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 가습기 살균제 5년, 침묵의 살인자 그리고 공모자들②

▲ ⓒ투데이신문

친환경 제품 광고에 속아 구입해
국가와 국민 사이 신뢰는 무너졌다

‘덴마크 케톡스’, 특위 차원 집중 수사 필요해
“영국현지방문, 구체적 방안 나와야 해”

국정·검찰조사, 국민 감시 필요
“최선을 다해 진실규명에 힘쓸 것”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지난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자 무던히 힘써오던 사건의 피해자들. 그들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지난 2011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가습기 살균제로 아내와 아이를 잃은 피해자 안성우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왔다.

사건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있던 안씨가 지금 다시 서울에 온 이유는 아내와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가해기업들에 대한 분노다.

현재 가피모의 사무국장을 맡으며 피해자를 위한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안씨.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에게 지난 5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투데이신문>은 어김없이 서울시청 가피모 사무실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안성우 사무국장을 찾아 직접 얘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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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죄책감···이는 ‘피해자 모두의 트라우마’

Q. 가피모의 사무국장을 맡아 피해자 전체의 입장을 대표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자리를 맡아 일을 하신 지 얼마나 됐는지.

원래 가피모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사무국장이라는 자리를 맡은 지 이제 한 달 정도 됐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피모가 지금처럼 조직적인 체계를 갖춘 집단이 아니었다. 올해 4월부터 제대로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가피모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한 과정에 사무국장이라는 자리를 맡을 사람이 필요해 내가 맡게 됐다. 지금은 운영이사와 위원들까지 공식적으로 정해지고 시청으로부터 사무실, 상담실 등이 지원되다 보니 처음보다는 훨씬 조직적 체계가 갖춰진 상태다.

Q. 사건 발생 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올라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작년 11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지난달까지는 계속 고시원에 살다가 얼마 전 주거를 옮겼다. 서울시에서 정책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공동생활주택이라는 것을 알게 돼 그 곳으로 들어가게 됐다. 주변 지인들의 추천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시에서 시행하는 부분이다 보니 비용도 저렴해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생활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문제와 대책마련활동 말고는 별도로 하고 있는 것이 없다. 지금 하는 활동이 서울에 다시 올라온 이유다. 때문에 지금은 여기에 전념할 뿐이다.

Q. 가피모 사무국장으로서의 역할이 있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된 여러 활동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그들의 어려움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사무국장으로서 계속해서 나올 피해자의 어려움들을 파악하고 그에 필요한 대책들을 정부에 요구하고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Q.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가족 2명을 잃는 등 많은 아픔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2011년 1월 말 집사람과 뱃속의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의 일을 떠올리자면 아내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 함께 찾아간 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없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와중에 아내의 상태가 심각해졌다. 결국 아내는 사산을 한 뒤 사망했다. 첫째 아이도 2013년 검진 당시 폐 섬유화가 나타나며 간질성 폐렴 진단을 받았다. 결국 우리 가족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피해자인 것이다.

Q. 고인이 되신 아내분은 당시 병명도 모른 채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셈인데.

아내는 2011년 1월, 호흡곤란으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 갔고 그날 저녁에 바로 엑스레이를 찍고 심장 초음파 검진 등을 받았다. 폐나 심장 등에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호흡곤란이 이어져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입원실에 있었다. 병원 측에서도 그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입원 3일 째 갑자기 청색증이 오는 등 상태가 심각해져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 때 의사가 나를 불러 “1년에 한 번 꼴로 임산부들이 이와 같은 증상으로 오는데 환자의 상태가 이 정도로 안 좋을 땐 생존율이 1%도 안되더라”는 말을 했다. 아내가 사망한 후에도 병원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폐렴’으로 사인을 마무리 했고 난 단지 ‘내 아내는 원인 없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Q. 이렇게 활동하는데 있어 근본적인 이유는 먼저 보낸 아내와 아이 때문인지.

그렇다. 이는 현재 모든 피해자분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결국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사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있는 줄 모르고 사용했다. 그로 인해 아내가 이상 증상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과정을 옆에서 모두 지켜봤다. 그 고통과 죄책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모든 것들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지난 5년 동안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이렇게 유해성이 명백하고 독성이 강한 제품들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와 함께 22년 동안 판매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피해에 따른 어떤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피해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Q. 당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배경은.

다양한 곳에서 가습기 살균제 광고를 많이 봤고 실제로 다니던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을 보며 나도 자연스럽게 찾게 됐다. 또한 당시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 해는 유난히 건조하고 황사가 심해 공기가 굉장히 안 좋았다. 게다가 임신한 몸으로 습도 조절을 위해 일부러 빨래를 널며 고생하는 아내를 보며 그 일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먼저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고 직접 그 제품을 넣어주던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Q. 당시 사용했던 제품은 무엇이었나.

가족의 건강을 위한 구매였기 때문에 블로그나 육아맘 카페 등을 통해 꼼꼼히 살폈다. ‘친환경이다’, ‘안전제품이다’ 등라는 광고를 보고와 사람들의 사용 후기를 보고 세퓨 제품을 선택했다. 친환경이라고 믿고 쓴 제품인데 우리 가족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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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이제 시작 단계···앞으로가 중요해”

Q. 지난 11일 제조사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에서 세퓨의 오 전 대표만이 혐의를 인정했다. 8월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떤 결과를 예상해볼 수 있을까.

