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트라우마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외상성 신경증(外傷性神經症)을 뜻한다고 나온다. 영어사전에는 정신적 외상, 충격적인 경험, 부상, 외상을 뜻한다. 이를 종합한다면, 트라우마는 몸에 심각한 충격을 받거나, 충격적인 무엇인가를 경험했거나 느낀 이후 그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계속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것을 뜻한다.

트라우마는 심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논제(論題) 중 하나이다. 서동욱은 그의 글에서 트라우마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기본 개념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사르트르의 “우리 의식의 배후에서 우리 삶을 조종하는 무의식이란 주문이 걸린 원시 종교의 인형 같은 것”이라는 비판이나, 들뢰즈의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과 복종으로부터 모든 억압적인 제도가 시작됐다”는 비판도 설명했다. 프로이트의 트라우마에 대한 개념이나 이에 대한 비판 속에서 인간이 가진 무의식의 깊이와 이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인간의 역동성 모두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왕들 역시 트라우마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역사에서 폭군으로 분류되는 연산군과 광해군의 경우를 살펴보자. 연산군의 경우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후 폭군이 됐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또한 광해군은 선조의 질투와 세자 책봉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진 왕위 위협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배다른 형제인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폭군으로 분류됐던 왕만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 왕조의 기준으로 훌륭한 왕으로 평가를 받는 왕들도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의 경우 무관에 함경도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쿠데타 전까지 많은 조롱과 멸시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고려 말 정몽주와 친분이 있었을 때, 이방원(훗날 태종)이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몽주에게 시쳇말로 “한 턱 거하게 쏘고”, 줄곧 자랑을 했다고 전해진다.

태종이 그 중심이었지만,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은 태종에게도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가 됐을 것이다. 태종이 집권한 후 그의 세 아들에게 우애를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지 맞아들 양녕대군이 세자 자리에서 폐위된 것이 충녕대군(훗날 세종)의 성군의 기질을 파악하고 일부러 방탕하게 행동해서 세자 자리에서 폐위되게끔 만들었고, 차남인 효녕대군 역시 충녕대군이 세자에 책봉된 후 알아서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갔다는 야사(野史)도 존재한다.

정조의 경우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후궁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를 가진 영조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아버지를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다.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본 정조에게 이것 역시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트라우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조의 몇 되지 않는 실정(失政) 중 하나는 기록에서 아버지에 관한 것 중 일부를 삭제한 것이다.

트라우마를 가진 제왕은 고독했을 것이다. 거기에 전제 군주면서도, 대신들의 눈치를 봐야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아이러니까지 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이 가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트라우마를 보면 그 결과가 반드시 죄악으로 작용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 심리치료, 정신과치료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트라우마의 치료가 더 쉬울지도 모른다. 트라우마의 개념이 사람들 사이에서 대중화되면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을 인정하고, 함께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위기도 있다. 조선의 제왕처럼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됨을 전제로 한다. 트라우마가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이 국가의 중요 요직에 앉는다면, 연산군 같은 폭군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트라우마 환자에게 투표했다’는 또 다른 트라우마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인 ‘길라임’(하지원 분)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스턴트 배우가 되는 것으로 승화시키지 않았는가? 지금이라도 트라우마에 대한 빠른 격리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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