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오늘 판결로서 또다시 사법부가 한센인들의 아픔을 외면하였다. 소록도를 찾아가고 미사여구로 가득한 판결문이라 하더라도 실질적 배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처의 치유가 아니라 모욕이며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지난달 23일 한센인권변호인단이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같은 날 오전 서울고등법원에서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센인 단종·낙태 수술 피해자들을 위한 국가배상소송 2심(항소심) 선고가 있었다.

재판부는 정부의 잘못을 인정했고 2심 역시 겉보기에는 승소한 듯 보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배상금 감액’이라는 아쉬움이 뒤따랐다.

1916년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는 한센병 치료와 전염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립소록도병원(구 자혜의원)을 설립하고 한센인 6000여명을 강제 수용했다. 그곳에서는 한센인들에 대해 강제 노역과 단종·낙태 수술 등이 이뤄졌다.

한센인들을 돕기 위해 구성된 ‘한센인권변호인단’은 2010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센인 단종·낙태 수술 피해자들을 위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단종 피해자 3000만원, 낙태 피해자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정부는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그리고 지난 9월 23일 서울고등법원은 “정부는 A씨 등 한센인 139명에 대해 1인당 2000만원씩 배상하라”는 선고를 내렸다. 이는 1심보다 약 2000만원 줄어든 금액이었다. 정부의 잘못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배상금은 감액된 반쪽짜리 승소였다.

해방 이후 정부가 한센병에 대해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한 점을 참작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시였다.

하지만 한센인들이 바라던 ‘일괄배상’도 이뤄지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인권유린이 해방 이후인 1990년대까지 이어졌음이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해 밝혀진 마당에 이 같은 재판부의 판시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선고 직후 한센인권변호인단은 “재판부가 대한민국 정부의 한센병 치료 등을 내세워 위자료를 고작 2000만원을 인정한 것은 한센인들에게 또다시 차별의 아픔과 모욕을 주는 것이다”라며 성명서와 함께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렇게 또다시 기나긴 법정 싸움이 예고됐다. 앞선 다른 소송들의 진행 결과를 미뤄볼 때 단종·낙태 수술 피해자들을 위한 국가배상소송 또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황. 무심히 흐르는 시간 속에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된 한센인들은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만 기다리다 하나둘씩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다. 차일피일 판결을 미루는 재판부의 태도는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질타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남아 있는, 그리고 먼저 떠난 한센인들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마땅한 배상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재판부의 손에 달려있다. 하루빨리 재판부가 한센인들이 빼앗긴 인생을 대신해 받는 배상금을 놓고 벌이는 정부의 ‘잔인한 줄다리기’를 끝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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