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선실세 장녹수(張綠水)
[칼럼] 비선실세 장녹수(張綠水)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10.20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힘을 악하게 드러내는 사람이야 악행을 숨기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고 바로 이해가 되지만, 선하게 발휘하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슈퍼맨과 배트맨이다. 이러한 경우는 스스로가 공명심이 없고, 세상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거나, 그 역시도 숨기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휘두르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숨기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요새 “비선실세”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실세(實勢)’라는 단어야 워낙 많이 나오는 익숙하지만, “비선”이라는 말은 그렇게 쓰임이 많지 않은 단어이다. “비선”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약 8개 정도의 동음이의어가 나오는데, 이 가운데 가장 가까운 단어는 비선(秘線)이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이 단어의 뜻은 “몰래 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음. 또는 그런 관계”이다. 지극히 공식적이지 않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껄끄러운 존재가 실질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숨기고 싶은 것까지 있다면 더더욱 그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장녹수의 경우 “비선”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입궁한 직후인 1502년(연산군 8)에 종4품의 숙원(淑媛)의 품계를 받았고, 바로 그 다음 해에 종3품의 숙용(淑容)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품계를 받았다는 것은 공식적인 직위에 올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녹수의 행태를 보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숨기고 싶을 것으로 보이는 행위들이 등장한다.

먼저 지금이야 큰 문제가 아니지만, 당대의 입장에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바로 장녹수의 신분 문제였다. 장녹수는 소실(小室) 소생, 즉 첩의 자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궁에 들어오는 것은 궁에 딸린 노비가 아니면 쉽지가 않았다. 심지어는 결혼도 여러 번 했다. 신병주의 글에 따르면 마지막에는 제안대군(齊安大君: 예종의 둘째 아들)의 노비로 들어가 그곳에서 대군의 노비와 혼인해 아들을 하나 두었다고 전해진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시대에 천인(賤人)으로 결혼을 여러 번 했고, 자식까지 있는데 연산군의 후궁이 되었다는 것은 조선왕조 입장에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녹수의 행보는 연산군 당시 ‘실세’ 그 자체였다.

우선 인사에 관여해서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준다. 장녹수의 주인이었던 제안대군의 장인 김수말(金守末)은 계속해서 벼슬이 올라갔는데, 실록에 따르면 장녹수가 왕에게 계속 부탁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녹수의 형부 김효손(金孝孫)도 함경도 전향 별감(傳香別監)에 제수됐다.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기도 했다. 장녹수는 궁 밖에 자신의 집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 주변 민가를 헐어버렸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권력을 쥐고 흔듦에 따른 오만방자함 때문에 일어나는 참사도 있었다. 자신보다 아름다운 두 명의 여성을 시기해 두 사람의 부자 형제(父子兄弟)를 하루아침에 다 죽였고, 장녹수의 치마를 한 번 잘못 밟았다는 이유로 기생이 참형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신병주의 연구에 따르면 장녹수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장록수의 하인까지도 행패를 부렸다고 전해진다. 당상관의 직위에 있던 사람이 장녹수의 하인에게 크게 모욕을 당했는데, 오히려 뇌물을 바치고서야 화를 면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장녹수의 하인까지도 뒷배가 되었고, 장녹수라는 실세는 또 다른 실세를 낳았다.

이렇게 비선에서 실세 역할을 했던 장녹수는 알려진 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중종반정을 주도한 세력은 가장 비난을 받던 장녹수를 추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렇게 잡힌 장녹수는 참형에 처해졌고, 장녹수의 시체에 백성들이 돌과 기와를 던져서 돌무더기가 쌓일 정도라고 전해진다. 장녹수를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았던 하인들도 모두 벌을 받았다.

인류 역사 속에서 “실세를 가진 비선”은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 비선이 실세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나중에 드러나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자신과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인기기사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