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인기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상파 방송사 등의 사극 열풍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와 함께 질긴 악연을 놓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사극의 역사왜곡이다. 물론 이 자체는 이미 진부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루 이틀도 어니고, 수십년 째 되풀이되는 문제이니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시비가 계속되는 이유를 뒤집어 보면, 쓸데없이 되풀이되는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는 허구일 뿐’이라는 명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사극의 역사왜곡을 가지고 시비 걸 필요 없다는 말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유감스럽게도 아직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극에서 황당하게 왜곡시킨 이야기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예를 들어 백제 의자왕이 삼천 명 씩이나 되는 궁녀를 거느린 적 없다는 사실은 그 분야에서는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를 사실로 여기는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심하게 여자 밝히는 경우가 나오면 꼭 ‘의자왕’을 등장시켜 비교하는 행태도 여전하다. 미술사 시간에 ‘조선시대 여류화가’ 수업을 했더니, ‘왜 신윤복이 빠졌어요?’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단다.

물론 이 정도야 국가사회나 개인의 운명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사소한 오해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이런 차원을 넘어 극의 내용이 국가사회의 장래를 좌우할 메시지를 던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90년대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현대 정치 드라마 같은 경우, 여기서 묘사된 시대상황이 당시의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동남아시아 어떤 나라에서는 그때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를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한 결과, 사건의 실체와는 완전히 다른 드라마 메시지대로 여론이 형성되고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도 있었다 한다.

이런 일이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라도 무시하고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새로 들어선 정권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가 방영돼 여론이 춤추는 현상은 현재까지도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 정권 바뀔 때마다 영향력 큰 공영방송에 자기 사람 박아 장악하려는 시도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전근대를 다룬 사극이 이런 정도의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사실 현재와 직결되지 않는 시대의 영향력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있을 수도 없는 ‘타임슬립’을 통해 고려 초기로 돌아간 여자가 고려 왕자들과 현대적 감각의 로맨스를 벌이는 드라마 앞에 ‘본 드라마는 고려 태조부터 광종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자막이 붙어도 허탈한 웃음 한번으로 넘겨 버려야 할지 모른다. 또 조선의 세자가 사랑하는 남장여자 구하자고 청나라 사신 숙소에 칼 들고 난입해서 사신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와도 눈 딱 감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애초부터 이런 사극은 제정신 가지고 역사적 사실과 연결시키기 곤란할 테니까.

하지만 공영방송에서 ‘팩추얼’이라는 형식까지 빌려 방영되는 드라마는 사정이 좀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여기 나온 내용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려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최근 공영방송에서 공들여 내보내는 사극은, 역사학계에서 케케묵었다고 여기는 60-70년대 인식수준을 다시 끄집어내는데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최근 방영된 임진왜란 관련 사극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대상이 되는 시대 연구가 축적되면, 이를 반영해서 참신한 내용을 방영하려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는 반대로 간 것 같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잘 살렸다’며 찬사를 쏟아내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보았건만, 실제 내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과대망상증 환자여서 전쟁 일으켰고, 영지 약속받은 데다 광기에 휩싸인 일본 다이묘들도 미친 듯이 나섰다’는 고전적인 메시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는 역사적 사실과 좀 다르다. 적어도 선봉에 섰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는 전쟁을 막으려고 온갖 수를 다 썼다. 마음이 착해서라기보다, 영지 보장해주는 이권 같은 것은 불확실한 반면, 전쟁 때문에 날아갈 이권은 확실했다는 점 때문이었겠지만. 이 분야 연구자들에 의하면 다른 다이묘들도 사정이 비슷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눈 마주쳤다고 감격하는 등의 장면 만들어, 당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분위기가 단순한 욕심과 광기 뿐인 것처럼 몰아갔다.

큰 줄기에서 이럴 정도였으니 다카마츠 공략에서 인과관계 바꾸어 놓은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겠다. 여기서도 성을 포위해서 성주 자살하게 만든 다음, 주군 오다 노부나가의 암살 소식을 들은 것처럼 나오던데, 사실은 반대다. 주군의 암살 소식을 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병력을 빼내야 할 상황임을 깨닫고, 오다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함구령을 내린 뒤 다카마츠 성주에게 ‘할복하면 포위 풀어주겠다’고 속였다. 이런 식으로 인심 쓰는 것처럼 철수해서 다카마츠 측의 반격도 막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기지만큼은 높이 평가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까지 묻어 버리고 그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광기를 묘사하는 수단 정도로 삼은 것 같다. 이러려면 뭐 하러 막대한 자금 들여 새로 제작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전투 장면 많이 찍었다고 제작비 들이며 몇 번이나 다룬 임진왜란 드라마를 다시 제작하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사실 이것 말고도 감동을 주었다는 대사 상당부분도 당시 있지도 않았거나, 있었다 해도 맥락이 완전히 다르게 나온 부분이 많다.

남의 나라 사정 좀 멋대로 해석하면 어떠냐는 소리 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사고방식 가지고 현재의 비슷한 상황에 대처하면 어찌될까? 우리 주변의 위협은 배경도 이유도 없이 ‘모두 미친 X들 수작 때문일 뿐’이라는 식으로 여기면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민족인데, 주변에는 나쁜 족속들만 있어서 침략에 시달렸다’는 식의 이른바 ‘국난극복사’는 군사정권 시절 매우 좋아하던 테마였다. 그리고 이는 ‘그러니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 잘 해야 험한 꼴 당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와 연결시키기 십상이다. 그래서 공동투자를 했다는 중국 측에서도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국과 중국의 공영방송사가 이런 점에서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현실 자체도 양국 국민들에게 비극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제멋대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이렇게까지 답습한 점을 보면 의구심이 생긴다. 군사정권 시절에 강요하다시피 했던 역사인식으로 돌아가지는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특히 칭찬받을만한 내용도 없는데 찬사를 받는 현상이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조만간 국사 국정화교과서가 나온다. 혹시라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 전근대 역사 구석구석까지 군사정권 시절의 인식으로 바꾸어놓으려고 바람 잡는 것이나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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