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지난 12일, 서울 거리가 마비됐다. 평범한 중·고등학생부터 가족, 연인, 휠체어를 탄 장애인, 농민, 노조, 교사, 환경단체, 성소수자연합회, 장수풍뎅이연구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서울 거리를 점령했다. 주최측 추산 100만명(경찰 측 추산 26만명)이다. 지하철 이용객 수를 계산하면 125만명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서로 다른 안건을 들고 왔지만 그들이 외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주말을 반납하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모두 분노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조금의 기대감도 있는 듯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모였으니 그분도 뭔가 깨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을까.

그곳에 모인 ‘을’들의 발언만 놓고 보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이번 정권은 잘해낸 게 하나도 없었다. 세월호는 7시간의 의문을 품은 채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 잠들어 있는데 동시에 누군가는 비선실세로 있으며 900억원을 받았다. 5800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 수장은 아무 공권력도 없는 개인에 의지해 4년을 통치해 왔음에도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고 국민에게 하소연했다. 이 무책임한 발언은 오히려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국민들을 광화문으로 모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물론 나도 이런 기자수첩을 쓰려고 기자 한 건 아니다.

적어도, 덕분에 현재 국민들은 이전엔 생소할 수 있었던 한 단어 ‘하야’의 뜻만은 확실히 알게 됐다. 행렬의 선두에 선 트럭들은 누가 더 창의적인지 대결이라도 하듯 후렴구에 ‘하야’를 넣어 개사한 노래들을 우렁차게 스피커로 틀어댔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축제에 온 것마냥 이를 따라 불렀다. 시민들이 들고 있는 피켓 위에도 ‘하야’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5살 정도의 여자아이도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하야하라”고 중얼거렸다.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당시 프랑스 신문들은 ‘독재자의 딸, 한국의 대통령이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그 중 몇 언론들은 박근혜가 독재자였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탈바꿈하고 본인 또한 부친의 이데올로기를 따르지는 않을지,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지는 않을지 우려했다.

이후 4년이 지난 현재, 많은 이들의 반대 속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건물을 올리고 동상을 세우는데 이번 정권이 투자한 돈은 대략 1900억원이다. 항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을 내릴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그들이 우려했던 일이 맞아떨어진 것이었을까. 참고로 현재 프랑스 신문들은 ‘최 게이트 - 무당과 대통령’이나 ‘한국인들, 대통령 퇴진 촉구’라는 제목의 기사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1960년 일어난 4·19혁명은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독재 정권을 타도한 민주주의 혁명으로 우리의 역사에 기록돼 있다. 부정선거 규탄 시위,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전국 대규모 시위, 그리고 이어진 대학 교수단 시국선언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후로 56년이 지났다. 11월 12일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마음으로 100만명이 모였고 경찰은 건국 이래 최초로 광화문 8차선 도로를 열었다. 비상계엄령이나 폭력, 발포만 없었을 뿐 4·19혁명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광화문에 모인 국민들은 2016년 11월 12일이 4·19혁명처럼, 5·18민주화운동처럼, 6월 민주항쟁처럼 기억되길 바라고 있었다. 갈 길이 멀다. 앞으로 몇 백번의 청와대 행진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행렬의 선두에 서야 하고,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역사에 남아야 한다.

19일, 광화문광장에만 주최측 추산 60만명(경찰측 추산 15만명)이 모였다. 서울 곳곳에서,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켰고 광주에서는 횃불도 들었다. 26일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더 많은 국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한 목소리로 하야를 외치고 있고 후손들에게 더욱 좋은 ‘우리’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1월 첫째주와 둘째주, 셋째주에 대통령이 직무를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시민은 전국 ‘5%’다. 방전됐다. 대한민국은 곧 그 디바이스가 꺼질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이제 마음 놓을 수 있는 넉넉한 지지율의 새 배터리를 원하고 있다. 이들의 외침이 헛되지 않길, 그리고 2016년 11월이 대한민국 역사 속에 영원히 남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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