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성혐오 그 후’ 저자 이현재 교수

   
▲ 이현재 교수 ⓒ투데이신문 김민수 인턴기자

여성혐오는 항상 존재... 신자유주의·도시화로 두드러져
한국 정서와 맥락에 맞는 ‘한국식 페미니즘’ 등장하다

국내 페미니즘 주체 ‘비체’…젠더 경계 넘나드는 존재
여성혐오는 비체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서 비롯된 것

온라인·오프라인 다양한 활동으로 목소리 내는 비체들
비체들 사이에서도 의견 달라…서로 듣고 공감해야

지금 한국은 페미니즘 과도기…사람들 공감 얻어내야
“권력 불안정할 때 페미니즘 외쳐야 더 많이 들을 것”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故 성재기씨의 여성가족부 비판,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중심으로 한 여성비하 확산, 소라넷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혐오를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가시화했다는 것이다. 이에 일침을 가했던 건 메갈리아(이하 메갈)였다. 여성혐오를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으로 맞받아친 이들의 미러링은 페미니즘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메갈은 조금씩 비판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메갈이 어떤 페미니즘에 속하는지 그 정의를 내리려 하거나, “보통 페미니즘은 이렇게 주장하는데 메갈은 왜 다르냐”며 지적하기도 했다. 메갈을 지칭하는 ‘한국식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도 대두했다.

비판을 받고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이들은 이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메갈 이외에도 여러 커뮤니티들이 떠올랐고 오프라인에서 활동을 벌이는 단체들도 생겨났다. SNS 안에서 끊임없이 여성혐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통일된 이념을 갖지도 않으며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들이 상상해왔던 주체성에 꼭 들어맞지도 않는다. 그들은 조용히 혹은 거칠게,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면서 페미니즘의 전략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현재 교수는 <여성혐오 그 후>에서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즘 주체들을 ‘비체’(非/卑體, abject)라고 설명한다. ‘규정된 대상이 아닌 것’, 즉 남성이 정해놓은 위치를 벗어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들이다. 이 교수는 여성 비판과 마녀사냥의 역사 또한 비체들이 꾸준히 존재해왔기에 있었다고 보고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과연 여성혐오는 언제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비체’가 성별간의 대립 구도를 종식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투데이신문>은 서울시립대 인문과학연구소 이현재 교수를 만나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비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물 밑에 존재해온 국내 여성혐오

Q. 여성혐오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
흔히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포괄적인 의미의 여성혐오는 ‘남성들이 남성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여성들을 대상화하거나 타자화하면서 혐오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혐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에 공포를 느끼고 더럽다고 여겨 가까이하기 싫은 감정이다. 반면 ‘멸시’는 어떤 대상을 위계적으로 차별하며 무시하면서도 자신의 옆에 계속 두길 원하는 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성혐오가 멸시에 더욱 가깝다고 느낀다.

Q. 여성혐오의 역사는 언제부터였을까.
여성이 대상(對象)이었던 역사다. 여성혐오의 역사가 바로 페미니즘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대부터 여성은 성 상품화됐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낮은 위치에 속해왔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여성도 철인(국가를 이끄는 강력한 군주)이 될 수 있다’고는 했지만 동시에 변덕스러운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냈다. 헤겔도 여성을 ‘극단적이고 불투명하며 거부될 수 없는 개별성의 담지자’라고 표현하며 두려움을 보였다. 또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마녀’의 이미지는 노인이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과학적 지식과 지적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녀사냥은 모두 똑똑한 여자를 두려워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존재, 이성을 벗어난 히스테리 환자로 그려진 여성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Q. 우리나라에서 여성혐오가 대두된 때는 언제인가.
2012년~2013년 SNS 상에 ‘김치녀’, ‘된장녀’ 등의 단어가 등장했다. 학자들이 이를 연구하며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가져왔다. 이후 여성혐오와 관련된 퍼포먼스, 전시회 등이 조금씩 열리다가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지게 됐다.

