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결정됐다. 수백만 단위의 국민들이 모여 박근혜 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결과이니 당연하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는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4-5% 선까지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국민 대다수의 의견과 달리, 소신껏(?) 대통령을 지지 내지 동정하는 인사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나 최경환 의원 같은 사람이야 원래부터 이런 입장을 보여 왔으나, 최근에는 말을 조심하던 홍준표 경남지사를 비롯해 언론 패널이나 유명 가수, 작가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를 보인다. 그래서 이들의 주장이 나름대로 눈길을 끄는 것 같다. 홍준표 지사는 ‘대통령이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국민들이 대통령을 심하게 몰아간다는 취지의 글을 SNS에 올린 바 있다. <TV조선>에 출연했던 오정근 패널은 ‘대통령이 물러나지 말고 나라의 안정을 위해 좀 더 봉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발언을 좀 더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유명 가수나 작가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던 촛불집회가 북한의 조종에 놀아난 것처럼 시사하는 말을 퍼뜨렸다. 그밖에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SNS에 올라오는 일부 일반인의 글도, 이전에 비해 훨씬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이를 두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소신껏 자기 생각을 밝힌 것이고, 관점을 차이를 용납해야 한다며 못할 짓이라고 몰아갈 것은 없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넘어갈 문제는 아닌 듯하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문제는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해도 그만’이라는 식의 형이상학적 토론으로 해결할 성격이 아니다. 엄청난 사회적 충격을 각오하고, 합법적인 선거로 뽑아놓은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할 이유를 따지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 결정에 영향 미칠 얘기를 관점 차이랍시고 아무 말이나 뱉어내는 행각이 용납될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욱이 대통령을 비호하는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생각 없는 변덕쟁이’라서 언론에서 과장해 만들어낸 풍문만 믿고 나라 운영에 타격 줄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즉 수백만 단위로 몰려나온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졸지에 ‘몰지각한 사람들이 벌인 철없는 행각’에 동참한 꼴이 되어 버리는 셈이다.

이런 주장대로 대한민국 국민이 스스로의 사회에 충격 줄 행위를 아무 생각 없이 저질렀다고 보아 줄만한 측면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렇게 보아주자면, 대통령이 멀쩡한 공조직 놔두고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한 개인에게 나라 운영 일부를 맡기다시피한 행각도 별 일 아니라고 여겨야 한다. 더욱이 그 당사자인 최순실 일당은 이 과정에서, 밝혀진 것만 수백억에 이를 정도의 비리를 저질렀다. 박태환 같이 대한민국 국위선양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 선수에게, 자기 비위에 맞지 않게 굴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올릴 수 있는 올림픽 출전을 막는 횡포까지 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만일 사실이라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린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음 같은 증거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 손으로 수장을 임명하며 장악하고 있던 검찰의 수사에서도 밝혀졌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 자신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나오셨던가?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제3자 뇌물죄’의 취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밑도 끝도 없이 ‘나는 한 푼도 받은 적 없으니’ 억울하시단다. 이 뿐인가? 대한민국 검찰이 피의자로 규정하면, 아무리 억울해도 일단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다. 그런데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단순히 ‘검찰이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조사를 거부하셨다. 그것도 국민들은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아야 하는데,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찾아 뵙고 조사하겠다’는 대면조사까지 못하시겠단다.

이것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 자신은 미천한 보통 국민과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밝힌 셈이다. 이런 대통령을 모시고 있으니, 기자들에게 ‘민중은 개·돼지’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공직자가 나왔던 현실도 이상할 것 없겠다. 이래도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뭘 모르고 철없는 행각을 벌인다고 봐야 할까?

이런 꼴을 보고도 탄핵해서 안 된다는 이유 몇 가지는 걸작이다. 그 중에서도 얼마 전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행사에서 있었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윤창중의 연설이 압권인 것 같다. 그는 연설 중에 ‘어떻게 대통령을 대면조사 한번 하지 않고 몰아가 탄핵까지 받게 하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자기 손으로 임명한 검찰총장 휘하의 검찰이 불공정하다며 대면조사를 거부한 장본인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 아니었던가? 게다가 ‘검찰 조사를 성실하게 받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며칠 만에 뒤집은 행각이다. 그런데도 이런 논리를 방송에까지 나올 연설에서 당당하게 하고 있다. 그러니 새벽같이 인턴 여직원 불러 놓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일찍부터 찾아와서 호통을 쳤다’며 뒤집어 씌웠던 파렴치한 성추행 미수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방법이 없겠다.

이런 행각을 홍준표 지사 말대로 ‘죽을죄는 아니다’라고 봐야 할까? 백번 양보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그녀를 비호하는 집단의 주장대로, ‘좋은 의도로 벌인 일인데, 사람을 잘못 믿고 쓰는 바람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해보자. 이게 보통 사람의 문제라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조직의 수장, 그것도 한 나라의 수장에게도 이런 논리를 적용시킬 수 있을까?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흉악한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온갖 횡포 부리도록 비호할 정도로 무능하다면, 국가와 국민은 이 자체로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그런 만큼 국가원수의 책임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없이 대통령 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국민에 대해서는 ‘죽을 죄’다. 이게 바로 수백만의 국민이 촛불시위에 참여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정도는 웬만한 어린아이라도 이해할만할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국회의원·도지사 같은 인물들이 이걸 몰라서 세상에 해괴한 논리를 흘리고 있을까? 이런 사고방식이 단순한 ‘관점 차이’라며 흘려버리고 말 일인가. 이게 죽을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비슷한 상황에서 자기들도 박근혜 대통령처럼 하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필 성추행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로 모면하려다가 공직에서 쫓겨난 사람을, 수많은 사람을 동원한 단체에서 한 말씀 듣자고 불러 제 버릇 개 못주는 식의 뒤집어 씌우기 논리를 되풀이하게 만든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전문가를 자처하며 언론에 나온 패널 중 일부는, 아직도 속도 없이 ‘나라의 기강이 엉망이 되어가는 데도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 한 사람이 그리도 없었냐’고 질타한다. 이들에게는 사태 바로 잡아보겠다고 하다가 쫓겨나고 심지어 자살로까지 몰린 사람들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나보다. 사실 한 나라의 대통령 쯤 된 사람이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 기본을 몰라서 그랬겠나. 더 나아가 ‘모르는 것’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전문가 노릇하고 있겠나.

그러고 보면 웬만한 사람 눈에 뻔히 보이는 파렴치한 행각을 비호하는 이유는 뻔한 것 같다. 사실 수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했던 대통령이 물러나면 앞으로는 진상을 밝히지 못하게 하기 어려워질 테니, 대통령의 퇴진을 막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겠다. 이렇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의 진상까지 ‘관점에 따라’ 별 것 아닌 일로 몰아야, 지금까지 벌여놓은 파렴치한 행각을 묻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도 같은 일을 되풀이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과 생각은 물론 행동까지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박혀 있다는 얘기다.

이는 중요한 점을 시사해준다. 일단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자리에서 물러나기 싫다고 해서, 이미 기울어진 대세 무시하고 일본군이 옥쇄시키는 것처럼 지지자를 죽을 자리로 몰아대는 꼴이 보기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행각에도 쓸 만한 점은 있다. 다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진짜 심각한 피해는 합리적인 척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 칠 때 생기기 십상이다. ‘관점 차이’를 강조하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이보다는 노골적으로 속셈을 드러내 주는 편이 알아보고 대응하기 좋아질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인의 경우 안 뽑아주는 대응 같은 것 말이다. 이렇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지겹게 봐왔던 꼴을 또다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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