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최근 한 농민의 죽음을 두고 보기 드문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이 문제의 기원은 얼마 전에 있었던 시위에서 백남기라는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졌던 사건이다. 원칙적으로는 그 죽음의 원인을 밝혀 법적·도의적인 책임 소재를 가리고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해야 하는 부검부터가 시비 거리다. 이 자체가 통상적인 양상과 많이 다른 것이다. 보통은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싶어 하는 유족과 동료들이 부검을 요구하는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정부 측에서 하겠다는 부검을 유족과 동료들이 반대하고 있다. 왜 이렇게 얼핏 보기에는 해괴해 보일 사태가 일어날까.
해답은 진단을 내린 서울대병원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면 짐작이 갈 것 같다. 한 의사가 ‘그 농민은 경찰의 물대포와 상관없이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진단을 내놓았고, 다른 의사들은 이에 반발해 성명서까지 내놓았다. 이런 사태를 보면 양쪽 중 하나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은 확인된 셈이다.
부검에 반대하는 시위를 유족과 동료들이 벌이게 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제대로 된 부검을 하기도 전에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이 나오고, 이를 동료 의사들도 믿지 못하겠다고 반발하고 있으니 유족과 동료들의 반대에 이유가 없다고는 못할 것 같다. 사실 진단을 내린 의사는, 백남기라는 환자를 진료하는 라인과 좀 거리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부검을 한 들, 믿을만한 결과가 나오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의사라는 전문가가 내린 진단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에 있는 셈이다.
이 사태는 단순히 의사 하나가 믿지 못할 진단을 내렸다는 차원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사망 원인 같은 문제는 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해 온 사람이 아니면 공인받을 만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뒤집어 말하자면 원칙적으로 의사가 아닌 사람은, 아무리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라 하더라도 의사가 내린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도 된다.
그러니 바로 그 전문가라는 사람이, 그 전문지식의 논리와 맞지 않는 결론을 제멋대로 내리는 사태가 마구 생겨난다면 어찌될까. 비전문가들로서는 아무리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이 나온다 해도, 반론은 고사하고 의문조차 제시하지 못할 상황이다. 그러니 전문가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해괴한 결론을 내린다 해도, 무기력하게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문제일수록 전문가 집단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 결론이 나와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진다고 믿기는 곤란할 것 같다. 그나마 이번 경우는 좀 다행스러운 측면이라도 있다. 주목을 받는 사건이어서 그랬는지, 다른 의사들이 섣부른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으니 나름대로 검증이 시도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수긍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검증이 이루어질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듯하다. 그러니 이번 사태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은 셈이다.
어찌 보면 간단하게 시비를 가릴 수도 있는 문제를 두고 이렇게까지 파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간단하다. 어느 쪽이건 전문가 또는 전문가 집단이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양심을 팔아먹는 짓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는 단순히 이번 사건 하나에만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리사욕 채우자고 전문적 지식을 악용하고도 응징 받지 않는다면, 이후로는 어느 분야이건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악용해서 이익을 챙기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아가면, 그 피해는 계산조차 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이 개인적·집단적 이익을 얻기 위해 전문 지식을 악용하는 경우와 권력이 원하는 거짓말을 전문가의 권위를 이용해 시키는 경우이다. 어느 쪽이건 사회에 주는 악영향은 치명적이지만, 권력의 장난으로 일어나는 사태는 후유증이 크다. 권력이 뒤에 있는 경우에는, 이를 바로 잡으려는 다른 전문가의 검증 시도까지 틀어막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성장한 전문가들은 그야말로 사회의 암종이 되어 버린다. 자기 분야의 지식을 원칙에 맞게 쓰기보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악용하여 출세하려 하기 십상일 테니까. 그러면 권력자는 바로 그런 전문가를 골라 출세시켜 줄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면, 나중에는 뭐가 정상인지도 모를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전문가를 매수해서 장난치는 수법으로 당장 필요한 사안을 자기 원하는 대로 끌어 나아가기 좋겠지만, 이 덕분에 사회는 두고두고 피멍이 들어야 한다. 필자의 분야에서도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 지식을 악용하는 꼴, 수없이 본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도 심각한 상황에 빠져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