Q. 여성혐오가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앞서 얘기했듯 여성혐오는 계속 물 밑에 존재했다. 나는 세 가지 현상에서 우리나라에 여성혐오가 두드러졌다고 본다. 먼저 여성혐오라는 단어의 발견이다. 적절한 단어와 인식체계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어떤 현상에 쉽게 이름 붙일 수 있고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신을 인정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첨예한 생존경쟁에 따른 것이다.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전장치는 없는데 경쟁률은 높아져만 가고, 남성들은 이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남성우월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여성들만은 그래도 내 밑에 있다’는 이념을 확실히 하길 원했다고 본다. 세 번째는 도시화와 관련된 SNS의 발달이다. 공식적으로 얘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 상에서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게 됐다. 

강남역부터 역차별까지, 국내 여성혐오 논란

   
▲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후 강남역에 붙은 포스트잇 ⓒ뉴시스

Q. 2015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심신미약을 앓는 한 개인의 범행으로 인정됐다. 이에 대한 생각은.
한편으로는 법적으로 여성혐오와 관련된 처벌이 존재하지 않으니 경찰이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일베를 비롯해 이 시대의 지배적인 이념을 고수하고자 하는 남성들이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 사건으로 여기고 싶지 않아하는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가해자는 분명 “여자에게 무시당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어떤 보편적 원리에서 움직였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마 사회적·제도적으로 불안 상태에 있던 사람이 ‘심지어 여자에게까지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사건이 단순히 고작 한낱 살인사건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적인 분위기와 여성혐오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Q. 최근 정권에 실망한 사람들이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을 ‘여자’라는 이유로 폄하하는 것이 여성비하 발언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SNS에서 싸운 적도 있다. 누군가는 “남자에게 놈 붙이고 여자에게 년 붙였는데 뭐가 다른거냐”, “나쁜 사람한테는 욕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자에게 욕하는 것과 여자에게 욕하는 것은 결코 대칭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장애인인데 큰 잘못을 했다고 치자. 그 대통령에게 누군가가 “병신아”라고 했다면 어떤가. 단순히 ‘어떤 놈’이라고 하는 말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를 더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이슈도 마찬가지다. 여성혐오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드러내기가 힘들다. 남녀 사이 권력의 비대칭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순실 씨와 박 대통령을 여자라는 이유로 욕하는 것에는 사실 ‘단순히 나쁜 사람’에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까지 더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여성비하 발언이라고 규정하게 됐다.

Q. 페미니즘이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 남성, 성소수자 남성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는데.
여성주의는 타자(他者)로서 배제된 여성의 경험에서 시작해 범인류적인 추상에까지 올라간다. 때문에 이론 자체가 타자의 관점일 수밖에 없고 배제당하는 다른 집단, 다시 말해 인종과 성소수자, 장애인 등에 대한 고려가 필히 들어간다. 구체적인 진짜 타자들을 실질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우리나라 페미니즘 안에서 소수자를 배제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일었다. 그 이후론 그들에 대한 고려도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처음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완벽한 생각과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반성도 하며 지금은 ‘소수자 배제는 페미니즘에서 없어야 한다’는 인식까지 도달했다.

Q. 혐오 문제에 있어서 성소수자 논의를 빼놓을 수 없겠다. 성소수자를 보는 남녀 이성애자의 시각은 어떤가.
성소수자 혐오는 혐오라는 감정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먼 고대에는 남성 동성애 문화도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남성은 꼭 종의 재생산에 관련돼야 한다는 생각이 대두됐다. 여기에 남성 동성애 안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여성화’된 사람이 남성의 굳건한 정체성을 깬다는 관념이 더해졌다. 결론적으로 남성들은 게이를 비난의 대상으로 놓고 남성성과 구분 지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봤을 때 게이들이 레즈비언보다 훨씬 더 동성의 헤테로섹슈얼(이성애자) 사이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학자들 사이의 중론이다. 여성들도 레즈비언을 불편해하긴 하지만, 여성들의 여성혐오는 보통 레즈비언보다는 성녀와 구분되는 창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Q.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역차별이라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데.
여성주의는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여성참정권을 외치던 초기 페미니즘의 경우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인간이다’를 외치며 평등과 동등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별의 차이와 관련된 특수한 경험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여성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임신’이라는 경험이다. 앞으로 기술과학이 발달하면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것도 다른 방식으로 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은 남녀 신체의 차이에 기인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역차별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초기 페미니즘처럼 남자와 여자를 완전히 똑같다고 생각해 특수한 대우를 일절 거부하는 것이다. 지하철 내의 임산부 배려석인 핑크카펫이나 여성전용주차장 등과 관련된 논란이 여기에 속한다.

