노장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각선으로 뚫어라.”

선배들의 의견은 거기에 수도관이 없을 테니 대각선 방향으로 구멍을 내라는 것이었고, 기사는 그 조언에 따라 마치 SF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크고 두꺼운 총 모양의 기구로 근 한 시간에 걸쳐 벽에 구멍을 뚫어냈다. 몇 개의 철근이 잘려나가는 대공사였다. 그리고 역시나 그 자리에 수도관은 없었다. 마루에서 베란다를 향해 비스듬히 뚫린 그 깔끔한 단면의 구멍이 그날따라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 후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건축물에 대한 이해와 직관적 판단, 그로부터 이어지는 결단,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손놀림, 난간 등 얇은 철제 구조물 하나에만 의지해 고층건물 벽에 올라탈 수 있는 담력, 마지막으로는 현장을 깔끔하게 청소하고 떠나는 그 책임감까지. 그날 나는 에어컨 설치기사의 작업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외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지어진지 조금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들어갈 일이 있으면, 외벽에 보이는 에어컨 호스들을 관찰하는 게 나의 작은 습관이 됐다. 신기하게도 같은 모습으로 연결된 호스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집주인의 요구와 아파트 구조의 한계, 그 난관들을 뚫어내는 설치기사의 고뇌와 결단, 그리고 작업하는 모습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마치 그 봄날의 대각선 구멍처럼 경이로운 느낌의 영상이 되어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러던 얼마 전, 나는 이 낭만어린 경외심에 아주 중요한 것이 소외되었음을 갑작스레 깨닫게 되었다.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직원  진모(42)씨가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의 한 빌라 3층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다 추락사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은 사고의 표면적인 원인이었을 뿐, 그 뒤에는 가혹한 노동환경이라는 진짜 괴물이 숨어 있다는 사실도 언론사들의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그렇지만 나는 사고 현장 옆에 다음의 기억을 덧칠해야만 했다.

2년 전 봄날에도 그랬다. 그 집은 아파트 16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베란다 안쪽의 안전한 곳에 있어도 바닥을 내려다볼 때면 가슴이 절로 두근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설치기사는 안전장비도 없이 난간을 넘어 실외기를 놓는 받침대로 넘어갔다. 물었다. 그렇게 넘어가셔도 괜찮으신 거냐고. 그때 그의 젊고 맑은 얼굴은 내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다. 그는 정말 괜찮았던 것일까. 에어컨 설치기사를 직업으로 갖게 되면 자동으로 겁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고의 마신이 알아서 피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의례적인 걱정만 한 마디 던졌을 뿐, 원래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감내하는 분들일 거라며 편의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가 첫 단락에서 꼽았던 다섯 가지의 직무는 모두, 우리 사회가 고강도의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야들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다들 나와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종사한다. 사고가 나면 다치고, 가혹한 노동환경에 던져지면 반드시 고장이 나게 되는 보통의 사람들. 게다가 경외심조차 받지 못하는 위험한 직종들의 사각지대는 또 얼마나 넓을 것인가.

앞으로도 나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갈 때면 여전히 에어컨 호스들의 위치를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다만 담력이 넘치는 전문가들의 아슬아슬한 모험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애써 두려움을 떨쳐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살풍경한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질 것 같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경외심이라는 미명 아래 위험천만한 작업을 우두커니 쳐다보고만 있었던 내 부끄러운 모습도 함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