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고등학교 1학년, 반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해
진심으로 얘기 들어줄 단 한명의 친구 필요

자살 결심하기도···먼저 다가와 준 친구 덕에 극복
이를 계기로 같은 처지에 놓인 10대 청소년 돕기로

10대를 위한 고민상담 어플 ‘홀딩파이브’ 개발
고민을 공유하며 마음의 상처 치유되길 바라

자살 결심한 청소년 마음 바꿨을 때 보람 느껴
청소년을 위한 더 많은 소통의 공간 만들고파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아이들은 항상 ‘우리’였고, 나는 ‘얘’였습니다”

학교폭력을 소재로 그린 영화 ‘우아한 거짓말’ 속 주인공 천지(배우 김향기)의 대사다.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과 따돌림에 시달리던 천지는 결국 자살을 하고야 만다. 천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

우리는 뉴스를 통해 왕따 문제로 고민하던 10대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고 한다. ‘우리’가 아닌 홀로 남겨진 현실은 한창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버거웠을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오직 단 하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단 한명의 친구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혼자’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10대들에게 손을 내민 이가 있다. 바로 ‘홀딩파이브’의 개발자 김성빈(20)씨다.

고등학교 1학년, 김씨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들의 손가락질에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고,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들이 나타났고, 그들 덕분에 지옥 같을 뻔했던 학창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씨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친구가 돼주기로 했다. 학교폭력으로 고민하는 아이들을 위한 소통의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한 그는 10대들의 고민 상담 어플 ‘홀딩파이브’를 탄생시켰다. 그는 홀딩파이브를 통해 10대들이 자신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받으며 서로의 친구가 돼줘 그들이 더 이상 왕따라는 굴레에 갇혀있지 않기를 소망한다.

<투데이신문>은 왕따를 극복하고 자신과 같은 위기를 겪고 있는 10대들을 위해 손을 내밀기까지 다사다난했던 학창시절을 보낸 김성빈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Q. 어플 ‘홀딩파이브(Holding Five)’에 대해 간단히 소개 바란다.

홀딩파이브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집단 지성을 끌어모아 학교 폭력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친구가 돼줘 위기의 상황을 막기 위한 10대들의 고민 상담 어플이다.

Q. 홀딩파이브 이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홀딩이펙트(Holding Effect)’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안아주기 효과’로 아이가 불안해하고 자지러지게 울 때 엄마가 안아줌으로써 안정을 되찾는다는 것을 뜻한다. 단어의 의미가 내가 만들고자 했던 어플의 취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어떤 사람이 자살을 하려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마음을 바꾸게 됐다는 일화를 말씀해주셨다. 그때 흘러나온 음악이 4분 58초 짜리 곡이었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굉장히 짧은 시간인 5분이 위기의 상황에서는 골든타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위기의 5분 동안 어머니의 마음으로 안아주자는 마음으로 ‘홀딩파이브’로 짓게 됐다.

Q. 홀딩파이브를 개발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나 역시 고등학교 1학년 때 왕따를 당한 학교폭력 피해자다. 그 당시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내 편을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단 한명이라도 진심으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친구와 공간이 간절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이 상황을 극복하게 된다면 나랑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게 계기가 됐다.

   
▲ 어플 ‘홀딩파이브’ 캡처 화면 ⓒ투데이신문

Q. 어플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어플 안에는 ‘해피인’과 ‘드림인’이 있다. 해피인은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멘토이고, 드림인은 꿈을 꾸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멘티에 해당한다. 청소년들끼리 댓글로만 고민을 공유하다 보니 줄 수 있는 도움에 한계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소통하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노래해주실 멘토인 해피인으로 모셨다. 드림인이 글을 올리면 서로 댓글을 주고받을 수 있고 해피인의 메시지가 자동으로 발송된다.

Q. 어플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던데,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는지.

금전적인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홀딩파이브를 처음 기획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고 막연하게 머릿속에는 그렸지만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지 등 현실적인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다. 진짜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실전에 뛰어들어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일단은 부모님께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의뢰를 요청한 결과 개발 비용 견적이 5000만원이 나왔다. 도움을 주기로한 기업에서 3000만원까지는 지원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 2000만원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홀딩파이브를 만들어 주실 분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선행에 앞장서는 기업에 직접 손편지도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면 언젠가는 반드시 만들겠다 마음먹고 잠시 접어두려는 찰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정신적 혼돈을 겪고 있을 많은 아이들이 홀딩파이브가 있었더라면 마음을 털어놓고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고 다시 의뢰하며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 모 기업 대표님이 홀딩파이브의 동기가 마음에 든다며 재능기부를 해주셨다. 그렇게 2014년 7월 홀딩파이브는 재능기부를 통해 세상 밖에 나오게 됐다.

Q. 홀딩파이브를 만들기까지 누구의 도움이 가장 컸는지.

무엇보다 가족들의 지원사격이 가장 컸다. 그리고 나의 멘토이기도 한 강지원 변호사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강 변호사님은 찾아뵙기 전부터 누구보다 청소년 문제에 앞장서시는 분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주실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대로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셨다. 내가 절망해있거나 포기해야겠다는 나약한 생각을 할 때마다 붙잡아주셨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에 이걸 왜 하냐’고 말할 때 강 변호사님은 ‘열정이 있을 때 뭐든 하라’고 조언하셨다. 지금도 강 변호사님은 홀딩파이브를 통해 나를 비롯한 많은 청소년들에게 멘토가 돼주시고 있다.

