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내 최초 레즈비언 콘텐츠 크리에이터 임지은 작가

   
▲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

커밍아웃북, 레즈비언은 평범하다는 사실 알리고 싶어
성정체성 인정 못했던 과거,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 탓

커밍아웃 전, 모두가 나를 외면할 것이라는 두려움 커
커밍아웃 후, 자존감 상승…모든 일에 있어 확신 생겨

동성애, 감추기만 하면 대중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아
성소수자 반대에 맞서 오늘과 다른 내일 살아갈 것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기무상이고요. 나이는 삼십 대. 좋아하는 건 애플, 영화, 책, 음악이지요. 참 그리고 저는 레즈비언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인사말이 순간 우리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 주인공은 국내 유명 토익 학원의 강사로 몸담고 있는 임지은(32)씨다. 지은씨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영화와 독서, 음악을 좋아하는 보통의 30대 여성이다.

여느 30대들과 별반 다름없어 보이는 그는 ‘기무상’이라는 특별한 이름표를 하나 더 달고 살아간다. ‘임지은’이 낯설었다면 ‘기무상’은 보다 익숙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분명 있을 듯싶다.

기무상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30대 레즈비언(Lesbian)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는 그는 2015년 10월 ‘L 콘텐츠 크리에이터(레즈비언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 아래 레즈비언을 소재로 한 팟캐스트방송을 시작했다. ‘구남친을 둔 두 레즈비언들의 이야기’, ‘평범하지 않은 레즈비언의 평범한 하루’, ‘대한민국 서른 살 여자 둘,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만남’ 등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주제로 매회 당 1500~2000건이라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며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재는 유튜브, 네이버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기고, 인스타그램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또 얼마전 그는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한 여성이 성 정체성을 스스로 깨닫고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커밍아웃북>을 출간하기도 했다. 레즈비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꿀수 있기를 바라며 기무상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냈다.

레즈비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기무상의 모습은 수많은 성소수자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성소수자들과 마찬가지로 성 정체성 혼란으로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다 28살이 돼서야 비로소 자신을 인정하게 됐다. 평범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기까지 평범하지 못했던 그의 인생사를 들어보았다.

   
▲ 책 ‘커밍아웃북’(좌) ⓒ휴먼카인드북스, 기무상 (우) ⓒ투데이신문

“레즈비언도 평범한 사람, 이 사실 대중에 알리고 싶어”

Q. 책 <커밍아웃북>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며,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2015년 10월 무렵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레즈비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것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팟캐스트 방송과 유튜브였다. 물론 이 모든 활동이 책을 쓰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 3~4월쯤 생각보다 이르게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책을 출간할 만큼의 결과물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이야기와 이제까지 한 활동을 모아 대중들이 ‘레즈비언은 평범하다’라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집필하게 됐다.

Q. ‘평범한 레즈비언’, ‘평범한 커밍아웃’ 등 책에서 ‘평범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스스로 레즈비언에 대해 평범하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20년 넘게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성소수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그렇고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은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다. (성소수자라는 사실) 그거 하나 빼고는 특별할 게 없다. 그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더 일찍 성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때문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많은 성소수자들에 평범함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

Q. 책을 통해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고자 했다. 두 분의 반응은 어땠는지.

책이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그런지 아직까지 모르시는 것 같다. 원래는 책이 출판되기 전에 먼저 들고 가서 말씀드릴 계획이었지만 부모님은 서울이 아닌 대전에 살고 계셔 찾아뵙기가 쉽지는 않다. 또 두 분 모두 50년 대생이기 때문에 아무리 개방적이라 하더라도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필요할 듯싶다. 커밍아웃을 하고 시작한 활동으로 더 많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 보여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

“학창시절,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두려워”

Q. 성 정체성을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은 언제인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동성을 좋아한다고 느꼈던 건 중학교 2학년이다. 같은 반 친구였는데 사귀자고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 편지를 주고받고 붙어 다니는 등 거의 사귀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 친구만 좋아하는 것뿐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다’라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것이다’라고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해오다가 28살이던 해, 토익 강사로 일하면서 만난 조교 여대생이 있었다. 정말 평범하고 직접적으로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티가 나지 않는 친구였는데 나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그 친구의 모습이 그동안 성 정체성을 부정하던 내 생각을 변화시켰다.

Q. 성소수자임을 인정하기까지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스스로를 인정한 28살 이전까지도 앞서 말했듯이 ‘언젠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찾아보고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책은 동성애 관련된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이중적인 생활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는 혼란에 빠지면서 우울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Q. 성소수자임을 인정하고 커밍아웃을 했을 때 닥칠 어떤 상황들이 가장 두려웠는지.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두려웠다. 텔레비전 속 가출을 하거나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모습이라던가 성소수자와 관련된 범죄·소송 기사를 많이 접하다 보니까 ‘내가 레즈비언임을 인정하면 저들처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또 당연하게 부모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컸다.

Q. 실제 커밍아웃을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대체적으로 모두 심하게 부정하거나 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생각했던 ‘다신 보지 말자’ 이런 사람들은 없었다. ‘다만 내가 앞으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겠구나’라는 걱정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많았다. 그중 ‘뭐 그럴 수도 있지’처럼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 가장 좋았다.

