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지난 6월 21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융합센터의 2회 콜로키움이 있었다. 지난 1회 발표 내용 대부분이, 융합센터의 설립 취지와 별 상관없는 부실 발표로 채워져 있었음은 지난번 칼럼에서 지적한 바 있다.그러니 센터장께서 직접 나서면 ‘뭐가 좀 나아지려나’라는 기대를 가질 법도 하겠다.

그래서인지 이날 발표 내용만큼은 아주 참신(?)했던 것 같다. ‘한국의 안보상황과 애치슨 라인의 재음미’라는 제목의 발표 내용은, 애치슨 라인이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과는 달리 ‘마오쩌둥이 소련과 투쟁하도록 부추기려는 것’이었고 덕분에 ‘스탈린의 영토욕을 좌절시키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주장이 주요 골자란다.

더욱이 권희영 교수는 이런 주장을 ‘사드배치’같은 주요 현안과 연결시키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 주장이 인정받는다면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을 것이고, 그만큼 논증과 검증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당연히 이번 발표에는 치밀한 논증과 검증이 뒤따라야 했다.

항상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아니나 다를까, 적어도 발표문에는 논증 과정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관련 사료(史料) 몇 개를 썰어다 붙여놓은 것뿐이다. 이런 식으로 발표문 만든다면 ‘분’ 단위의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원칙적으로 정부기관 학술회의 같이 책임 져야 하는 자리에 내민 발표문이라면, 이렇게 성의 없이 작성해서는 안 될 텐데. 원래는 발표문에, 사료(史料)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분석하고 구성해서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그런 근거와 논증 없이 말로 때우겠다는 발상은 인정받을 수 없다.

책임 있는 발표는 잡담처럼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늘어놓자는 것이 아니어야 하니, 검증 역할을 해야 할 토론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 토론이 제대로 되려면 입에서 나오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말 대신, 확인할 수 있는 문자로 정리해줘야 한다. 이렇게 기초적인 사실만 알아도, 논증과정 없는 이 발표문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막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발표문이 한국학융합센터의, 그것도 이곳 수장의 발표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우선 관련 사료 몇 조각 썰어 붙여 놓은 발표에 인접 분야의 지식이 필요할 턱이 없으니, 이번에도 융복합 연구를 위해 한국학융합센터를 세웠다고 하는 취지부터 낯 뜨겁게 만들고 만 셈이다. 더욱이 연구센터의 수장이 앞장서서 설립취지를 정통으로 훼손하는 발표문을 내놓았으니, 이제는 뭐가 정상인지조차 헛갈릴 지경이다. 사실상 ‘설립취지는 취지일 뿐이고, 실제로는 그런 거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나 늘어놓고 말 것’이라고 연구센터의 수장이 앞장서서 선언해 놓은 거나 다름없다.

그마나 발표 내용이라도 알찬 것이라면, 혹시 연구센터 설립취지와 조금 다르더라도 눈감아 줄 여지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이조차 두 번 연속이면 별로 그럴 여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눈을 질끈 감아보자. 하지만 그래봐야 면죄부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런 발표문은, 정부출연기관 같이 책임 있는 곳의 콜로키움에서 나와서는 안 될 정도로 성의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콜로키움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이번 발표는 학계에 매우 심각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 콜로키움이란 기본적으로 토론을 통해 공동으로 연구하는 방법이라는 점은 세미나와 비슷하지만, ‘권위 있는 전문가를 초빙해 다른 사람들의 미숙한 의견을 바로잡아 주는 방식’이라는 차이를 추가하기도 한다. 권희영 교수가 과연 ‘다른 사람들의 미숙한 의견을 바로잡아 줄만한’ 권위자인지에 대해서는 잠시 판단을 보류해보자. 드러난 사태를 찬찬히 살펴보면 금방 드러날 것 같으니까.

