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지난 7월 28일과 29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의 18회 하계세미나가 있었다. 이번 주제는 대중과 소통하는 한국고대사. 주제를 보아서는 드디어 역사학계도 각성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고대사를 포함한 역사학계 자체가 ‘그들만의 리그’차원에서 그쳐온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학회’라는 것이 허구헌 말 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누가 관심 갖건 말건 뻔한 소리만 늘어놓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니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하계세미나에서 ‘대중과의 소통’ 주제로 했다는 사실 자체는 반색할 만 하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일부 연구자들은 구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다. 사실 이런 종류의 세미나에서 가장 도움 안 되는 짓이 몇 가지 있다. 진짜 고민해야 할 요소는 싹 빼놓고 뻔한 사실 늘어놓으며 대단한 대안이나 내놓은 것처럼 생색내는 일이다. 이번에도 이런 사례는 빠지지 않는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교원대학 송호정 교수의 ‘학교에서의 고대사 교육’이라는 주제다. 이 주제의 논지는 대충 이렇다. 전문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는 논문 단계에서 그칠 뿐, 교과서나 개설서에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대사 분야는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간략하게 압축해서 전달하는데 애로사항이 있다. 증거가 부족하고, 다양한 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고대사에는 논쟁이 되는 주제가 많은데, 애매하게 처리하거나 하나의 입장으로 정리하고 있어 교사들이 수업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에게 다양한 설에 대해 이야기해주거나 생각해보게 하지 않고, ‘많은 학자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설을 사실인 것으로 가르친다’고 봤다.

내막 모르고 들으면, 우리 교육현장에서의 고대사 교육문제에 대해 제법 조목조목 짚어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속사정을 알아도 몇 가지 속담이 줄줄이 떠오른다. 일단 ‘사돈 남 말 한다’는 속담이 적합할 것 같다. 사실 교과서나 개설서 쓰는 사람들이 말을 얼버무리거나 한쪽 입장에 쏠리는 일은 이해할만한 측면이라도 있다. 누가 교과서나 개설서를 쓰건, 그 넓은 범위에서 깨알 같이 많은 논쟁거리를 일일이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니 잘 모르는 부분은 얼버무리고, 좀 안다 싶은 부분은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 위주로 쓰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알고 보면 교과서나 개설서의 서술이 이런 식으로 되는 책임을, 그 저자들에게 묻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다. 이런 문제에서 해결책은, 원칙적으로 저자들이 아니라, 전문연구자들이 기초를 제공해주는데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교과서나 개설서 저자들이 신이 아닌 이상, 모든 분야를 직접 연구해서 해답을 찾아낼 재주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각 분야 논쟁은, 그 분야 전문연구자들끼리의 논쟁과 검증을 통해서 정리돼야 한다. 그래야 교과서나 개설서 저자들이 이렇게 정리된 내용을 반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호정 교수는 이렇게 당연한 해결책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관심 보이지 않아도 좋을 만큼 전문연구자들이 알아서 정리를 해주고 있다고 보는 것일까? 그렇게 되어 있다면 교과서나 개설서 저자들이, 욕먹어 가면서까지 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실 현실을 보면 잘 안 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기대조차 하기 어렵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여기서 또 하나의 속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가 떠오른다. 알고 보면 기존 연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한 쪽 주장에 쏠리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기성학계를 질타해야 한다. 우선 전문연구자들은 이미 나와 있는 연구성과를 몰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할 입장부터 못된다. 전문연구자가 쓰는 논문의 범위는 자기가 책임지고 설정한다. 그러니 자기가 책임지고 설정한 범위에서, 논쟁거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전문가 자격을 박탈해야 하는 수준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보면 연구자들이 연구성과 내는 과정에서 논쟁거리가 정리되지 않는 현상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교과서나 개설서를 쓰기 어려울 정도로 논쟁이 정리가 되지 않는 이유도 드러난다. 실제로 이른바 ‘전문연구자’들은 나와 있는 기존 연구를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무시하고 자기 또는 자기 학파의 주장만 정리해놓는 일이 허다하다. 물론 원칙적으로 그렇게 하면 장본인이 응징 받아야 하지만, 그런 경우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니 검증을 통한 논쟁 정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좀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고대사학계는 검증을 할 기본적인 의지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런 개탄을 쏟아놓은 송호정 교수 장본인부터 시작해서, 학회에 등장하는 그 많은 연구발표에서 ‘피 튀기는 논쟁’을 통해 검증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없으니까. 당장 이날 세미나부터도 그랬다. 이틀 동안 발표 내용 읽어대는 것만 해도 버거울 숫자의 발표자를 내세워, 자기들끼리 토론한다며 시간 끌다 끝내버리는 행태 역시 변한 점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같이 갔던 후배가 종합 토론 중간에 ‘지루하고 더 볼 것도 없으니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며 잡아끌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모를 수 없는 고대사학계 중진이 ‘학계에서 합의된 내용이나 정리된 내용을 반영해야 할 것’이라는 촉구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정을 아는 사람 눈에는 뻔히 보인다. 고대사학계 내부에서는 주도권을 가진 자신들의 학설을 정설로 만들어 놓을 수 있으니, 이거 반영해서 교과서나 개설서 써내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런 사정이니, 내막을 좀 아는 교과서나 개설서 저자들이 학계에서 정리된 내용을 믿고 자기 책에 반영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면 송호정 교수는 어떤 꼴을 보인 결과가 될까? 원인 제공을 한 측에서 자기들이 자초한 결과를 가지고, 그 원인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며 손가락질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바로 이런 내용을 ‘대중과 소통’하겠다며 내놓은 셈이다. 누가 참 좋아했던 ‘적반하장’도 여기 적용돼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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