Q. 커밍아웃 전과 후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인정하고 나니까 매우 뚜렷한 거울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굉장히 확신이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Q. 커밍아웃을 고민하는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커밍아웃을 함에 있어 내가 정해놓은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 번째는 ‘준비’다. 사전에 커밍아웃 대상이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넌지시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전 작업에도 두 가지 조건이 따른다. ‘내 친구가 고백을 받았는데 동성애자래’ 이런 말은 눈치 빠른 사람이면 금방 알아챈다. ‘유튜브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영상을 봤는데’와 같은 흔한 주제를 던져봐야 한다. 그리고 이 사람이 동성애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면 단둘이 조용한 공간에서, 술을 마시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오랜 시간 미루지 말 것’. 커밍아웃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소개를 하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이것들이 꼭 정답은 아니다.

   
▲ ⓒ유튜브 기무상 방송 캡처 화면

“레즈비언이라는 타이틀 아래 다양한 콘텐츠 다루고 싶어”

Q. 팟캐스트, 유튜브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는지.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 것은 세상에 ‘레즈비언의 평범함’을 전파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비슷한 사람들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느꼈고 일반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영상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원래 얼굴을 공개할 생각은 없었는데 유튜브를 하다 보니까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 유튜버도 직업적으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얼굴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쫓아와 때리거나 달걀을 던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지만 전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도 블로그, 유튜브 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지, 대놓고 말을 걸지는 않는다.

Q. ‘기무상’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닉네임이 갖은 의미가 무엇인지.

사실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성은 임씨이지만 가장 평범하고 흔한 이름을 사용해 레즈비언도 평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김씨를 사용하게 됐다. 또 현재 저랑 만나고 있는 연인 가제루상이 일본어를 잘하고 나 역시 일본어에 관심이 많아 일본어 초급 강의에 자주 등장하는 기무상을 가져온 것도 있다. 그리고 보통은 닉네임을 영어나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일본어를 사용하면 (일본에 대한 반감 때문에) 사람들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기무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게 됐다.

Q. 자신을 ‘L 콘텐츠 크리에이터’(레즈비언 콘텐츠 창작자)라 소개했다. L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무엇이며,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방송을 시작하면서 타이틀을 하나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들을 쭉 돌이켜보니 레즈비언과 관련된 음성파일, 영상, 기고 등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레즈비언의 L을 따서 ‘L 콘텐츠’라고 이름 붙였다. ‘크리에이터’는 보통 유튜버한테 많이 붙이기도 하지만 창작을 한다는 개념에서 평소에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를 조합해 레즈비언 콘텐츠를 창작하는 사람, ‘L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정의했다. 현재는 토익 강사라 직업의 특성상 수업이 빡빡해 많은 크리에이터 활동을 못하고 있다. 보통 일주일에 1~2편 정도 영상을 올리는 정도다. 애초부터 평범함을 강조했기 때문에 레즈비언이라는 타이틀 아래 먹방처럼 보통의 다른 유튜버들이 하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 현재는 가제루상과 함께 태국어 공부와 관련한 영상 제작을 계획 중이다. 내가 하는 수많은 콘텐츠 크리에이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영상 제작을 계속 재생산 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내는 것이 L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최종 목표다.

   
▲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

“동성애, 계속해서 밖으로 드러내야 대중의 인식도 변해”

Q. ‘동성애는 후천적으로 발현되는 병이다’라며 의학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정신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의학적으로 이미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때문에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달고 싶지 않다. 누구나 외로움을 참지 못한다던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분류하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인정하고 나서 내 삶이 더 나아졌다고 느끼기 때문에 동성애가 정신병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Q. 우리 사회에서는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보수 단체들이 ‘동성애는 죄악’이라며 여전히 성 소수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동성애 혐오를 어떻게 보는지.

개인적으로 레즈비언이라는 타이틀로 많은 활동을 하다 보니 동성애 혐오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여긴다. 기독교의 동성애자에 대한 박해와 차별은 과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계속 이어져 온 것뿐이다. 만약 기독교라는 종교가 갖는 동성애에 관한 정신이 지금과 달랐다면 현재 사회 분위기 또한 달랐을 것이다. 동성애 혐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혐오자를 더 혐오하는 분들도 많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을 테니까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우리의 삶을 잘 영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Q. 퀴어문화축제처럼 동성애를 밖으로 드러내는 활동들이 오히려 동성애 혐오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킨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6월에 있던 퀴어문화축제에서 찍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니까 ‘그냥 조용히 있지’라며 비난하는 댓글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너네끼리 살아라’하는 것은 존재 자체를 부정하라는 것으로 들린다. 계속해서 동성애를 감추기만 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으며 대중들의 인식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Q.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동성혼 합법화, 차별금지법 등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성 소수자가 살아가기에 대한민국은 어떠하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나갔으면 좋겠는지.

성소수자들이 실생활을 하기에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경험이나 들은 바는 아직까지 없다. 제도적인 측면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닐 테니까 저도 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좀 발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해본다. 내 나이가 40~50살이 되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Q.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시간이다. 레즈비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부정하고 반대하더라도 오늘과 다른 내일을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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