Q. 때로는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구분하기가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성차별은 제도 혹은 권리상의 문제에 포인트를 맞춘 것이다. 예를 들면 유리천장이 있겠다. 여성혐오는 여기에 감정적인 것까지 더해져서 나오는 것이다. 단순히 체계뿐만 아니라 몸에 배인 진정한 감정으로 표출돼 나오는 현상까지를 포함해 여성혐오라고 볼 수 있겠다.

Q. 군 가산점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많은 남성들이 군대 문제에 민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 가산점 제도를 시행할지 여부에 앞서, 먼저 향후 군 복무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모병제를 시행할 경우 여성들이 대거로 군복무에 참여해 군대의 문화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거나 사회복무요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취해 군대보다 사회에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남성성의 변화도 고려하면서 새로운 여성성도 추구할 수 있도록, 군 복무의 패러다임 자체를 어떻게 바꿀지 현실적으로 함께 생각해보면 논의가 더욱 풍부해질 것이라고 본다.

   
▲ 이현재 교수 ⓒ투데이신문 김민수 인턴기자

도시화와 함께 떠오른 우리나라의 비체

Q. 여성혐오를 논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성혐오를 바라보는 시선이 갈릴 것 같다. 어떤 의견이 있나.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 등이 말하는, 여성혐오의 ‘구조’에 주목하는 시각이 있다. ‘여성혐오라는 구조가 얼마나 단단한가’를 보여주는 시선이다. 이들이 말하는 구조에서 남성은 여성을 대상화할 수밖에 없고 여성은 성녀와 창녀를 구분해 자연스럽게 같은 여성을 혐오한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이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상에 맞추기 위해 끝없이 자신이 ‘착한 대상’임을 증명한다. 헌신적이면서 순종적이고 돈은 함께 벌어야 하는 여성. 이 여성들은 너무 착하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다. 이때 이 현실을 깨달은 여성들은 분노한다. 그러나 ‘이렇게 강력한 여성혐오 구조에서 뭘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앞에서 여성들은 방법이 없으니 그냥 착한 대상으로 살거나, 혹은 SNS 상에서 욕을 하며 위안을 얻는다. 구조가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이 관점의 학자들은 어떻게 해야 여성혐오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지 설명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여성혐오 담론이 바로 두 번째 시선, ‘혐오라는 감정에 집중하는’ 시각이다. 감정에 집중하다보면 남성들이 여성들을 왜 그리도 끔찍하게 생각하며 마녀사냥을 할 정도로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바로 여성들이 절대 착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성혐오가 역사에 꾸준히 존재해왔다는 것은, 역으로 남성들이 규정한 바대로 살지 않았던 여성들이 항상 있었음을 증명한다.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상을 벗어나는 여성들이 어느 시대건 있어왔기 때문에 마녀사냥이 있어왔던 것이다. 이 여성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번 책에서 빌려온 개념이 ‘비체’다.

Q. 비체라는 개념은 조금 생소하다. 어떤 뜻인가.
‘object’(주체)라는 단어에 ‘아니다’를 뜻하는 접두사 ‘a-’가 붙은 ‘abject’가 비체다. 한자로 하면 몸 체(體) 앞에 아닐 비(非) 또는 낮을 비(卑)를 붙인다. 대상이 아님, 즉 남성들이 규정해 놓은 존재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 비체는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를 쉽게 넘나들 수 있다. 비체를 보는 사람들은 비체를 더럽다고 여긴다. 콧물, 침 등의 분비물은 몸 안에 있을 땐 경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더럽다고 느끼지 않지만 이 경계를 벗어나 밖으로 나온 순간 더럽고 천한 비체가 된다. 비체는 규정된 대상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혼란스러움을 주고, 경계가 언제 완벽히 뚫려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때로는 가져다준다. 또, 사람들은 자신이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볼 때 공포를 느낀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메두사가 그렇다. 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돌처럼 굳었다는 말은 곧 공포를 뜻한다. 혐오는 공포와 관련돼 있다. 남성들은 비체들에게서 공포를 느끼고 이는 혐오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비체는 경계를 쉽게 넘나드는 존재이며 남성들의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나는 오늘날 도시화와 함께 우리나라에 비체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많이 등장했고, 사람들이 더욱 이 비체들에 주목하고 있다고 본다.

