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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누적 판매 1억대’ 현대기아차
“리콜 은폐·축소” 내부 폭로에 ‘휘청’

현행법 대신 자체 조치로 무마 의혹
폭로 직원에 정보 공개 금지·징계로 압박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인 ‘품질경영’을 바탕으로 글로벌 누적 판매 1억대를 돌파하며 세계 5위의 완성차 업체로 우뚝 선 현대자동차그룹이 내부 공익제보자로 인해 곤혹을 치르고 있다.

현대차에서 25년간 근무해온 김광호(54) 부장이 현대차가 그간 결함을 은폐·축소하며 리콜을 은폐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

김 부장의 폭로는 조사 결과 일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싼타페 조수석 에어백 결함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국토교통부는 지난 5일 에어백 미작동 결함 가능성을 발견하고도 사실을 은폐했다며 현대차 이원희 대표를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이 같은 김 부장의 폭로에 사측은 조사 결과 결함으로 나타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며 다만 김 부장이 회사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등 의도가 순수하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이 같은 폭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여론을 형성하면서 현대차의 리콜 은폐·축소 의혹은 점차 커지고 있다.


“안전 관련 결함 차, 도로 달린다”

김 부장은 지난 1991년부터 입사해 올해까지 26년째 현대차에 몸담고 있다. 그간 김 부장은 연구소, 생산부, 엔진품질관리부, 품질전략팀을 거쳐 현재는 협력업체품질강화팀에서 일하고 있다.

현대차에 몸담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엔진과 함께 보낸 엔지니어 김 부장. 이런 그는 지난 2015년 2월 품질본부 품질전략팀에서 근무하면서 불편한 현실과 만났다.

품질전략팀은 리콜 관련 업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시행하는 팀이다. 이곳에서 파워트레인 리콜 업무를 담당한 그는 현대차가 리콜성 안전결함에 대해 자동차관리법을 지키지 않고 임의 관행대로 처리해 축소하거나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김 부장은 <투데이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현대기아차는 안전 관련 제작 결함을 확인했음에도 은폐나 축소 등 불법적으로 처리하는 게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며 “품질본부는 비용문제나 오너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현대차의 핵심가치인 ‘고객 최우선’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해 8월 김 부장은 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을 방문해 현대차의 이 같은 관행에 대해 제보했다. 그러나 인원과 장비가 부족해 사실상 조사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더불어 지난해 8월과 10월 사내 감사기획팀에 품질전략팀 내 만연해 있는 리콜 관련 불법적 관행에 대해 제보하고 회사의 조치를 기다렸다. 하지만 1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고 이 같은 회사의 행태에 실망한 김 부장은 부서 이동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품질문제를 발설할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받기도 했다.

결국 국내에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한 김 부장은 올 8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을 찾아가 현대차의 결함 문제를 고발했다. 이후 지난 9월 23일부터 해당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현대차 리콜 은폐 의혹은 세상에 알려졌다.

김 부장은 이달 다시 자동차연구원을 찾아 약 300여쪽, 19건의 결함 내용이 담긴 공익 신고서를 제출해 현재 조사 중에 있다.

김 부장은 “안전과 관련된 제작 결함이 있는 차량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침묵할 수 없어 고민 끝에 제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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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함 사실 알고도 자체 조치로 축소·은폐”

김 부장이 제기한 결함 은폐·축소 의혹은 △YF쏘나타 등 세타2 엔진 결함 △싼타페 조수석 에어백 결함 △싼타페 누유 결함 △덤프트럭 ‘엑시언트’ 동력전달장치 결함 등이다. 

먼저 YF쏘나타 세타2 엔진 결함을 김 부장은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는다. 

그는 해당 결함이 현대차가 주장하는 미국 공장의 초기 이물질 관련 문제가 아니라 엔진의 구조적 결함으로, 고속도로 주행 중 시동 꺼짐이나 엔진파손으로 이어질 수 있어 안전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특히 세타2 엔진은 YF쏘나타 뿐만 아니라 그랜저HG, K5(TF), K7(VG) 등도 장착하고 있어 김 부장의 주장대로 엔진의 구조적 결함일 경우 파장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물질 문제로 엔진에 불량이 발생하면 1만km 이내인 주행 초기에 대부분 발생하는 데 반해, 이번 세타2 엔진의 불량은 평균 9만km 주행 후 발생하는 비율이 79%에 달하고 있으며 10만km 이상에서 발생한 것도 22%에 달한다는 게 김 부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된 세타2 엔진에서만 생긴 초기 이물질과 관련된 문제로 한국에선 불량률이 현저히 떨어져 리콜하지 않았다며 리콜을 은폐하거나 축소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싼타페 조수석 에어백 결함과 누유 결함, 덤프트럭 ‘엑시언트’ 동력전달장치 결함 등에서는 현대차가 결함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도 리콜 대신 ‘서비스 점검 100%’ 등으로 자체 처리했다고 김 부장은 폭로했다.

