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면을 들고 있는 시위 참가자

【투데이신문 한정욱 기자】앞으로 집회·시위 과정에서 복면을 착용한 참여자에 대해 가중 처벌하기로 한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진강)의 의결을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양형위의 결정이 집회와 시위를 위축시킨다고 보는 진보 성향 단체는 복면 착용을 가중처벌 한다는 기준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보수 성향 단체는 과격 행동을 보인 시위자 중 복면 착용자가 많았던 만큼 이번 결정으로 집회·시위가 과격한 양상으로 이어지는 일이 감소할 것이라며 양형위 의결을 환영하고 나섰다.

양형위, ‘복면시위자’ 처벌 강화 의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제74차 전체회의에서 공무집행범죄와 관련해 ‘복면착용’을 일반양형 인자에 포함한 양형기준 수정안을 최종 의결했다.

양형위는 이날 열린 회의에서 “신원 확인을 회피할 목적으로 신체 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 가중처벌토록 했다”고 밝혔다.

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일반양형인자에서조차 제외해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도록 했다”며 “우발적 시위자와 계획적인 시위자를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일반가중인자인 계획적 범행에 ‘신원확인 회피 목적으로 신체 일부를 가리고 범행한 경우(다만, 공무집행방해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경우 제외)’를 추가한 것이다.

또한 양형위는 공무집행방해 범죄의 기본 형량범위 영역을 6개월~1년6개월로 상향 조정했다. 기존에는 1년4개월이 상한이었다. 다만, 8개월 미만인 감경 영역과 1년~4년인 가중 영역은 변경하지 않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범죄의 가중 영역은 3년~6년에서 3년~7년으로 높였다.

양형기준 요소 중 일반양형인자는 법관의 판단 재량에 따라 선고형의 범위가 달라질 여지가 있지만 양형범위를 구분하는 감경-기준-가중 영역 간의 이동은 이뤄지지 않는다. 해당 영역 내에서 선고형을 결정하는 데 있어 무겁게 처벌하는 가중 요소로 고려한 것이다.

특별양형인자 가운데 가중요소인 특별가중인자에 해당하면 감경에서 기본, 기본에서 가중으로 영역을 이동해 가중처벌을 받는다.

양형위는 복면착용 논의 외에 정당한 공무집행에 대한 보복 목적 또는 원한, 증오감, 공무원을 괴롭히려는 의도 등 ‘비난할 만한 범행동기’를 특별가중인자로 반영해 가중처벌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비난할 만한 범행동기가 인정될 경우 영역을 이동해 가중처벌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특별가중인자인 ‘공무방해의 정도가 중한 경우’에 관한 정의규정에 인명구조, 화재진압, 범죄수사, 치안유지 등 긴급한 임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범행한 경우를 포함해 가중처벌이 이뤄지도록 했다.

반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나 공무집행이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경우에는 ‘참작할 만한 범행동기’로 보고 특별감경인자로 반영하기로 했다.

특별감경인자는 특별가중인자와 달리 가중에서 기본으로, 기본에서 감경으로 영역을 이동해 감경받는다.

   
▲ 가면 시위 퍼레이드 ⓒ뉴시스

진보단체 “국민 기본권 침해”

진보성향 법률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회장 정연순)은 이 같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가중처벌”이라고 맹비난했다.

민변은 7일 성명을 내고 “수정안 중 신원을 숨길 목적으로 신체의 일부를 가리고 공무집행을 방해한 경우 판사가 권고 형량 내에서 재량으로 선고형을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이는 복면을 착용한 시위자에 대해 가중된 양형을 적용해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조치로 그 결정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변에 따르면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복면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한다. IS도 그렇게 지금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언급하면서 복면착용 금지가 논의되기 시작됐다. 당시 여당 의원들은 집회·시위 참가자의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명 복면금지법)을 발의했지만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돼 입법화되지 못했고, 결국 19대 국회의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그로부터 8개월 만에 사법부가 양형의 가중 고려 대상에 복면착용을 포함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민변은 “법원이 집회·시위 참가자의 인권침해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집시법 위반이 아닌 ‘공무집행방해’ 행위에 대해서만 위 기준이 적용되는 것으로 했다”며 “그러나 집회·시위 참가자들이 집회 신고 내용을 조금이라도 어기거나 합법적 집회·시위를 방해하는 경찰에 항의하는 경우에도 일반교통방해죄와 공무집행방해죄로까지 기소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위와 같은 조치는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복면착용을 처벌하겠다는 지난해의 복면금지법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질타했다.

특히 민변은 과거 헌법재판소와 인권위원회의 결정에 비춰 볼 때 대법원의 이번 양형기준의 개정은 “국민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조치”라고 비난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집시법 위헌소원 결정에서 “집회의 자유는 참가자의 참가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고 결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위와 같은 헌재의 결정을 인용하면서 “복면금지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집회·시위 참가자의 복면착용 금지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민변은 “복면착용을 가중처벌 양형기준에 포함시킨 것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며 “더 나아가 이는 사법부 스스로가 권력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로 국민들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 충돌하는 경찰과 시위자 ⓒ뉴시스

보수단체 “과격한 집회·시위 감소할 것”

반면, 보수 성향 단체는 복면 착용자에 대한 가중처벌로 집회·시위가 과격한 양상으로 이어지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보수성향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복면 뒤에 숨어 본인을 드러내지 않은 채 상대적으로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과 마찰이 일어나거나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만큼 신원을 가리기 위한 복면 착용은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복면을 착용하고 폭력행위를 했을 때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포함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양형위에서라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해 12월에 개최한 ‘복면시위 둘러싼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를 통해 집회·시위 중 복면착용은  집회시위 자유의 ‘본질적 이익’ 침해하지 않고 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토론회에서 이관희 경찰대 명예교수는 “미국의 경우는 복면금지에 관해 연방법에도 ‘변장을 하고 행진’하면 벌금형이나 10년 이하의 구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고 캘리포니아 주 등 20개 가까운 주에서 복면금지에 관한 법률을 갖고 있다”면서 “프랑스도 지난 2009년 6월 20일 공공장소에서 시위를 하면서 복면이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총리령(令)을 발표한 바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도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것은 단지 ‘평화적’ 또는 ‘비폭력적’ 집회에 한하고 있으며 민주국가에서 정신적 대립과 논의의 수단으로서 평화적 수단을 이용한 의견의 표명은 헌법적으로 보호되지만, 폭력을 사용한 의견의 강요는 헌법적으로 보호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며 “집회의 자유가 중요한 국민의 기본권이지만, 폭력적인 집회나 시위는 결코 헌법에 의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상당수의 국가들이 집회와 시위에서 복면착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이유는 시위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상당수의 시위대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복면을 한 위장시위 참가자들로부터 선량한 일반 시위 참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양형위가 의결한 공무집행방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은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 국회 등 관계기관의 의견조회를 거친 뒤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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