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애오라지>

민중가요, 대학생·노동자가 부른 저항 노래
80·90년대 대학가 노래패 생겨나며 황금기

집회·시위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 강해
투쟁·저항 아닌 서민의 삶 노래한 곡도 많아

원하는 사회 만들기 위해 민중가요 계속 불려야
다 함께 소리 내는 것, 민중가요가 살아남는 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요즘 광화문과 서울시청 인근은 토요일만 되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위해 모인 국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엄중한 시국인 만큼 우울하고 무거울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현장은 각종 신나는 노래들이 울려 퍼지며 축제가 따로 없을 정도로 흥겹다. 그 중심에는 바로 민중가요(民衆歌謠)가 있다.

민중가요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학생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많이 불린 민중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즐겨 부를 수 있도록 작사·작곡된 노래를 일컫는다. 민중가요 대부분이 학생운동, 사회운동과 관련돼 투쟁과 저항의 색깔이 짙기도 하지만 서민들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낸 서정적인 곡도 많다.

민중가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이후로 서울대학교 ‘메아리’와 연세대 ‘울림터’, 고려대학교 ‘노래얼’, 이화여자대학교 ‘한소리’ 등 전국 대학가에 수많은 노래패들이 생겨남에 따라 학생운동과 함께 황금기를 보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대학생들의 관심은 사회 참여보다는 취업, 결혼 등 개인의 문제로 옮겨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가 노래패들도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고, 사람들 사이에서 ‘민중가요는 집회나 시위에서나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혔다.

그렇게 우리 주변에서 잊혀만 가던 민중가요가 최근 범국민적 촛불집회가 일어남에 따라 대중가요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 침체기를 맞았던 노래패들도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있다.

   
▲ 성공회대학교 ‘애오라지’ ⓒ투데이신문

지난 5일 <투데이신문>은 서울시 구로구 항동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 중앙노래패 ‘애오라지’의 동아리방을 찾았다. 집회의 아이돌로 불리는 애오라지와 함께 민중가요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순우리말 ‘오로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애오라지는 1991년 창립해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했다. 교내 중앙동아리로서 신입생 환영회와 축제, 정기 공연을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민중가요를 부르는 만큼 주말에는 곳곳에서 열리는 집회에도 종종 참석한다. 현재는 민중가요를 직접 작사·작곡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

애오라지의 모든 부원들이 처음부터 민중가요를 알고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입학 때부터 줄곧 애오라지에 몸담고 있다는 박성호(영어학과·25)씨는 고등학생 시절 힙합동아리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힙합동아리에 가입했었어요. 우연히 민중가요를 듣게 됐고 고등학교 노래패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고3이라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이후 입학하고 나서 애오라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망설임 없이 가입했어요.”

마진욱(신문방송학과·19)씨는 대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민중가요라는 장르 자체를 알지 못했다.

“저는 민중가요라는 장르 자체를 몰랐어요. 신입생 환영회에서 공연을 통해 처음 듣게 됐어요. 원래도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된 거예요.”

애오라지는 서울 수도권 소재 대학의 노래패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활동하고 있다.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기수는 14명, 비활동 기수까지 포함하면 약 40명 정도다. 그만큼 다양한 집회에 참석할 수 있어서인지 애오라지는 집회의 아이돌로 불린다. 새내기 박현석(신문방송학과·19)씨는 공연을 마치고 나면 알아보는 이들이 꽤 많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민중가요를 통해 현장의 사람들과 잘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사진 제공=애오라지>

부회장 정연미(영어학과·20)씨는 세월호 참사 집회에서의 공연을 잊을 수 없다.

“광화문 세월호 집회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어요. 가수 우리나라 선배님들의 ‘화인’이라는 곡을 불렀는데 어머니들이 듣고 우시더라고요. 아마 사고가 아니었더라면 저희와 비슷한 또래였을 자녀분들이 떠올라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성공회대학교에는 애오라지 말고도 본교 교수들로 구성된 ‘더 숲 트리오’라는 특별한 노래패가 있다. 특히 더 숲 트리오의 김창남 교수는 서울대학교 노래패 출신으로 알려졌다. 회장 여현주(사회과학부·21)씨는 교수님들과 따로 교류를 하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를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교수님들하고 별도로 공연을 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진 않아요. 하지만 더 숲 트리오 콘서트를 본 적은 있어요. 교수님들도 저희가 5월 18일이나 4월 16일에 교내에서 게릴라 공연을 하면 ‘오늘은 5월 18일,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린다’, ‘21세기 한복판에서 투쟁가를 듣는다’는 등의 글을 SNS에 올리세요.(웃음)”

사실 민중가요라 함은 집회, 운동권 학생 등 투쟁적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린다. 대체 민중가요란 무엇이며, 왜 사람들은 민중가요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을까.

민중가요는 70~9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노래를 통해 전하면서 탄생했다. 초기에는 정식으로 작사·작곡된 곡이 없어 기존에 있던 노래 멜로디에 가사만 바꿔 부르는 정도였지만 국민들의 민주화 정신이 발전하면서 점차 많은 노래패들이 생겨나기 생겨나면서 다양한 민중가요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박성호씨와 마진욱씨는 예나 지금이나 음악에는 사람을 한 데로 끌어모으는 힘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민중가요는 사회에 저항하는 한 수단으로 쓰였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가장 좋은 건 음악이라고 보거든요. 그런 음악에 같이 싸워서 이겨내자는 의미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고자 하는 뜻에서 민중가요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어요.”

