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백화점 노동자의 숨은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긴 쇼핑의 시간 동안 결국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저 높은 곳에서 거두고 맞은편에 둔다면, 무한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에서 유한한 사람의 노동으로 눈길을 옮긴다면 나와 아주 닮은, 외로운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백화점 갑질’과 관련된 영상과 증언들이 SNS을 통해 끊이지 않고 전해졌다. 이 영상들에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백화점 노동자의 뺨을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무릎 꿇고 사과할 것을 강요하는 이른바 ‘진상’ 고객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고객들은 구매한 지 몇 개월, 심지어는 몇 년이 지난 상품을 가져와 환불·반품해 달라고 하는 등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하며 폭언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요구를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가장 힘없는 매장의 노동자들만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연신 반복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감정노동과 날이 갈수록 더해 가는 매출 압박은 백화점 노동자들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겉보기에 번듯하고 화려한 공간, 그리고 최상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백화점은 이러한 모욕과 죽음의 공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는 휘황찬란한 공간 이면에서 고강도의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귀한 시대에, 이 책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물건을 건네주는 사람,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차별받고 있는 여성들과 함께 오랜 시간 운동해 온 한국여성민우회와 백화점 노동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을 만나고 연결해 온 안미선 작가, 용기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 준 열두 명의 백화점 노동자들이 이 책의 공동작업자다.

공동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물건을 사이에 두고” 비인간적인 고객과 무력한 노동자가 되도록 조장하고 있는 백화점과 사회의 이면을 낱낱이 일러준다. “지갑을 가진 존재로만 규정되는” 고객과, 매출을 위해 “모든 것을 받아 줘야 하는 존재”인 노동자들이 사회가 규정해 놓은 각본을 깨고 서로 만나야만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서로에게 공감하며, ‘연결’될 수 있는 계기가 돼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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