싼타페 조수석 에어백 결함의 경우, 현대차는 지난해 6월 3일 산타페DM이 승객감지시스템 사양설정 오류로 조수석 에어백이 미전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대상 차량 2360대 가운데 66대는 이미 출고된 상태였고 이 중 62대는 직접 고객을 찾아 조치했지만, 나머지 4대는 연락이 끝내 닿지 않아 미조치했다.

누유 결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지난해 2월 싼타페, 투싼, 맥스크루즈 등의 엔진에 장착된 리어오일실에 부품 제작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대차는 대상차로 추정된 3427대 중 국내에 판매된 건 131대로 파악했다.

현대차는 리콜 대신 ‘서비스 점검 100%’ 조치를 취해 누유 결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국내 싼타페 구매자 9명만 서비스센터에서 새 차로 교환을 받았다.

덤프트럭인 엑시언트의 경우에도 동력전달장치인 ‘프로펠러 샤프트’의 일부 부품 결함으로 인해 저속 주행에서 장치 일부가 파손돼 정상 주행이 불가능할 수 있는 결함 사실을 지난해 4월 현대차는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리콜 대신 ‘서비스 점검 100%’의 조치를 취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는 차종과 상관없이 안전과 관련된 결함은 즉각 소비자에게 알린 후 시정조치하고 국토부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안전과 관련된 결함에 대해 신고 대신 서비스 점검 100% 등의 조치 같은 방법으로 자동차관리법을 지키지 않고 임의 관행대로 처리해 축소하거나 은폐했다는 게 김 부장의 주장이다.


뒤늦게 조사 착수한 국토부엔 ”기다려달라”

김 부장의 폭로 이후 이 같은 각종 의혹이 불거지고 여론이 들끓자 그간 조용하던 국내기관들의 움직임도 이어졌다.

국토부 강호인 장관은 지난 5일 현대차가 싼타페 조수석 에어백 미작동 결함 가능성을 발견하고도 사실을 은폐했다며 현대차 이원희 대표를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또 한국소비자원은 세타2 엔진과 관련한 현대차의 보증 연장 대책이 소비자의 불안과 의혹을 덜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지난 19일까지 해명을 요청했다. 현대차는 소비자원의 해명 요청에 다음달 3일로 회신 연장을 요청한 상태다.

   
▲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 ⓒ뉴시스

현대차, 제보자에 정보 공개금지·징계로 맞불

이처럼 김 부장의 폭로가 파장을 낳자 현대차는 김 부장에 대해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17일 김 부장이 유출한 품질 관련 자료가 초기 검토 자료들로 내용은 부정확하지만, 설계부터 제조 공정에 이르는 회사의 기술 정보가 그대로 담겨 있는 비밀자료라며 비밀정보 공개금지 가처분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청했다. 이어 지난 24일에는 김 부장에 대한 사측의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김 부장은 “품질본부 품질전략팀 내 리콜 은폐라는 불법적인 관행을 고쳐보고자 시작한 한 개인의 노력은 지난해 8월부터 14개월째 공허한 외침이 되고 있다”며 “보안규정위반이라는 명목으로 징계 회부해 24일 인사징계위원회에 이른 참담한 현실 앞에 가슴이 답답해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인 ‘품질경영’을 바탕으로 글로벌 판매 800만대 시대를 연 현대차. 정 회장은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믿고 탈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며 그 기본이 바로 품질”이라는 ‘품질 제일주의’ 원칙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번 내부자 고발로 그동안 강조해 온 품질경영이 헛구호에 그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이번 의혹은 안전문제와 직결된 문제인 만큼 소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만큼 현대차의 적극적인 해명과 발 빠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품질 쇄신을 위한 TF를 구성해 조만간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방침이지만 김 부장의 추가 폭로도 예상되고 있어 이번 품질 논란을 쉽게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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