“농사를 지을 때도 노동요를 부르면서 하잖아요. 사회 운동도 마찬가지 같아요.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전달하기에는 음악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 (왼쪽부터) 회장 여현주(사회과학부·21)씨, 박성호(영어학과·25)씨, 부회장 정연미(영어학과·20)씨 ⓒ투데이신문

애오라지 부원들은 굳이 동아리 활동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종종 민중가요를 즐겨 듣는다. 정연미씨와 마진욱씨는 지금 사회 분위기 탓인지 주변 친구들도 민중가요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민중가요라는 장르에 대해 처음 듣고 의아해하는 친구들도 있고 보통은 투쟁가라는 이미지를 많이 떠올려요. 사실 그런 종류의 노래가 많긴 하죠. 하지만 잔잔하게 삶을 표현하는 곡도 많아요. 대체로 그런 노래를 많이 선호하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사회 분위기 탓인지 투쟁가도 좋아합니다.(웃음)”

“지난 11월 12일에 있었던 민중총궐기 전후로 민중가요에 대한 인식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민중가요가 뭐냐고 말하던 친구들도 집회는 다녀왔거든요. 전에는 ‘무슨 이런 노래가 다 있냐’, ‘노래 가사가 너무 자극적이다’라고 말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먼저 나서서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하더라고요.”

애오라지 부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민중가요의 매력은 무엇일까.

박현석씨는 단연 마음을 울리는 진심 어린 가사라고 했다. 마진욱씨와 여현주씨 또한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메시지가 담긴 가사가 가슴을 후벼 판다고 해야 하나. 평소에 즐겨 듣는 대중가요와는 가사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어요.”

“대중가요는 비트가 빠르고 가사가 자극적이지만 민중가요는 그렇지 않아요. 강력한 느낌의 투쟁가도 그 내용 자체는 우리 삶을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내용이거든요. 때문에 민중가요는 그 어떤 노래보다도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민중가요를 듣다 보면 다 제 노래 같아요. 민중가요는 결국 우리의 삶을 노래하는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멜로디도 물론 좋지만 가사가 많이 와 닿아요.”

   
▲ (왼쪽부터) 마진욱(신문방송학과·19)씨, 박현석(신문방송학과·19)씨 ⓒ투데이신문

안타깝게도 요즘 대중들은 예전만큼 민중가요를 즐겨듣지 않을뿐더러 어떤 장르인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길거리를 걷다보면 인기 아이돌의 노래만 들릴 뿐 민중가요는 어디에서도 흘러나오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박성호씨는 이 같은 현상은 민중가요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 자체가 현대사회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에 찌들어있어요. 수익을 벌어들이려면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고 인기를 끌만한 노래를 만들어야겠죠. 그런 노래를 잘 팔기 위해서는 광고를 하고 또다시 수익을 얻고 이런 과정들이 계속 반복돼요. 하지만 민중가요는 기본적으로 돈 없는 사람들이 부르고 음악 속에 그들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에 대중에게 인기를 끌만한 느낌은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민중가요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남기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죠.”

마진욱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다 민중가요를 들어 봤다고 재밌어했다. 단지 그 노래가 민중가요임을 모른다는 것.

“재밌는 현상 중에 하나가 민중가요를 모른다거나 집회에서만 부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한 번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민중가요를 들어 본 적이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안치환 선배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곡은 민중가요라는 장르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다 아는 노래거든요. 또 올해 방영했던 tvN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꽃다지 선배님들의 ‘바위처럼’. 요즘에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 모르게 민중가요를 들어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집회에서 불린다는 고정관념은 언젠가는 깨지리라고 봐요.”

대학생들의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이 점차 줄어듦에 따라 대학가의 많은 노래패들도 사라져갔다. 정연미씨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노래패를 바라보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패 같은 활동들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모든 운동이 그래왔듯이 소수라도 그런 활동을 하고 알리는 사람들이 필요하죠. 그게 바로 노래패고요.“

박성호씨는 언젠가는 민중가요 노래패가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정말 이상적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민중가요 노래패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노래패가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은 더 이상 노래할 사회 문제가 없다는 좋은 현상이잖아요. 그런데 아직은 때가 아닌데 사라지고 있어요. 물론 당장 내일을 걱정하고 살아야 하는 사회 분위기로 여유가 없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안타까워요. 앞으로 점점 사회 문제들이 줄어들면 좋겠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가 원하는 완벽한 사회는 오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민중가요는 계속 불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 <사진 제공=애오라지>

최근 집회에서는 민중가요보다도 대중가요를 개사한 익숙한 노래들이 많이 불린다. 자칫 민중가요가 설 곳이 점점 더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기도 했지만 박성호씨는 민중가요가 좀 더 모던화됨으로써 먼 미래에는 가수 안치환의 곡처럼 대중들이 좋아하면서도 민중가요일 수 있는 노래들이 많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민중가요를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정연미씨는 클래식이나 판소리처럼 민중가요도 교과서에 음악의 한 장르로 소개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클래식은 시대까지 나눠가면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배워요.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음악의 한 장르인 민중가요는 끊임없이 불리는 노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아요.”

여현주씨는 사람들이 다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민중가요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했다.

“결국 민중가요는 우리 얘기를 노래하는 거예요. 지금 시대적으로 보면 당장 내 주변에서 누가 죽어 가는지 보다 한 시간 더 일해서 월세 내고 전기세 내는 게 중요한 상황이 돼버렸어요. 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이끌어 연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민중가요가 사는 길이라고 봐요.”

민중가요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집회가 아닌 노래방에서도 불리는 그날까지 애오라지는 외친다.

‘민중과 하나 됨을 노래하는 애오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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