   
▲ 위쪽부터 메갈리아, 워마드, 레디즘, 강남역 10번 출구,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각 사이트 및 다음카페,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Q. 비체들은 어디에서 활동하는가. 그리고 비체 사이에서 갈등은 없는지.
처음 우리나라에 메갈이 등장해 사람들의 이목을 여성혐오라는 주제에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다 사이트를 옮기는 과정을 거치며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분산됐고 몇몇 사람들은 성향에 따라 ‘워마드’, ‘레디즘’ 등의 커뮤니티로 옮겨가기도 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등 오프라인에서도 활동하는 집단도 생겼다. 그런 활동을 책으로 펴내는 단체들도 생겼다. 또 다른 비체들은 SNS 안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이렇듯 비체들은 계속 분화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비체들이 서로의 활동에 완벽히 공감하지는 않는다. 지난달 14일 페이스북 페이지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관리자는 ‘광화문 민중총궐기 집회에 여성이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한 바 있고(성범죄, 여성비하 발언이 난무하는 집회에 여성이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 워마드 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이기 때문에 비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나는 모든 비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본다. 비체들은 이제 겨우 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뿐이고, 이 소리가 사회적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페미니즘으로 발전한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속도나 입장이 다를 수 있고 서로 이해하기 힘든 급진적 타자가 나올 수 있다.

Q. 앞서 얘기했던 여성혐오를 보는 시각의 차이는 우리나라에도 존재하는가.
SNS 상에서 활동하는 비체들이 앞서 얘기했던 여성혐오 ‘구조’를 강조하는 시선에 묻혀 있다고 본다. 마르크스가 모든 것을 경제원리로 설명했던 것처럼 SNS 상의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을 여성혐오 구조로 설명하려 한다. 구조가 너무 단단하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 어떤 행위도 부질없게 느낀다. 분노의 말들을 SNS 상에서 함께 공유하며 위로받을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이 세계를 바꿀 수 있을 만한 적극적인 행위는 이들에게 어려울 것이다. 현재 어려운 시국과 관련해 광화문에서 여러 번 집회가 열렸다. 이들 눈에는 집회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하는지만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혐오의 감정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집회를 보면 비체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지난 10월 이재명 성남시장이 촛불집회 현장에서 최순실 씨를 ‘저잣거리 아녀자’로 표현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고, 이 시장은 이에 대해 사과했다. 변화가 생긴 것이다. 자유발언대에서도 사회자가 ‘여성비하발언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여성혐오의 구조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고작’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감정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를 ‘변화’로 여기는 것이다. 후자에 주목하면 앞으로의 페미니즘 운동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관점 변화가 필요할 때다.

Q. 메갈은 일베의 말투를 따라하며 소위 ‘미러링’을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메갈이 진정한 의견을 내기보다 미러링이 가져다주는 쾌감에만 치중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우선 그들끼리 모여서 미러링을 하며 ‘노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장이 되니 이런 사이트도 하나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미러링이 사회적으로 비판받고 있다. 이에 대해 법정 싸움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미러링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없기 때문에 법의 도마 위에 미러링이 놓이면 그저 남성혐오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일종의 예술행위처럼 미러링이 퍼포먼스라는 걸 보여주는 이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거리에서 옷을 벗었다고 치자. 갑자기 길에서 어떤 사람이 나체로 서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여기겠지만, 그 사람이 “이건 포르노가 아니라 예술이다”라고 말하면 이건 예술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들의 미러링이 일베의 패러디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남성들이 하는 말투를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여성들도 사실은 남성들과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이 패러디에서 핵심은, 미러링을 하는 사람이 여성성과 남성성을 끊임없이 오가는 존재라는 걸 충분히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에서도 점수를 매겨 아름다운 예술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눈다. 메갈이나 워마드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김연아의 10점짜리 예술연기만 할 수는 없다. 미러링 안에서도 훌륭한 패러디가 있고, 패러디라는 단어로 변(變)해주기 힘든 미러링도 있을 수 있다.

