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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대서 '2016 민중총궐기' 열려
역대 최다 참가 인원···100만명 기록
성난 민심, 청와대 향해 ‘하야’ 소리쳐
훗날 ‘100만 시민항쟁’으로 기억되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지난해 11월 열린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직격탄으로 쏜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일 년 가까이 사경을 헤매던 끝에 지난달 25일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백 농민의 죽음은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 명백했다. 하지만 정부는 정확한 사인규명이 필요하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시신부검을 위한 영장을 청구했다. 정부의 만행 앞에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무분별한 공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이 제기되며 온 나라가 떠들썩해졌다. 박정희 정부때부터 연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뒤에서 조정하며 국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에 관여하고 이를 사유화했다는 논란까지 불거지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를 지지해온 수많은 국민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실망을 안겼다. 정부의 밑도 끝도 없는 농단 앞에 국민들은 등을 돌렸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곤두박질쳤다. 그는 냉담하게 돌아선 민심을 붙잡기 위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전매특허인 문제의 본질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책임을 회피하며 성난 민심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5천만 민생을 품어야 할 지도자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에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결국 백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대통령의 하야와 퇴진을 외치는 사상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2016년 11월 12일 서울광장에서는 ‘백남기·한상균과 함께 민중의 대반격을! 박근혜 정권 퇴진! 2016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최순실 게이트와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 국정교과서 등과 관련해 정부에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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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투쟁, 노동개악 퇴출’

오후 2시, 집회 예정 시간을 2시간여 앞뒀지만 1호선 시청역은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파를 뚫고 겨우겨우 도착한 시청 광장에는 푸르디푸르던 잔디는 온데 간데 보이지 않고 피켓을 들고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들을 비롯해 이들과 뜻을 함께하기 위해 주말까지 반납하고 모여든 사람들로 빼곡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가슴이 벅차는 장관이었다.

중앙 무대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연맹)이 주관한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16 전국노동자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이날 대회에는 공공운수노조 3만5000여명, 공무원노조 2만명, 금속노조 1만5000여명 등 약 15만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자리를 빛냈다. 이들은 박대통령의 퇴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제노총 엠벳 유슨(Ambet Yuson) 사무총장은 “아직까지도 끈질기게 투쟁하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유가족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며 “박근혜 정부는 명확한 근거 없이 구속된 노동자들을 즉각 석방해야한다”고 목 놓아 외쳤다. 그리고 2015년 11월 대한민국 민중총궐기 주도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옥중에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을 비롯한 노동자의 인권 쟁취를 위해 싸우다 구속된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한 위원장은 옥중에서 보낸 편지로 동지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유난히도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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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정부의 만행을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노동자들의 강력한 의지를 표출하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그들의 몸짓, 표정 하나 하나에 원망과 분노, 한이 서려있었다.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 대부분은 평범한 서민이다. 어쩌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이들이 생계까지 내팽개치면서까지 하루 종일 찬 바닥에 앉아 왜곡된 노동개혁과 맞서 싸워야하는 현실 앞에 괜스레 마음이 울컥했다.

현장 분위기는 굉장히 활기찼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정부를 안줏거리 삼아 씹어대며 술잔을 기울이고,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집회를 즐겼다. 박 대통령과 최씨를 겨냥한 각종 풍자도 한층 더 흥을 돋웠다. 또한 누구 하나 난동 부리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집회를 이어갔다. 2016 민중총궐기는 평화 시위를 넘어서서 축제에 가까웠다.

이날 최소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상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최 측 추산에 따르면 부산 3만5천명, 광주 1만명, 제주 5천명, 대구 4천명으로 서울행 기차표와 전세버스가 동이 날 정도였다.