Q. 아직 대학생이다. 홀딩파이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운영 방식에 있어 아쉬운 점은 없는가.

나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도와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무래도 재능기부를 통해 제작되다 보니 기존에 생각했던 것들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못하고 많이 단순화됐다. 그리고 아직까지 안드로이드 버전밖에 나오지 않아 아이폰 유저들은 이용할 수가 없다. 여건상 ios 버전은 물론이고 기존에 있던 어플의 업그레이드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선뜻 홀딩파이브 제작에 도움을 주시겠다는 분이 없어 현재는 기존의 어플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 ⓒ투데이신문

Q. 주로 어떤 고민들이 올라오는가.

처음에는 10대들을 위해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부모님 세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홀딩파이브를 찾고 있다. 크게 연령대로 나눠보면 10대들은 학교폭력, 이성, 외모, 학업, 가정불화 등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다. 20~30대 분들은 직장 내 왕따 문제와 과거 학창시절 왕따 극복 수기를 올려준다. 또 부모님 세대는 사춘기 자녀들과의 갈등에 대한 걱정을 올려주신다.

Q. 왕따로 인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라는 과거를 오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내 아픔을 알리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 왕따였다는 과거를 알리기로 결심한 이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딸이 무슨 문제가 있어서 왕따를 당했냐’는 말을 듣게 됐고 ‘숨겼으면 아무도 몰랐을 텐데 괜히 말해서 왕따로 낙인찍힌 것은 아닌가’ 조금은 후회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어디선가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아이들이 나를 통해 자살만이 답이 아니라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Q. 어쩌면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고민 상담 어플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홀딩파이브를 만들 당시에는 학년이 바뀌고 친구들이 생기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시기였기 때문에 오로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보다 더 아픈 상처를 가진 아이들을 위로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 역시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됐다.

Q. 학교폭력 전문 상담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소년들이 홀딩파이브를 찾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과거 왕따를 당했을 때 전화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다.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이름과 학교를 공개해야 했는데 그것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 역시 이런 점에 대해 공감을 했고 익명성을 보장해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글을 올릴 때마다 닉네임이 매번 바뀌도록 해 글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 유추할 수 없도록 2중으로 익명성을 높였다. 익명성을 악용한 악플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10대들이 분위기에 휩쓸리는 성향이 있어 홀딩파이브 내의 분위기를 어떻게 잡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어른들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보니 함부로 말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신고버튼을 넣어뒀는데 아직까지 신고가 들어온 적은 없다.

Q. 홀딩파이브를 운영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어떻게 보면 한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살을 결심했다가 마음을 바꾸는 친구들을 볼 때 가장 크게 보람을 느낀다.

Q. 홀딩파이브로 위로받고 연락 온 사례도 있는지.

메일을 통해 종종 연락이 오곤 한다. 자살을 결심했다가 홀딩파이브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거나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다가 보다 더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히 자살을 생각할 수 없게 됐다는 경우가 있었다. 또 어떤 남학생은 단순히 스펙을 쌓기 위해 또래의 상담을 해주고 있었는데 홀딩파이브를 통해 사명감도 생기고 상담가라는 꿈이 생겼다는 후기를 전해줬다. 그런 얘기를 접할 때마다 감사할 따름이다.

   
▲ ⓒ출판사 마린북스

Q. 어플에 올라 온 사연을 바탕으로 책 ‘홀딩파이브 도와줘!’도 출간했다던데.

홀딩파이브가 열린게시판이다 보니 수많은 글들이 올라오다 보면 이전 고민 글은 밀려서 보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테마별로 사례를 엮어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책으로 엮게 됐다. 처음 홀딩파이브가 소개된 JTBC 방송을 보고 감사하게도 출판사 대표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 지침서를 만들자고 제안해주셨고 책 ‘홀딩파이브 도와줘!’를 출판하게 됐다.

Q. 책이나 어플 외에도 10대들을 위해 준비 중인 것이 있는지.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홀딩파이브 어플의 업그레이드다. 이 부분이 해결되고 나면 캠프를 열어 오프라인으로 홀딩파이브 이용자들을 만나고 싶다. 다 함께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것이고 아이들은 더 이상 왕따가 아니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꼭 학교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오프라인으로 열고 싶다.

Q.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런 질문을 받으면 방관자를 없애야 된다고 얘기한다. 방관자는 가해자에게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까 정당한 거야’라는, 피해자에게는 ‘쟤마저도 내편이 아니야’라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 부모님 세대 때는 방관자를 대신해 중재자라고 해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힐 때 이를 중재시켜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왕따의 친구는 제2의 왕따가 되는 분위기다. 그래서 이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고 상황을 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방관자 문화가 사라져야 학교폭력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피해 학생들이 본인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아픔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Q. 홀딩파이브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나갔으면 좋겠는지.

지금처럼 꾸준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이 되는 홀딩파이브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시스템 정상화가 잘 돼서 해피인과 청소년들이 소통하며 꿈과 희망을 노래하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지금은 청소년지도사를 꿈꾸고 있다. 홀딩파이브 외에 청소년들을 위한 더 많은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원활하게 하는 커뮤니케이터도 생각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홀딩파이브를 통해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홀딩파이브에 관심을 갖고 청소년들의 고민에 도움을 손길을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또한 학교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믿고 앞으로 당당히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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