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 가습기 살균제 5년, 침묵의 살인자 그리고 공모자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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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탐욕, 정부의 무능, 미진한 수사가 만든 국가적 재난”
“국민 신뢰 무너뜨린 정부·기업, 여전히 책임 떠넘기기 급급”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무엇보다 국민 목소리 중요한 때”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절대 정쟁으로 가서는 안 된다. 성역 없는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이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이하 가습기살균제 특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국정조사에 대한 각오다.

가습기살균제 특위가 모든 현장조사를 마치고 기관보고에 들어감에 따라 사건과 관련된 정부부처의 대응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본격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특히 오는 22일부터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를 가장 많이 낸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 방문 등 현지 조사를 진행할 예정으로 피해자들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로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공식 인정된 지 5년 만에 진행되고 있는 국정조사인 만큼 그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여겨진다. 이제 남은 것은 가습기살균제 특위가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고 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 피해자들의 오랜 한을 풀어주는 일만 남았다.

<투데이신문>은 특위 차원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마련에 따른 국정조사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위원장으로서의 견해를 듣기 위해 가습기살균제 특위 위원장 우원식 의원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11일 오후, 뙤약볕 아래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우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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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사건 현장은 피해자뿐”

Q.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간과 관련해 단식 농성 중이다.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기간, 바쁘신 시기에 이곳 광화문에서 세월호 단식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세월호참사는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제대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특조위를 연장하고자 하는데 현 정부가 이를 막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올바른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 농성에 동참하고 있다. 사실 세월호사건은 본질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문제와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크게 세 가지 문제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기업의 탐욕, 둘째는 정부의 무능, 셋째는 수사당국의 미진한 수사다. 가습기살균제 특위의 위원장으로서 본질적으로 같은 원인을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보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Q.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습기살균제 특위)의 위원장을 맡게 된 배경은.

우선 특위의 위원장은 여야가 교대로 하고 있는데 이번 특위의 위원장이 야당의 차례였고, 통상적으로 위원장을 맡으려면 3선쯤 돼야하는 데 충족요건이 돼 대상이 됐다. 또한 자리를 맡기로 결심한데는 지난 3년간 을지로위원회라는 단체를 이끌어 온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을지로위원회란 갑(甲)과 을(乙)의 관계에 있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을을 대변해주고 이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단체다. 을지로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3년 넘게 일을 해 온 내게 가습기살균제 문제도 본질적으로 기업(갑)과 소비자(을)의 사이에 생긴 문제라는 점에 내가 할 수 있는, 더 나아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Q. 무엇보다 피해자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피해자들과의 만남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피해자들을 만나는데 있어 특별한 시스템이 구성돼있는 건 아니다. 일단 현재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는 가피모(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유족연대(가습기살균제피해자유가족연대), 3·4등급 피해자 모임. 위 세 단체로 볼 수 있다. 이 모임들과 각각 만나 얘기를 나눴고 이번 국정조사에 있어서 각 단체당 한 명의 대표를 뽑아 국정조사의 참관위원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피해자 세 명이 참관위원의 자격으로 지난 현장조사 때도 함께 참여해 조사현장을 봤고 그 분들도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항상 어떤 사건이 터지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현장이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경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현장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남아있는 현장은 피해자들뿐이기에 계속해서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충실하고자 한다.

Q. 피해자와 가족들을 만날 때는 어떤 심정이신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프다. 피해자 대부분이 5세 이하의 아이, 또는 20~30대의 산모들이다. 젊은 나이에 너무나 크고 억울한 피해를 입었지만 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만날 때면 앞으로는 절대 이러한 참사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특위 위원장으로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대한 책임감을 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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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특위, 정부부처·가해기업 현장조사

Q. 특위는 지난달 25일 현장조사에 돌입하며 정부부처들과 관련기업들을 조사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계속해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보이며 피해자들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

