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얼마 전 지난 7월 28일과 29일 한국고대사학회 하계세미나에서 있었던 소통 방식 하나를 더 언급해 보고 싶다. 그 중 하나가 ‘역사스토리텔링과 고대사’라는 주제다. 이 주제는 사극 같은 역사 컨텐츠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보자는 취지를 기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사실 이 역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다.

사극 등이 인기를 끌어오기는 했으나, 워낙 역사왜곡이 심했기 때문이다. 인기를 끌었던 역사 컨텐츠에서 정작 실제 역사를 심하게 왜곡시키면 그 영향이 적을 수는 없다. 역사가 과거의 사실에서 앞으로 활용해야 할 교훈을 찾아야 하는 분야임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있지도 않았거나 사실과 다른 역사를 실제 역사로 착각하게 만들어 내는 일에 악영향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판단에까지 혼선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허구가 허용되는 역사 컨텐츠를 악용하는 경우는 많다. 역사적으로 비중이 큰 인물을, 자기 문중 또는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미화하거나 깎아 내리면서 역사적 교훈까지 조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문제를 분석하고 대책을 찾을 필요는 있다. 그래서 이 발표에서도 역사물이 실제 역사를 왜곡시킨 사례를 나열하고 대책을 찾았다.

그렇지만 항상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대로 된 대책을 찾을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이번 경우에도 예외 없이 가장 중요한 이 측면에서 미심쩍은 점이 나타난다. 이러한 의구심이 쓸데없는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이 발표에서 제시한 해법부터 살펴보자. 여기서 제시한 해법을 한마디로 하자면, ‘역사학자가 스토리텔링을 제시하고, 작가가 이를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펼쳐’ 수준 높은 역사 컨텐츠를 생산해 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제작진 중 한 사람 정도는 역사 전문가로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제작했다는 무령왕에 관한 이런 저런 컨텐츠를 사례로 제시해 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해법에 대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고 있어온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당연할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제작진이 역사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날 다른 발표에서도 사극 같은 역사컨텐츠를 만들 때 자문을 해 준 전문가들을 표로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이미 역사콘텐츠 제작과정에서 역사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굳이 역사전문가가 스토리텔링을 직접 제작하지 않더라도, 자문을 통해 왜곡을 바로 잡는 과정이 있다면 정재윤 교수가 해법을 제시할 필요도 없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역사 컨텐츠의 역사왜곡이 문제 되고 있다는 현실을 뒤집어 말하자면, 역사 전문가가 역사 컨텐츠 제작에 참여해봐야 현실적으로는 별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까 당장 제작현장에서는 이런 원론적인 해법이 별 도움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고 보면, 진짜 해법은 왜 제작현장에서 역사 전문가와 제작진의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지에서부터 출발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발표는 물론이고, 어디에서도 이런 고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발표가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의아한 것이다.

사실 현장 상황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대책 안 되는 원론적 해법은 답답하다. 필자도 당연히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융복합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 이유는, 바로 분야마다 자기 입장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작진은 역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만 늘어놓고, 무조건 이 내용에 맞추어 컨텐츠를 만들어 내라고 주문하는 데에 짜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는 제작환경에서, 자꾸 역사적 사실만 고집하면 일이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문을 해준 필자의 은사께 들은 이야기에도 경청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 돌발변수가 많은 제작현장에서, 불가피한 여건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 삽입될 수밖에 없을 때가 생긴다. 그래서 역사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정말 별 문제없이 고쳐질 수 있을 것 같은 사안들이, 현장에서는 심각한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한다.

사례를 한두 개만 들어보자. 전쟁사의 기본만 알아도, 최고 지휘관급인 왕이나 장군들이 동네 패싸움처럼 맨 앞에서 칼을 휘두르며 싸우는 장면이 나오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래서 ‘지휘관은 전장에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명령을 내리는 존재지, 상황 파악도 못하게 맨 앞의 전투에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제작진에 전달한 자문위원도 있었다. 그럴 때 제작진들이 하는 말이 걸작이다. ‘아무리 그래도, 배우들이 자기 캐릭터 돋보이자고 그렇게 찍자는데 도리가 없다’고 한다. 결국 간단한 장면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서 찍는 것만 해도, 주연급 배우들이 촬영 못하겠다고 드러누워버리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소하지만 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역사적 사실로는, 등장인물 하나가 전투에 참여한 다음 배를 타고 돌아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 시나리오도 역사적 사실을 반영해서 그렇게 썼다. 그런데 세트로 배를 만들다 보니 좀 부실하게 제작 된 것이 문제였다. 하필 이 배를 타야 할 배우가 좀 무게가 나가는 인물이어서, 그대로 배를 태웠다가는 사고가 날 판이었단다. 고민 끝에 제작진은 그 인물이 사고를 쳐서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설정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해버렸다. 이런 사정 전해들은 자문위원은 혀만 차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겠다고 세트에 제작비를 마구 들이기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배우를 하차시켜버리면 배우들과의 갈등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 그때까지 찍어놓은 분량에도 손을 대야 하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 정도는, 제작현장에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정을 아는 자문위원 상당수가, 역사적 사실과 다른 장면들이 마구 삽입되는 사태를 눈감아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역사전문가가 자문을 해준다고 해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컨텐츠를 만드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다. 자기 역할에 충실할 인물은 현장 사정 무시하고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라 고집하다 일 망치기 쉽고, 그렇다고 제작진 입장에 동조해주기만 할 ‘예스맨’이라면 굳이 비싼 자문료 물어가며 쓸 이유가 없어진다. ‘중용의 도를 아는 인재’는 말이 쉬울 뿐, 현실적으로 찾기조차 어렵다.

그러니 무조건 제작진에 역사 전문가를 끼워 넣는다고 뭐가 될 상황은 아닌 것이다. 사극의 경우 기본적으로 수십억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설사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다’는 호평(?)을 받더라도, 흥행에 실패하면 여러 사람 길바닥으로 내몰게 된다. 이런 사업에 현장 사정 무시하고 ‘공자말씀’이나 늘어놓을 인원을, 자기들 제작비 들여 끼워놓으라는 ‘교수님 견해’를 제작진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소통이란 기본적으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의미를 가지게 된다. 현장에서의 고민 같은 것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뻔한 원론만 되풀이하면서 ‘소통’ 운운하는 것 자체가 소통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런 소통은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가질 때 흔히 보인다. 소통을 빙자해, 자기 자리 만들기나 자기 PR에 이용하려는 경우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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