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 가습기 살균제 5년, 침묵의 살인자 그리고 공모자들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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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사건 교훈삼아 안전 사회 구축해야”
“아이 잃고 찾아온 죄책감에 사회 활동 할 수 없어”
옥시 CEO 라케시 카푸어 공식사과···‘진정성 전혀 없어’
5년 기다린 가습기청문회···‘피해자에 아쉬움만 남겨’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이하 가습기 특위)의 90일간 활동이 지난 4일 종료됐다.

피해자들은 가습기 특위 기간 연장을 목놓아 소리쳤지만 이마저 무산되며 특위의 활동은 사실상 끝나버린 셈이다.

가습기 특위가 진상규명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어냈지만 피해자구제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부분에 피해자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가습기 특위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달 20일 영국 옥시 본사를 직접 찾기도 했지만 피해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성과를 가져오진 못했다.

특위는 옥시 본사 CEO 라케시 카푸어와 피해자들 간의 면담을 주선하고 현지 언론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계획했던 활동을 실행했지만 옥시의 진정성 없는 사과와 ‘다음에 회신을 주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만 받아냈을 뿐 피해자 배상 등과 관련된 구체적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특위가 귀국하던 지난달 23일 영국행에 함께 했던 가습기살균제피해자유가족연대(이하 유족연대) 최승운 대표 역시 비통함을 안고 고개를 떨군 채 이들과 함께 귀국해야만 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이에 대한 실망으로 좌절감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투데이신문>은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해 또다시 국회에 나와 있는 그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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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주 영국 옥시 본사 방문을 다녀오고, 또 이렇게 국회에 나와 있다. 오늘은 어떤 일정으로 국회에 방문해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때 가해기업들이 피해자들의 배상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대한 진행 과정과 기금의 사용방안 등에 대해 특위와 논의하고자 한다. 돈이라는 것은 향후 다양한 문제점들을 야기할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들을 사전에 조율해보고자 마련된 자리다.

Q. 유족연대는 어떤 단체며 결성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유족연대는 어떠한 외부개입도 받지 않는 순수한 피해자들만의 모임이다. 우리 단체가 결성되기 전 나를 포함한 현재 임원 대부분이 원래 또 다른 피해자 단체인 가피모의 창립 멤버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회원들끼리 부딪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우리는 가피모가 마치 ‘환경보건시민센터’의 하부 조직처럼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상황에 동의할 수 없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알리고 피해를 찾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공론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가피모라는 피해자 모임이 시민단체의 하부조직 역할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당시 운영진으로 있었던 사람 10명이 시민단체의 입김을 받지 않는 순수한 피해자들만의 모임을 갖춰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 피해자유가족연대다.

Q. 피해자 단체의 대표를 맡게 된 계기와 대표로서의 고충이 있다면 무엇인가.

대표라는 자리를 마땅히 자처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거나 이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표라는 자리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 자리를 맡는다는 것이 자신들의 커리어가 될 수 있고 입신에 대한 발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 유족연대를 만든 우리 중에는 이 같은 욕심을 가진 사람이 없었고 모두가 굉장히 고된 일이라 생각해서인지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았다. 서로 미루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내가 맡게 됐다.

대표라는 자리는 예상대로 굉장히 힘든 자리였다. 단체의 일원들에게 명령하고 통보할 수 있는 자리라면 쉽겠지만 모두 뼈아픈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에 서로에게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했다. 단체가 진행하고 있는 활동과 관련해 종종 세월호 피해자들과 비교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피해자들처럼 뭉쳐서 규모 있는 활동을 해봐라”라는 등의 이야기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아프신 분들이며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어 모이는 자체가 힘들어서 현실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기 매우 힘들다.

Q.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피해를 본 건가.

2011년에 딸을 잃었다. 딸은 2010년생으로 두 살 때 세상을 떠났다. 2011년 4월에 입원해서 10월까지 투병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중환자실에만 5개월 이상 있었으며 사망한 아이 중 가장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한 아이기도 하다. 또한 당시 4살이었던 큰 아이는 9살인 현재 폐가 57% 정도 남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두 아이 모두 가습기살균제의 독성물질에 노출돼 피해자가 된 것이다.

