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지난 주 꽁꽁 숨겨왔던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공개됐다. 편찬을 책임졌던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이념편향’ 없이 구성된 훌륭한 교과서라고 자화자찬하는 모양이지만, 예상했던 대로 공개하자마자 말이 많다. 그런데 작년에 국정교과서 집필에 들어갈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 같다. 그때는 찬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방송에서 벌인 토론만 해도 활발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언론에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주장을 보기가 힘들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하긴 통치자의 지위를 업고 이를 추진했던 대통령이, 나라 운영 엉망으로 했다고 탄핵까지 몰린 상황이니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정당성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결국 이렇게밖에 안 될 일을 가지고 평지풍파를 일으킨 이유를 따져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자. 무엇 때문에 한국사만큼은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야한다고 했던가. 명분은 간단했다. 역사학계를 종북좌파가 장악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좌편향된 역사를 가르치는 사태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랬으니 새로 나온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원칙적으로 ‘이념편향성’이 없어야 한다. 과연 그렇게 인정받을까. 지금 공개된 국정교과서 검토본을 보고 ‘친일‧독재미화’ 얘기가 나오는 점을 보면, 국사편찬위원회의 자화자찬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물론 국사편찬위원회나 집필진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른바 ‘뉴라이트’라고 분류되던 사람들 위주로 구성된 필진이, 이념 편향 없는 교과서를 써낼 수 있겠냐고 우려하던 데 비해서는 신중을 기한 흔적이 뚜렷한 것 같기는 하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가 다른 데에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집필진의 과격한 서술을 국사편찬위원회 직원들이 뜯어고쳐 파문이 적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는 이념편향을 줄이려는 노력이라 보아줄 수도 있겠다. 이 과정 자체는 법적‧도의적 문제가 따르겠지만, 어쨌건 이념편향 자체는 많이 줄인 셈이니까. 그러니 이렇게 신중하게 썼는데도 우편향을 넘어 친일‧독재미화로까지 몰아대는 현실이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좀 뒤집어 생각해보자. ‘좌편향’이라고 몰렸던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에는 노골적으로 북한이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이 있었던가. 그렇게까지 볼 내용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제법 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권희영 교수를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검인정 교과서 전체를 좌편향으로 몰아갔다. 심지어 국정교과서 자체는 반대했다는 현재의 국무총리 내정자까지 ‘노골적인 찬양 없어도 북한이나 좌익 입장 길게 늘어놓은 것 자체가 편향’이라 했다. 바로 이런 태도가 한국사 과목을 국정교과서 체제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됐다.

하지만 바로 이런 잣대를 현재의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대보자. 가장 논란이 되는 근현대사 중에서도 박정희 관련 내용을 이런 기준에서 보자면 단연 압권이다. 현대사의 20%가 박정희 시대 관련 내용이라니, ‘현대사를 박정희 위인전으로 채워놓았다’는 비아냥이 이상할 것 없겠다. 그러니 양적으로 비중을 크게 두는 것 자체가 편향이라면 이것도 편향이 돼야 한다. 더욱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근혜 현 대통령의 아버지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공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박정희라는 인물이 한국 현대사에서 워낙 중요한 인물이라 그렇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대한민국의 영토로 간주되는 북한의 역사를 다룬 것이나, 독립운동이나 현대사 주요 사건에 관련된 사회주의자들에 신경 좀 써서 다룬 내용은 왜 좌편향이 되어야 하나. 나름대로 비중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내용 조금 다루었다고 ‘좌편향’ 소리 들은 검인정 교과서 필진들은 억울하지 않을까.

이런 측면 보면 편향성을 빌미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체제로 바꾼 발상은 뭐가 될까.‘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전형적인 이중갓대 아닌가. 사실 지금 내놓은 한국사 국정교과서 검토본이 큰 편향성이 없다고 하면, 이전의 검인정 교과서 편향성도 이것보다 더 문제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평지풍파가 일어나야 했을까.

하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핵심 인물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부터 그랬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엘시티 사건’을 두고는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해놓고, 정작 자신은 자기가 임명한 총장 휘하의 검찰이 불공정하다며 조사조차 못 받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심성을 가지고 계신다. 이런 분이시니 ‘우리 아버지 비중 높은 것은 편향성 없는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이념에 대해 써놓은 것은 편향’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교과서가 대통령 취향에만 맞으면 되는 거였던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 다음 세대에게 ‘현실의 거울’ 역할을 해야 할 역사 가르칠 교과서 두고 해괴한 장난 친 현상을 뭐라고 해야 하나. 결국 권력 잡은 소수의 취향에 맞춰주자고 멀쩡한 교과서를 가지고 생트집 잡아 평지풍파 일으킨 꼴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교과서 쓰자고 집필자들에게만 검인정 교과서 집필료의 8배를 지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자금은 출판사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에서 지불된 자금이다. 이런 사태를 보고 있자면, 지금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본질적 문제도 달리 보아야 할 것 같다. 역사를 두고 시비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이, 사실에 대한 관점 차이가 아니라 권력 잡은 쪽에 유리한 사고방식을 강요할 수 있는 풍조 만들자는 데에 있다는 점 말이다. 이런 일 벌이자고 국민 혈세 마구 쏟아 부어도 별 문제가 없다는 교훈이 남으면, 앞으로 우리 미래도 암울해질 것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