오로지 집회를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는 대학생 정려원(19) 씨는 “언론을 통해서 접했던 것 이상으로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뜨겁다”며 “이곳에 모인 국민 한 명 한 명의 간절한 목소리가 정부에까지 잘 전달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주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정재형(20) 씨는 “오늘 현장을 통해 역사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며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통치자로서의 자격까지 박탈당한 박 대통령은 빠른 시일 내에 하야를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또 광주에서 올라온 고등학생 백동유(17) 군은 “오늘이 ‘4.19 혁명’과 ‘6월 항쟁’처럼 하나의 국민들이 힘을 모은 하나의 혁명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며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학생들이 스스로 한걸음 나아간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5시, 집회 참석 인원이 5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광장에는 한발자국 내딛기조차 어려울 만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기자는 피켓을 들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대열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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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퇴진하라’, ‘내려와 박근혜’

한참을 걷다보니 어디선가 열띤 환호성이 들려왔다. 대열에서 잠시 벗어나 소리를 따라가자 시국자유발언대 앞에 선 교복을 입은 앳된 소녀들이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는 지금 한 나라의 대통령이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팔아넘기는 역사파괴자가 되고, 수백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살인자가 되고, 국민들의 세금을 마구 쓰는 신용불량자가 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며 “정부는 그동안 국민들이 멍청해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믿고 기다리며 지켜봐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목 놓아 외쳤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두 학생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자유발언대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한편에서는 선생님들이 교편이 아닌 피켓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숭실고등학교 교사 유현민(39) 씨는 “국가가, 그리고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고 나와 싸워 지켜낸 것이라 알려주고 싶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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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질 오후 6시 무렵 겨우 광화문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람을 따라 세차게 펄럭이는 깃발들 사이에서 하나 둘씩 촛불이 피어올랐고 현장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의 촛불을 밝혀줬다. 삽시간에 광화문 일대가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오후 7시경, 집회 참가 인원은 85만명까지 불어났다. 시청에 있던 사람들도 “박근혜는” 선창에 맞춰 “퇴진하라”를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함께 발맞춰 걸었다.

한손에는 촛불을 한손은 서로의 손을 맞잡은 커플들이 많았다.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 남모(30) 씨와 조모(여·29) 씨는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집회에 참여했다. 아이가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 시민으로 자라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 먼저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씨는 “집회에 처음 참가해보기 때문에 다소 걱정도 있었지만 축제 같은 분위기에 금세 편안해졌다”며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목소리를 외치며 불의에 저항한다는 게 시민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6월 항쟁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가져온 상징인 것처럼 오늘 집회도 민주 시민 스스로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끌어 낸 상징적인 날로 기록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함께 온 조씨도 “세월호 참사, 한일협정, 백남기 농민 사태에 이어 최순실 국정농단까지 지켜보면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정부에게 최후통첩을 하는 심정으로 나왔다”며 “오늘이 2016년 우리 정부의 치욕적인 현실에 대한 국민의 분노로 기록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들도 많았다.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행진하고 유모차에 앉아 뜻도 모를 “하야”를 외치는 아이들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 할 자식들을 위해 거리로 나선 부모들이 훗날 부끄럽지 않은 기성세대가 될 수 있음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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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게 내리 깔린 오후 9시, 촛불을 든 국민의 수가 100만명에 도달하며 2016 민중총궐기는 정점을 향해 달려갔다. 이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기간 중 역대 최다 인원으로 알려진 70만명을 훌쩍 넘은 수치다. 밤은 점점 깊어졌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러려고 박근혜를 뽑았나’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그가 스스로 물러나길 청와대 담장을 넘어가도록 외쳐댔다.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들은 가슴 아프지만 부끄럽지 않은,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덕분에 2016년 11월 12일은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11월 12일 100만 시민항쟁’이란 이름으로 4·19혁명, 6월 민주항쟁과 함께 자랑스럽게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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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이번 집회를 취재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어떤 국가의 국민보다 선(善)하며, 괜히 동방예의지국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도 없이 국민을 기만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한낱 파렴치한에 불과한 지도자를 위해 기꺼이 사과하고 스스로 물러날 기회를 주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국민들은 뭣 모르는 철부지 공주의 장난질로 죽어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생명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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