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大國)에 대한 군소리는 적반하장?

   
▲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지난 번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융합센터의 센터장 권희영 교수의 날림 발표에 대해 비판했지만, 문제가 될 내용은 더 있다. 사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런 발표문에 나타난 주장과 그 주장이 사회적으로 몰고 올 파장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날림 연구로 내려진 결론에 영향을 받아 정책에라도 반영이 된다면, 그 자체가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발표를 통한 주장들이 주목된다.

이번 콜로키움 중 권희영 교수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사드 배치에 대해 미군기지 방어를 위한 것이니 미국이 재정적으로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 일각에서의 주장은 참으로 적반하장적인 입장이다’라고 했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사드 배치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두고 논란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권희영 교수는 너무나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버렸다.

그런데 이래도 될 만큼 권희영 교수가 치밀한 연구와 고민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주장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부터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백번 양보해서, 대한민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치자. 그렇다고 해도 권희영 교수의 말처럼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가 적선이라도 받듯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가면서 사드를 유치하듯 해야 할까? 사드라는 것은 미국이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을 무릅쓰고 배치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남을 위해 희생할만큼 인심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굳이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사드 같은 것이 우리 땅에 배치되면, 우리 사회가 져야 할 부담도 만만치 않다. 잘못하면 핵전쟁에 말려들어 갈 가능성도 생기며, 그렇게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같은 나라와의 갈등을 각오해야 한다. 이들과의 갈등은 그저 감정 상하는 차원에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겪어왔고 당장 우리도 북한에 압력을 넣고 있듯이, 갈등이 경제제재 같은 압박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개성공단 폐쇄로 우리 기업들이 입었던 것처럼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피해 보는 당사자들에게는 핵전쟁이나 다름없다고 느낄 만큼의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이 예상되는 각종 피해와 이익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함은 물론, 배치를 할 때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대한민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되도록 세밀한 부분까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런 무기가 배치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그러니 불가피하게 사드를 배치하게 될 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내세워 비용이라도 덜 부담하도록 하려는 것이 국민 된 도리다.

이렇게 보면 권희영 교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비용부담을 미국이 하라는 요구를 ‘적반하장’이라고 한 것일까? 아무리 대한민국에 사드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해도, 정말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비용부담까지 우리가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대놓고 해야 했을까? 그냥 주장한 정도가 아니라 ‘적반하장’이라고 비난까지 했으니, 외교 일선에서 조금이라도 대한민국의 부담을 줄여보려고 노력했던 외교관 등은 도대체 뭐가 되는 것일까?

이런 주장에 정부출연기과 연구센터 수장의 권위가 실려 버린 셈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권희영 교수 같은 주장을 하는 부류가 없는 것도 아니니, 무시해버리기도 곤란할 것 같다. 그런 부류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할 때,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융합센터의 권위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주장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애를 먹일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렇기 때문에 권희영 교수의 주장을 일개 교수의 헛소리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권희영 교수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은 지식과 정보가 있고 치밀하게 분석했는지는 몰라도, 비용까지 우리가 부담해야 할 설득력 있는 이유를 내놓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또 설사 그런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내용은 더 나은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정보 공유 차원에서 그쳐야지 공개석상에서 남들을 비난하며 내놓을 얘기는 아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권희영 교수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솔선수범에 나섰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설마 이런 발언이 ‘대국(大國) 분들이 하시는 일에 미천한 소국 백성들이 군소리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어쨌든 이런 솔선수범 덕분에, 우리 사회의 정책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결정되는 것이나 아닌지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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