진정한 권위자라면 권위 내세워 사람을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정말 존경할만한 측면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학문을 다루는 콜로키움 같은 곳에서 권위자의 풍모를 느끼게 해주려면, 배우는 입장에서 존경심을 느낄 만큼의 근거와 논리를 제시해주면서 한 수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런데 명색이 전문가 내지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배우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오는 콜로키움에서, 사료나 몇 개 썰어 붙여놓고 대충 알아들으라는 태도가 뭘 의미할까? ‘나는 권위자이니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아는 거지, 감히 설명을 요구하지 말라’는 얘기 밖에 안 되는 것이라면 심한 말일까? 이런 뜻이라면 권위를 내세운 ‘갑질’인 셈인데, 이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필자도 강의 나가는 대학 수업에서,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보완할 목적으로 지원자에 한해 발표를 시킨다. 이 때도 자료 몇 개 썰어 붙여 놓은 발표를 하는 학생이 가끔 있다. 이런 경우 설교를 했었다. 사회에서 필요한 고급인력이 되려면, 중요한 주제를 조사·분석해서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러려면 자료는 물론 분석과정을 논리적으로 보야 줘야 인정받을 거 아니냐고,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기획이나 연구 같이 선망하는 부서 보내달라고 하면 상사나 동료들이 뭐라 생각하겠냐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권희영 교수의 발표문을 보니 그동안 학생들에 쏟아놓았던 잔소리가 심히 민망해진다. 사실 잔소리 들었던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정부출연기관의 부서장 급이 연구센터의 이름을 걸고 하는 콜로키움에서 자료 몇 개 썰어 붙여 놓고 때워도 되는데 ‘왜 나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느냐’고 따져 온다면, 해 줄 말을 찾기 어려워질 것 같다.

사회에 나가서도 ‘자기 편리한 자료나 몇 개 붙여놓고, 그에 대한 논증이나 검증 없이 중요한 발표 때우려고 하면 무사할 줄 아느냐’고 으름장을 놓았건만, 그러고도 뒤탈 없이 출세만 잘 하는 장면을 실제로 보고 있으니까. 그러니 ‘사회에 나서 살아남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공부하라’고 폭풍 잔소리를 해왔던 것이 심히 민망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현장의 토론 요약을 보니, 이런 발표에도 싫은 소리 한마디가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말이 나왔는데 삭제했다면 이 자체가 역사조작이니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고, 어쨌든 이날 토론 기록에는 발표문이 가진 문제보다는 국내 좌파들의 역사 왜곡 비난하는 말이 더 비중 있게 남아 있다.

발표문의 수준을 보면 좌파 타령이 나올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뒤집어 보면 권희영 교수 같은 이가 왜 좌파 타령에 집착해야 하는지 짐작이 갈 것도 같다. 자기 비리를 지적하면, 역적으로 몰아버리는 수법 자체가 고전적인 수법이고, 그래서 우리 사회에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는 속담 같지 않은 속담이 탄생했다.

학문을 직업으로 하거나 그렇게 하겠다는 교수와 대학원생들 모인 자리에서 최소한의 요건조차 갖추지 않은 내용을 이리 넘어가 주는 상황을 보니, 그런 수법이 성공을 거둔 셈이다. 아무리 낡은 수법이라도 통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을 보니 앞으로도 우리 학계의 앞날에 대한 기대는 바보짓 같다. 그저 거룩하신 분들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설명 같은 거 요구해봐야 소용없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따라서 세금 쓰는 연구기관이 날림으로 성과 채우는 행각을 비판하는 것도 의미 없는 호들갑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요즘 거액의 세금을 안 내는 사람들에게 사기 쳐서 받아낸다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 같은데, 상황이 이러니 별 게 다 의심스럽다. 이보다 더 악질적인 것은 피 같은 세금을 날림으로 일하고 받아내는 것 같은데, 여기에 눈길 돌리지 말라는 메시지는 아닌지.

그러고 보면 교수 자리가 왜 ‘신이 내린 직장’이라 하는지도 알아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기는 주장만 하면 그만이지 그 주장의 근거나 논리는 설명해 줄 필요 없다는 식으로 기관과 연구센터의 이름을 건 일을 때우고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을 받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 그리 흔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라도 교수라는 자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날림으로 중요한 발표나 업적을 채워도 별다른 응징을 받지 않는 꼴을 보고도,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해서 업적을 내야 할 필요를 느낄 리 없다. 그러니 노력도 안하면서 대우만 받으려는 풍조가 퍼져 나아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출세한 사람들에게 다음 세대가 같은 것을 배우고 가르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악순환에 권희영 교수 같은 분들이 보여준 솔선수범의 영향은 막강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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