Q.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메갈 측에서 ‘여자라서 죽었습니다’라는 글귀를 남겨 SNS 상에서는 메갈이 성별을 편가르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는데.
먼저, 처음 성별을 이분화한 건 메갈이 아니라 사회였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가 먼저 남녀를 구분 짓고 여성들에게 비하 발언을 하며 모멸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에 메갈 또한 ‘여자라서 죽었구나’ 하고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분명한 건,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이분법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비체의 개념을 빌려온 이유도 이분법적인 색채를 지우기 위해서였다. 사실 남녀도 남성과 여성이 아닌 남성‘들’과 여성‘들’이다. 인간을 남성과 여성, 단 두 가지로 완벽히 나눌 수 없고 개별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분법적인 구도 자체에서 현명하게 벗어날 것인지 다함께 논의해야 한다. 나는 비체가 바로 이런 이분법적인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특히 비체가 페미니스트일 경우 이 지점을 향해 더욱 효과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 #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관련 트윗 캡처

Q. 메갈을 계기로 ‘한국식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탄생했다. 이에 대한 생각은.
한국식 페미니즘이 생긴 건 당연하다. 처음 메갈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메갈의 페미니즘을 놓고 ‘급진적 페미니즘’ 혹은 평등을 중요시하는 ‘초기 페미니즘’ 등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으로도 (국내 페미니즘은) 매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여성혐오 현상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들 나름의 페미니즘도 끝없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정보기술을 비롯해 SNS가 많이 발달했기에 사회 문제들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올해 트위터 상에서는 예술계 내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예술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현 시국과 관련돼 있는 광화문 집회 내에서의 여성비하발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맥락에 맞는 ‘한국식 페미니즘’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때 국내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에서 기존의 이론들을 참조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페미니즘과 똑같다든지 어딘가에 속한다든지 하는 시각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여성혐오 종식, 필요한 건 동정 아닌 공감

Q. 여성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서로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할 비체들 사이에서도 입장이나 의견이 무척 다양하다. 비체들이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과 정도는 모두 다르다. 어떤 쪽은 과도하게 성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비체임을 보여주는 작전을 펴지만, 어떤 쪽은 성적 대상화를 무조건 싫어하며 절제를 강조하기도 한다. 이 둘은 감정적으로 맞지 않다. 또, 살림의료협동조합같은 경우 기존의 여성성을 재조명하는 가운데 병원이라는 기업윤리에 적용시켜서 운영하고 있다. 일종의 경계 넘기다. 숙명여대에서는 교내 축제에서 ‘보지 좀 보지’ 행사를 열어 대상화된 남성들의 시선이 아닌,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직접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차피 페미니즘‘들’을 갖게 될 거다. 하나로 뭉칠 수 없다면 비체들이 이슈에 따라 의견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성폭력이나 낙태죄 폐지 등의 이슈들에 많은 비체들이 뭉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Q. 비체들에 의해 우리나라 젠더 질서가 바뀔 수 있을까.
사회적·문화적 조건 자체가 비체들의 탄생을 부추기고 있고 이는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확산될 것이다. 그러나 지배 이데올로기는 위계적 젠더, 그러니까 남성우월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비체들의 ‘경계 넘기’가 더 활성화되고 두드러지면 이러한 지배적 젠더 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여성들의 성 상품화를 나쁜 쪽으로만 보지 않는다. 특히 그렇게 상품화된 연예인들이 정치색을 띠는 것을 무척 고무적인 현상으로 본다. 이효리를 사랑하고 김연아를 좋아한다. 어떤 식으로든 상품화됐지만 그 사람은 100퍼센트 상품화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경계 넘기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사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지난달 미스코리아 왕현씨가 집회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도할 당시 언론들은 하나같이 ‘그 와중에 빛나는 미모’라는 제목을 썼다. 만약 그들이 제목을 ‘진짜 미모는 이런 것’이라고 지었다면 어땠을까. ‘미모’라는 단어의 정의가 바뀌는 것이다. 이것도 경계 넘기다. 얼마 전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도 비슷하다. 걸그룹 안에서 자신의 몸을 전형적으로 대상화해왔던 가수 나다는 이 프로그램에서 ‘더 이상 착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유명인들의 경계 넘기가 더욱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Q. 비체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모장제’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냈던 김숙씨와 박나래씨는 최근의 움직임을 웃음 코드로 승화시켰다는 데서 중요하다. 무조건 화만 내면 사람들이 튕겨나가기 때문이다. 비체와 관련된 강연을 할 때 참석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50퍼센트는 비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반쯤 공감하고 있고, 더 공감하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너는 왜 반밖에 못하냐”고 화냈더니 오히려 반발심이 생기는 경우가 많더라. 이제는 말하기 전략을 바꿔야 한다. 최근 광화문 집회에서 어떤 남성들이 페미존(페미니스트들이 모여 만든 자유발언대)을 보며 “여자들이 기특하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그곳에 있던 여성들의 화를 자아냈다고 한다. 만약 그때 “아저씨도 기특하다”고 맞받아쳤다면 어땠을까. 남성들에게 좀 더 페미존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여지를 남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올 수 있는 여지를 넓혀가는 게 지금 고민해야 할 전략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예술가들이 패러디 작업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SNS 상에서 대두됐던 예술계 내 성폭력도, 법정에 올랐을 때는 성폭력이라고 단정짓기 애매할 때가 많다. 이때 피해자들이 이 분노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도 많이 일어나면 좋을 거라고 본다. 옆에서 함께 공감하고 떠들 사람이 늘면 그들도 위안을 얻고 본인도 주체로서의 예술 행위를 발휘할 수 있을 거다. 또 이것이 확산되면 성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적 정서도 유연해지지 않을까 한다.