환경부나 법무부 등의 현장조사는 매우 중요한 조사였지만 관계자들은 “죄송하다”, “반성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 특위의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현장조사를 통해 고용노동부가 1997년에 이미 가습기살균제의 주성분인 PHMG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 고용노동부가 PHMG의 유해성에 대해 보고받았지만 이를 환경부에 알리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가습기살균제 원료 CMIT, MIT를 제조한 SK케미칼도 사전에 원료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SK케미칼이 최초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하던 1994년 이전, 로메나스라는 미국 기업이 CMIT, MIT에 대해 최초로 특허를 냈다. 당시 그 회사에서 흡입독성 실험이 있었고 실험에서 흡입하면 안된다는 내용의 실험결과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SK케미칼은 이 점을 인지하고도 이를 밝히지 않고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공급해온 것이다.

Q. 검찰수사가 미진했던 탓에 국정조사가 끝난 후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필요하다면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검찰이 수사 중인 상태며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다. 예정된 청문회까지 거치고 나서 국정조사에 대한 결과가 발표되면 검찰이 그에 따라 새로운 방안으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수사에 미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때는 충분히 특검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Q. 지난달 27일 기업들을 상대로 한 현장조사 후, 옥시의 경우에는 추후 재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그리고 이를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한 이유는.

보통 국정조사를 하면 현장조사나 기관조사는 예정된 일정에 한해서 시간떼우기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당시 현장조사에서 옥시는 이러한 점을 이용해 “검찰 수사 중인 관계로 말할 수 없다”, “자료가 없다” 등의 입장으로 계속해서 대답을 회피했다. 특위는 이러한 조사는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이런 식으로 하면 추후에 조사를 다시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와 같은 태도를 보여 최종적으로 다시 조사를 시행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조사 방식은 협의 과정에서 비공개로 실시하기로 합의됐지만 재조사 때도 옥시의 충실한 답변이 없으면 앞으로의 모든 조사를 공개적으로 할 계획이다. 옥시가 제대로 응할 때까지 계속해서 조사할 것이다. 이는 우리 국정조사위원회가 이번 국정조사에 대해 확실하게 할 것이라는 의미를 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Q. 애경, 이마트 역시 많은 피해자를 낸 가해기업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현장 조사에서 새롭게 밝혀진 부분이 있는지.

먼저 이마트 현장조사에서 가습기살균제 PB(자체브랜드)제품 출시 당시 유해성분에 대한 안전성 분석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고 이에 대해 계속해서 조사해나갈 방침이다. 기본적으로 애경과 이마트의 경우도 앞서 구속된 홈플러스나 롯데마트와 다를 것이 없다. 이들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제품을 판매한 것이고 국민들은 그 기업 자체에 신뢰를 가지고 제품을 구매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을 믿었던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이에 관해서는 정확한 조사와 점검을 거치지 않고 제품을 판매한 기업들의 책임이 상당하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관계자가 구속된 것도 이 같은 이유이며, 애경과 이마트에 대해서도 검찰 차원에서 즉각 수사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Q. 옥시는 지난달 31일 최종배상안을 발표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옥시의 일방적 안이라며 배상안 발표 규탄 집회 등을 가지고 분노를 표했다. 옥시의 최종배상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까지의 내용보다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배상안을 내놓기 전에 먼저 진상규명에 솔직하게 나서야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진상규명 후 그에 따라 나오는 옥시의 잘못들을 모두 따져 배상안을 내놓아야한다. 진상규명에는 미온적 태도로 회피하며 배상안만 내놓겠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배상액은 옥시의 일방적인 입장이 아닌 피해자 개개인과의 협의를 거쳐 나와야한다. 예를 들어 3명의 자녀를 둔 한 가장의 사례가 있다. 3명의 자녀 중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둘째 아이가 사망했고 첫째와 셋째, 부인까지 모두 환자가 됐다. 또한 본인은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정신병원으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 한 가정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업에서 일방적으로 측정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된다.