Q.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어떻게 지냈으며 현재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지난 2004년 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바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입사해 선임연구원으로 일 해왔다. 그러던 중 아이가 아파서 휴직을 냈고, 아이를 잃고 난 후 다시 복직했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어 결국 퇴사를 하게 됐다. 아이를 잃고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이 찾아와 다른 사회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도 대부분이 기존 사회생활을 그만뒀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모두 ‘내 손으로 가족을 죽였다’는 무서운 트라우마나 죄책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심리상태로 내 생계를 위해 사회생활을 이어나간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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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청문회에서는 직접 참고인 자리에 앉아 발언하기도 했다.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청문회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컸다. 지난 5년간 피해자 전부가 무척이나 원해오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주요증인들은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참석한 증인들도 특위의 질문에 회피해나가기 급급했지만 특위는 이에 대해 어떤 제재도 하지 못했다. 또한 가습기 특위가 처음 시작할 때 특위에서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여야 간 성역 없이 힘을 합쳐 조사하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청문회 마지막 날인 종합기관보고에서 여당의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힘을 합치겠다고 약속하던 특위 위원들이 결국엔 분열되며 당론에 따르는 것처럼 보여 이 역시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웠다. 그뿐만 아니라 가습기살균제 청문회가 최소한 KBS에서는 방영될 줄 알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청문회 내용만 잠시 언급할 뿐 어디에서도 청문회를 방영하지 않았다. 이렇듯 청문회의 구성절차나 진행방법 등 많은 부분에서 굉장히 실망했다.

Q. 지난 9월 14일 직접 옥시 영국 본사방문을 했다. 어떤 일정이었는지.

우리 피해자들은 이 사건을 영국사회에 알리자는 목적으로 특위 위원들보다 먼저인 지난달 14일 영국으로 떠났다. 무엇보다 알리자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총리 본관 앞에서의 단식시위와 함께 미리 준비해간 전단지를 배포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던 중 영국의 성공회를 찾게 됐다. 성공회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해나간 현 영국 국교회의 전체를 의미하는 단체로 영국 내에서 아주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을 성공회에 알리고 싶었다. 성공회 앞에서 3일을 기다린 끝에, 애초 만나고자 했었던 성공회의 주교는 아니지만 사무장을 만날 수 있었다. 사무장을 만나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Q. 옥시의 최고경영자 라케시 카푸어 회장이 피해자들에게 공식으로 사과 했다. 진정성을 느끼고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예상했지만 라케시 카푸어의 사과에서 진정성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사과를 받는 자체도 피해자들은 반대했지만 사과를 받지 않으면 본사와의 회의 자체가 이뤄질 수 없다는 의원들의 말에 동의 아닌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Q. 라케시 카푸어 회장과 피해자들 간의 면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은 어떻게 이뤄졌으며 그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라케시 카푸어 회장과의 면담을 통해 우리는 본사 측에 대한 요구안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핵심적인 내용은 배상의 주체가 옥시 한국지사나 정부 당국이 아닌 옥시 본사가 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요구를 최소화시켜서 전달했지만 우리의 요구안을 본 라케시 카푸어는 우리의 요구에 큰 부담을 갖는 눈치였다. 라케시 카푸어는 이사회의 회의를 통해 요구안에 대해 결론을 내 알려주겠다고 했고, 우리는 이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Q. 사건을 영국 현지에 알리기 위해 어떤 활동을 했으며, 또 현지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먼저 특위 차원에서는 영국 BBC 라디오 등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사건을 영국사회에 알리고자 노력했고, 우리 피해자들은 사건을 현지에 알리자는 목적으로 사전에 2000장의 전단지를 준비해 배포했다. 영국 총리 본관 앞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는 활동을 했다. 수많은 영국 사람들과 많이 접촉했는데 단 한 사람도 이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전단지의 내용을 보고 사건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얘기를 듣고도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 사실이냐’며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어떻게 이 정도로 모를 수가 있는지에 대해 의아하고 속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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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국정조사 기간 안에 공기청정기, 에어컨, 화장품, 치약 등 많은 곳에서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검출되며 온 국민이 공포에 휩싸여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재 독극물질이 확인되며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제품들은 소비자가 시중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생활용품들이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공론화됨에 따라 시민단체들과 언론들이 ‘다른 화학제품들은 어떨까’라는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밝혀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진지하게 다뤄짐으로 인해서 사회 안전망이 갖춰지고 안전을 중시하는 전체적 풍토가 조성되길 바란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제품들이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시중에 유통돼왔고 이에 대해 정부는 전혀 자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화학제품들의 99%에 인체 유해성분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 외에도 독성을 가진 제품은 굉장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의혹이 제기되는 하나하나의 제품을 모두 확인하고 이러한 제품들이 다시는 유통되지 않게끔 국민들의 감시가 이뤄져야만 한다.

또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교훈이 돼 감춰져 있던 부분들이 밝혀지며 좀 더 안전하고 튼튼한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우리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원한다.

Q. 많은 이들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에 있어 무엇보다 국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피해자들을 대표해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순수한 소비자와는 상관없이 기업의 탐욕과 정무의 무능으로 인해서 발생된 참사라고 본다. 다행히 현재 국민들도 이러한 우리의 입장에 비슷한 관점으로 동의해주고 그렇게 인지를 해줘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만의 얘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마트에서 제품을 구매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의 얘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내 가족을 위해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준다면 우리의 사회에 안전망이 구축되는 데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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