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지난 10월 5∼7일(현지시간),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최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미래를 여는 한국문화’라는 주제로 제8회 세계한국학대회가 열렸다. 세계한국학대회가 벌써 8회째 이어졌다는 것이나, 이제 외국에서 이런 대회를 열 수 있다는 점은 나름대로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제 세계한국학대회가 높아진 위상에 맞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 필요성도 더 커졌다는 의미도 되겠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이 발표된다는 유력 일간지의 보도가 있었다. 바로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허남린 교수의 ‘임진왜란과 유교적 가치의 새로운 전개’라는 발표이다. 이 발표에 대해 한국일보에서는 기사 중에 “유교적 핵심가치 충·효·열은 양반의 이익 위한 수단일 뿐 윤리라는 탈을 쓴 폭력 구조”, “조선 사회가 유교적이었다는 전제는 조선 사회에 대한 이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내용을 인용하며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했다. 이를 통해 ‘유교사회 조선이라는 명제는 틀렸다’는 식의 나름대로 충격적인(?) 결론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까지 보는 근거는 대충 이렇다. 임진왜란 초기 이몽학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출동했던 김덕령과 군사를 모아 조령을 방어하기 위해 힘 쓴 신충원이, 모략을 받아 고문 받은 끝에 죽었던 사실이 있다. 이에 대비시켜 이런 와중에도 사족들은 국가적으로 충(忠)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배제하려 했던 점을 제시했다. 여기에 여성의 덕목에 여러 가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절만을 강조해 여성에 대한 성적 지배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까지 추가됐다. 이러한 변화가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을 기점으로 일어났다는 뜻이 되겠다.

이렇게 분명한 태도를 두고 한국일보 기사에서는, “현실사회주의권 붕괴 뒤 좌파들이 ‘그게 진짜 마르크스주의는 아니다’고 중얼대듯, ‘그게 진짜 유교는 아니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과 대비시켰다. 그만큼 애매한 말로 어물쩍 넘어가는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태도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영향력 있는 일간지에 이런 보도가 나갔으니, 우리 사회에 영향이 없을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제목에서부터 강조한 것처럼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이 전환의 계기였다는 점은 일단 아닌 것 같다. 허남린 교수 주장이 주는 본질적 메시지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선의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내세운 유교 이념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악용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아래 신분층에게 강요하다시피 했던 충·효·열 같은 가치들을, 정작 기득권층은 우습게 여겼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런 뜻이라면 굳이 임진왜란 이라는 사건이 강조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사실 자신들이 내세운 통치 이념을, 기득권층 스스로가 무시해 버리는 일은 임진왜란 전이라도 흔했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조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태종은, 충·효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야말로 인간 말종이다. 형제들을 마구 죽이고, 임금이자 아버지를 왕위에서 쫓아내고 유폐시켰으니까.

더 본질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런 현상은 단순히 조선시대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불교를 통치 이념으로 도입했던 왕이 진짜로 속세를 떠났던 일도 거의 없다. 현대에도 민주주의 팔아먹으며 독재했던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는 대한민국에서도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한두 번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헌법에서부터 가장 기본적인 민주공화국의 가치인 ‘평등’을 강조해놓았지만, 우리 사회가 실제로 평등한 사회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우리 역사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천황을 통치의 상징으로 떠받들게 해놓았던 일본의 쇼군들도, 실제로는 천황의 실권을 없애버리고 그를 이용하는 데에만 골몰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거나, ‘일본에서 천황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얼핏 난감한 명제인 것 같지만, 내막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에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사실 어떤 사회이건, 겉으로 내세우는 이념적 가치가 ‘원칙’에 불과하다는 점은 아는 사람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동서고금 가릴 것 없이, ‘원칙 따로 현실 따로’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고, 조선이 포함된 동아시아 전근대 사회는 그것이 좀 심했을 뿐이다. 그러니 허남린 교수가 내세웠던 사례들도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 역시 사실상 상식에 속한다. 역사를 조금만 훓어 보아도, 지배층이 통치 이념을 내세우는 이유가 충실히 그 이념을 지키며 사회를 이끌어가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념이란, 그저 자신들이 걸릴 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시해버리면서도 정적이나 백성들을 통제할 때 써먹을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 임진왜란 때나 그 이후, 충이나 효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이용해먹는 현상도 특별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병이라는 자발적 충의 논리를 갖고 자신들의 계급 이익을 보호하고자 했다’는 등의 행각도 이런 범주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까 특별히 임진왜란을 강조하면서, 이 시기 사족들의 행각을 두고 ‘효의 가치가 충의 가치의 상위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변환을 보여준다’는 식으로 몰아간 것도 무리가 있다. 알고 보면 힘 좀 쓴다는 개인이나 집단이 상황을 원하는 대로 몰고 가기 위해 유리한 논리를 만들어내 들이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니 ‘효의 가치가 충의 가치의 상위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변환’ 운운하는 것이 오히려 우스워 보인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이 발표에서 강조한 내용의 의미가 의심스러워진다. 이 발표에서 제시된 사례들은 ‘기득권층이 자기들 유리하게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제멋대로 논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관철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서 벗어나는 것 같지가 않다. 이런 정도라면, 알 만한 사람 다 아는 사실에 자기가 아는 사례 몇 개를 덧붙인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자극적인 사례 몇 개 던져놓고, 뻔한 상식을 대단한 연구처럼 포장했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해주는 바람에, 기득권층의 일반적인 성향이 특정시기 특정집단만의 문제인 것처럼 쓸데없이 호도되는 결과를 낳을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업적 채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닐 연구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영향 받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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