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우리 집에는 다섯 살 된 강아지가 있다. 식탐과 애교가 유달리 많은 이 갈색 푸들의 이름은 ‘미남’, 가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다.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셔서, 미남이를 안으실 때마다 이런 멘트를 날리시곤 한다.

“우리 예쁜 미남이는 대체 어느 별에서 온 거니?”

미남이를 처음 만났던 것은 4년 전 경기도 외곽의 어느 대형 펫샵에서였다. 원래는 유기견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여차여차한 사정 때문에 업체를 통해 어린 강아지를 분양 받기로 했다. 널따란 부지에 2층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던 펫샵, 우리는 1층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강아지들이 있다는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별세계가 있었다.

갖가지 종의 새끼강아지들이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 안에 담겨 넓은 홀의 3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 홀을 담당하는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찾으시는 강아지가 있으신가요. 우리는 처음부터 생각해두었던 조건을 말했다. 직원은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뒤에 구석에 있는 진열대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너무나 조그마한 몸집의, 태어난 지 이제 막 3개월이 되었다는 갈색 푸들이 하얗고 투명한 상자 안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잘 생긴 얼굴에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직원에게 말했다. 한 번 안아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직원은 진열대 문을 열고 강아지를 조심스레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받아 안은 강아지는 놀랄 만큼 가벼웠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나의 품속에 하나의 생명체가 있음을 잠시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아지는 입과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건강함을 열심히 어필했다. 바닥에 내려놓으니 스프링처럼 통통 뛰어다녔다. 작은 덩치에 비해 커다란 발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면서 직원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나중에 어느 정도까지 클까요. 꼭 작은 아이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략 어느 정도까지 크는지는 알아야 했다. 직원은 다 커봤자 2kg 정도 될 거라고 대답했다. 2kg이면 어느 정도 크기인 거죠. 직원은 홀 안에서 한창 뛰어다니고 있던 작은 몸집의 하얀 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이 딱 2kg입니다. 그럼 이 아이로 데려가겠습니다.

분양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결제하고, 예상되는 몸집에 맞춰 집과 가방을 비롯한 여러 용품들을 한 번에 주문했다. 강아지는 가늘게 잘려진 종이밑밥들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 하얀 박스에 담겨졌다. 갑작스레 환경이 변해서인지 피곤한 듯 박스 안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녀석을 거실 바닥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팔팔했던 녀석이 제대로 서 있지 조차 못하는 것이었다. 혹시 잠을 자야 할 시간인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강아지의 몸짓은 어떻게든 서 보겠다는 의지를 또렷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뒷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자꾸 주저앉고 말았다. 이거 어떻게 하니. 어머니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샵에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사실까지 발견됐다. 등이 심하게 굽어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식사량이 너무 적어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펫샵에서 팔리는 강아지들에게서 그런 모습이 가끔 보인다고 했다. 최대한 오래도록 작은 몸집을 유지해야 그만큼 팔려나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얼마나 굶주림에 시달려 왔던 것일까.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3개월은 이 아이에게 대체 어떤 시간이었을까. 어쩌면 한 시간 전의 그 발랄했던 모습은 자신의 마지막 모든 에너지를 짜내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몰라.

여기까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두려웠다. 혹시나 다른 식구들이 펫샵에 항의를 해야 한다고 말을 꺼내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이 아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데 그 순간. 어머니가 강아지를 들어 품에 안았다. 아이고, 이 불쌍한 것이 그동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그렇게 ‘미남’이는 가족이 되었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미남이를 위한 원기회복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밥은 잘 먹었다. 정확히는 식탐이 심한 편이었다. 뭐든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새끼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생긴 습관 같아 안쓰러웠다. 애정표현도 상당히 적극적인 편인데, 그것도 어릴 때 어미와 떨어져 그런 것은 아닌지 마음이 쓰이곤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뒷다리에 부쩍 힘이 붙기 시작했다. 자기 힘으로 잘 서 있지도 못하던 아이가 어느덧 자기 집의 둥그런 지붕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러더니만... 커봤자 2kg을 넘지 못할 거라던 녀석은 한때 8kg까지 찍는 ‘작은 녀석들 중에서는 제일 큰 녀석’이 되었다. 덕분에 예상체중에 맞춰 구입했던 물품들은 모두 버리거나 중고로 넘겨야 했지만 가족들로서는 그저 무사히 자라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몇 달 전, TV 동물프로그램에서 방영한 ‘강아지 공장’의 실태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에서 ‘반려동물 보호 및 관련 산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방안들 중에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도 있다. 온라인으로 반려동물을 사고 팔 수 있도록 ‘산업적’으로 접근하겠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우리는 이제 그 별에 대해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별에서 각자의 집까지 어떤 길이 놓여있는지, 산업에서 가정으로 편입되지 못하는 밝은 쇼윈도 안의 수많은 아이들은 또 어느 별로 가게 되는지도 말이다. 나 역시도 소비자가 아닌 한 명의 반려 종으로서 미남이가 어느 별에서 왔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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