Q. 오는 22일부터 영국현지조사가 시작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를 찾는 현지 현장조사는 오는 22~26일 3박 5일의 일정으로 예정돼있다. 현장조사를 통해 레킷벤키저의 최고경영자인 라케시 카푸어를 만나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와 관련해 영국 본사와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영국 현지에 알리기 위해 영국 정치 인사들과의 면담도 계획 중이다.

Q. 특히 23일 옥시 본사 CEO인 라케시 카푸어를 만나는 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라케시 카푸어를 만나면 우리는 크게 3가지 정도를 요구할 것이다. 첫째는 옥시 본사 CEO가 직접 대한민국 국민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게 사과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번에 특위가 갖고 가는 질문에 대해서 소상히 답변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옥시를 대표해서 이번 국정조사기간 진행되는 가습기살균제 청문회에 증인으로서의 참석을 요구할 것이다. 이 세 가지 요구사항을 중점적으로 얘기 나눌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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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잃지 않은 채 성과 내는 국정조사 할 것”

Q. 오는 29~31일에는 가습기살균제 청문회가 예정돼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들을 소환할 계획인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정부부처와 관련 기업들을 소환할 것이다. 정부 인사에 관해서도 김영삼 정부부터 현 정부의 인사까지 그 누구도 예외없이 관계가 있다고 판단되는 모두를 소환해 조사할 것이다. 이는 정부부처에 대한 내용만이 아닌 모든 가해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Q.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현 정부를 탓할 문제가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 즉 더민주가 집권한 시절부터 시작된 사안’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정확히 어느 정권 때 부터다’라고 정의 할 수 없다. 먼저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시작은 SK케미칼이 가습기살균제를 최초 개발했던 김영삼 대통령 때로 볼 수 있고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어 지금까지 계속 거쳐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은 모든 정부가 갖고 있다고 본다. 때문에 국정조사에서도 역시, ‘어느 정권이든 낱낱이 수사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것이 특위 전체의 입장이다.

Q.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더 나올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에 더민주 홍익표 의원은 “정부차원에서 피해자접수센터를 만들어 피해자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돼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피해자접수센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국회에 피해자접수센터를 설치하자는 건의를 했고 국회의장까지 동의를 얻었지만 새누리당에서 반대해 설치하지 못했다. 하지만 합의를 못했다고 해서 이를 파행할 생각은 없으며 계속해서 요구할 것이다.

피해자의 정확한 규모에 대해서는 정말 누구도 알 수 없다. 대게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20%가 사용했고 이들의 20%정도가 피해자라는 조사결과가 나온다. 이를 수치로 계산하면 약 1000만명이 사용했고 그 중 200만명 가량이 의심될만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본인의 가습기살균제 사용 여부조차 모르는 사람도 상당하다. 때문에 피해자 규모에 대해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얼마 전 피해자신고접수를 받고 있는 환경산업기술원에 직접 찾아가 확인해보니 미비한 점들이 굉장히 많았다. 기본적인 피해자 상담일지조차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전화안내 역시 비정규직 용역회사에 외주를 준 상태로 행하는 모습을 보며 ‘이러한 상황이 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Q. 일각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정치적 분쟁으로 번져 사건의 본질을 잃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돼있는 문제인 만큼 정치적 분쟁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여야 간 약간의 의견 대립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원장으로서 여야 간 합의를 잘 이끌어 내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은 채 성과를 낼 수 있는 국정조사가 되게 할 것이다.

Q. 가습기살균제 특위의 위원장으로서 마지막 한 마디.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피해 규모로 보나 사건이 가진 내용으로 보나 큰 국가적 재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재난이 대한민국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진상을 밝혀내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는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모든 국민들이 이를 자신의 일로 여겨 이번 국정조사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영국대사관, 옥시 본사 등에도 직접 소비자로서의 목소리를 내준다면 특위의 국정조사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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