Q. 진심으로 비체의 말에 공감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사실 윤리적인 요청이라 선뜻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방향은 제시해야 할 것 같아 이번 책에서 ‘동정’과 ‘공감’을 구분했다. 물론 동정은 도덕적으로 중요한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복지가 문제로 제기됐을 때 이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동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여성 문제에서는 이 감정이 한계를 갖는다. 동정은 ‘내가 우월한 위치에 있고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여성 문제에 대해 호의적인 행보를 보이다, 결정적으로 여성들이 자기와 동등한 위치에 오를 때는 모든 걸 철회하는 사례들을 많이 봤다. 일례로 정교수와 계약 교수 문제를 들 수 있겠다. 동정이라는 감정이 갖는 한계다. 여성혐오 극복을 위해서는 진정으로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감이라는 감정은 어떤 사람과 동화되는 것도 불쌍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른 비체가 어떻게 경계를 넘나드는지 비록 동의하지 않더라도, 함께 얘기해보고 불만이 있다면 싸우기도 하면서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 이현재 교수 ⓒ투데이신문 김민수 인턴기자

목소리 낸다면 시국이 소용돌이치는 지금

Q. 본인은 비체인지.
비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사실 원하건 원치 않건 나는 이미 비체일 것이다. 강단에서는 때때로 남자보다 더 남자같은 목소리로 강연을 한다.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이다. 게다가 주류가 아닌, 어떻게 보면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철학을 하고 있다. 이미 비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Q. 우리나라는 현재 페미니즘에 있어 과도기라고 볼 수 있겠다.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얼마 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걸 보며 혐오와 관련해 미국이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님을 느꼈다. 문화적 변화에 있어 선진국인 미국의 사례를 많이 볼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이제는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의 맥락에 맞는 한국식 페미니즘이 형성됐고, 이를 위해 기존 이론들과 우리의 옛것을 참조해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지금은 어지러운 시국이라는 이름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 과정이 계속돼야 하고 이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도 필요하다. 나는 희망적인 사람이다. 오래 걸리겠지만 분명히, 부분적으로라도 기존의 위계적인 젠더 질서와는 다른 체계가 올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권력이 불안정할 때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이 이미 응집된 후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와 비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지금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묻힐 거다. 사람들이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듣게 하려면, 권력이 소용돌이치는 지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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