확실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하고 오 전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세퓨에 대해 특정돼야 하는 것만이 아니다. 모든 기업들에 대한 본격적인 재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지금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조사를 하고 있지만 현행법상 한계가 있는 부분들이 있다. 여기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지금과 같은 수사는 과거에도 분명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에 즉각 수사를 해 진상 규명을 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미 기업들은 사건 당시의 기록들을 다 폐기했을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가해 기업들에게 시간을 벌어줘 진실을 밝히기 더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Q. 세퓨에 폐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진 살균제 원료 PGH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덴마크의 케톡스는 계속해서 “한국에 PGH를 수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는지.

현재 덴마크의 케톡스는 가습기 살균제가 아닌 다른 용도로 PGH 샘플을 보냈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용도로 보냈는지, 그 과정에서 세퓨와 어떤 협약이 있었는지 등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덴마크 케톡스에 대한 집중 수사를 통해 이 부분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현재 옥시 같은 경우는 임원들을 소환하며 지속적으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케톡스도 대표를 비롯한 관계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이 부분은 통째로 빠져 있다. 이번 특위를 통해 확실한 조사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Q. 그렇다면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는지.

2011년도 8월, 아산병원에 산모들이 집단으로 입원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산모라는 점과 그들의 상태가 호흡곤란이라는 점이 내 아내와 같아서 ‘저들의 원인이 밝혀진다면 내 아내도 같은 원인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언론 보도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가 산모들이 가진 질환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 아내도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었다는 것을 바로 판단할 수 있었다. 보도를 확인할 당시까지 부엌 싱크대에 ‘세퓨’ 가습기 살균제가 놓여있던 것이 생각난다. 그 후, 바로 피해자 신고를 하게 됐다.

Q. 간질성 폐렴 진단을 받은 큰아들의 현재 상태는 어떠한지.

간질성 폐렴이라는 질환은 앞으로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확률이 매우 높다. 큰 아이는 집사람이 사망하고 2년 정도 지나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폐 하부에 폐 섬유화가 진행된 흔적이 있었으나,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 약물을 투약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1년 내내 기침, 콧물 등을 동반한 감기 상태로 살아가고 있으며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태다.

현재 아이는 부산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봐주고 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한 날부터 아이는 할머니 손에 맡길 수밖에 없었고, 걱정했지만 성격이 밝고 활달하다보니 학교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아이는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프고 힘들다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더욱 걱정돼 종종 아픈 곳은 없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물어보곤 하는데 아이가 가끔 가슴이 아프다는 얘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아들이 많이 걱정된다.

Q. 아이는 사태에 대한 전반적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내용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자신의 엄마가 아파서 세상을 떠났다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을 뿐 이유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다.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지금 아이에게 아내의 사망 원인을 설명할 자신이 아직 없다.

Q. 현재 아이를 부산에 둔 채 올라와있는데 아들이 보고 싶지는 않은지.

물론 보고 싶다. 현재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산에 내려가는데 여러 일정상 부산에 갈 때마다 아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화를 할 때마다 언제 내려오는지 묻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부모님과 아들이 있는 고향에 다시 내려가는 것 역시, 지금 상황이 어느 정도 해결돼야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엄마가 죽은 원인, 그에 대한 진상규명, 그리고 기업과 정부의 책임, 처벌 등이 없다면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너무나 부끄러울 것 같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아이와 함께 있기 위해서도 이 문제가 빠르고 확실하게 해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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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국가···‘항상 의구심 가져야’

Q. 현재 특위에 대한 아쉬운 부분은.

아쉬운 점, 부족한 점들은 앞으로 지켜보며 파악하고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국 현지조사에 대한 계획이다. 현지조사를 위해서는 당국 정부에 협조도 구해야할 것이고 어떤 현장을 가서 어떤 부분을 조사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부분들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 계획 없이 막무가내로 간다면 결국 가서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것이다. 특히 영국 방문 계획은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 아주 핵심적인 부분인데 이 과정에서 모든 부분을 밝혀내려면 반드시 영국정부와의 공조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 일정이나 내용들이 확실하게 정해져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국방문은 단지 시간 낭비, 돈 낭비로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Q. 남은 국정조사 기간 동안 특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이에 따라 구축돼있는 시스템이나 계획이 있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우리가 직접 예비조사위원으로 들어가길 희망했지만 이는 좌절됐다. 하지만 참관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합의 끝에 현재 몇 명의 참관위원을 뽑는 과정에 있다. 참관위원이라는 것이 직접 발언을 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역할이라기보다는 지켜보는 입장이다 보니 여기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지만 우리는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계속해서 최선의 것을 요청할 것이다.

Q. 이번 사건해결을 위해 국민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먼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난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옆에 있는 모든 것들이 국가가 안전하다고 승인을 내고 판매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심각한 유해성을 가진 독성물질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결국 인체에 직접적 악영향을 끼쳤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통해 국민들은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물건들이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들은 이것이 남 일이 아니라는 것, 생활 속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아닌 그 어떤 물건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국가와 기업 등을 무조건적으로 믿기보다는 주변의 일에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 또한 이번 국정조사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많은 부분들이 보완되고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여론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Q.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까지 별도의 특별한 계획은 없다. 먼저 올해 초에 이 활동을 1년 정도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1년 정도 활동할 생각이었고 지금이 7월이니 약 5개월 정도 남은 셈이다. 아직까지 그 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때가 되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5개월 후에 과연 현 상황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또 베일에 싸여있는 많은 부분들이 얼마나 밝혀졌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질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소비자가 국가와 기업을 믿고 제품을 샀는데 이러한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은 국민과 국가 또는 기업 사이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검찰조사와 이번 국정조사 등을 통해 이렇게 무서운 제품들이 어떻게 팔려왔는지, 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정부와 관계부처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모든 것들이 확실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이번 특위 위원들도 국정조사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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