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지난 12일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최로 ‘1948년 8월15일, 한국현대사 상의 의미와 시사점’이라는 주제의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사실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 문제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국정 역사 교과서 내용 중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에 대해 시비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학술토론회를 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언론에는 점잖게 ‘결과가 매우 좋지 않았다’라고 내보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광복회 같은 경우에는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 주체인 교육부가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하여금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해 ‘대한민국 수립’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계획된 의도”라면서 “토론회를 비공개로 하려고 장소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토론자 구성도 ‘구색맞추기식’”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럴 정도면 성공적인 학술회의라고 할 수는 없겠다.

이를 두고 속도 없이 아쉬움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토론을 시켜도 합의 도출하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막을 좀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반응 자체가 짜증스러울 정도다.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볼 수 없게 돼 있었던 ‘학술회의’에 무슨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는 점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식의 학술회의라는 것은 ‘남의 말을 잘 듣고 나서 제 맘대로 결정하고 싶을 때’ 흔히 써먹는 수법이다. 그리고 우리의 박근혜 대통령께서 즐겨 쓰시는 수법이기도 하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해보자는데, 왜 이렇게 삐딱하게만 보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니 ‘토론을 거친 합의’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밝혀둘 필요가 있겠다. 이를 쉽게 알아보자면 얼마 전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제의를 떠올려 보면 된다.

촛불시위 초반에 퇴진 압박이 들어오자,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국회에서 합의해 총리를 추천하면 그 인물에게 다 맡기고 2선으로 물러나겠다’고 제의했다. 겉으로만 보면, 쿨하게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 같다. 하긴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그러려는 의도였다고 우기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판의 내막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국회에서 합의해 총리를 추천해달라’는 조건 자체만 보아도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조건이지만, 현실에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통령이 행사하는 대권을 맡길 인물을, 정치적 입장이 완전히 다른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서 추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말이 야당이지, 3개로 나뉘어 있는 집단 사이의 합의를 보는 것은 더욱 어렵다.
물론 이 정도라면, 심각한 시국을 의식해서 어떻게든 합의를 해 볼 가능성이라도 보아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작정하고 합의를 틀어놓을 사람들이 가세하면, 결과는 볼 것도 없이 불가능 쪽으로 흐르고 만다. 요즘 모든 사실이 밝혀져가고 있는 와중에도 끝까지 우기고 보겠다는 이른바 ‘친박’의 행태를 보면, 이들이 수십 명 씩 배치되어 있는 국회에서 합의를 보라는 것 자체가 사람 우롱하는 짓이다.

이 정도면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은 ‘번역’을 해서 들어야 한다. 그녀의 어법을 감안해 번역해 보면, ‘어차피 너희들끼리 합의보기도 어렵고 그렇게 놔두지도 않을 테니, 나는 그것 빌미 삼아 대통령 자리에 눌러 앉겠다’가 된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어법이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사람은 이 정도는 번역 할 필요도 없이 바로 알아듣는다. 그래서 이 말이 나온 바로 그 주 토요일부터 촛불 집회에 나서는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던 것이다.

이런 어법을 알고 보면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내세워, 국정 역사 교과서에 들어갈 내용 합의보라며 ‘학술회의’ 개최한 목적도 알아보기가 쉽다. 박근혜 정권이 독선적으로 무리를 감수하며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정권 퇴진 압력과 함께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타성에다, 교육부총리가 청와대에 불려가 한마디 듣고 나온 다음이라 그 입김을 쏘인 교육부에서는 꼼수라도 내지 않을 수 없었겠다.

그나마 학계의 속사정을 알고 보면, ‘국회에서 여당·야당이 합의보라’는 제안이 훨씬 점잖게 보인다. 국회의 합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는 당장 급한 현안에 대해 합의해서 실행하라는 압력을 받다 보면 그래도 중요한 사안을 합의 보게 할 가능성이라도 있으니까.

그러나 학계에서의 합의는 이런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그래서 그 시비를 가져주어야 할 문제라도, 이른바 ‘학계’에 던져 놓으면 고구마에 체해 죽는 고통을 느껴야 한다. 근거도 논리도 없는 말 뱉어내며, 이번 기회에 얼굴이나 팔아보자고 떠드는 꼴은 기본적으로 봐야 할 것이고. 이를 통제하며 결론을 이끌어내야 할 사회자 대부분은 오히려 ‘그래 이번 기회에 얼굴 잘 팔아보라’며 팔짱 끼어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남이 무슨 말 하던지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일방적으로 늘어놓고 끝내 버린다.

이날도 수십 년 째 되풀이 되어 온 장면이 재현됐을 뿐이다. 그래서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학술토론회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역사학계에서는 ‘학술토론은 이렇게 때우는 것’이라는 점이 공인 아닌 공인을 받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을 당국에서, 굳이 비용과 노력을 쏟아 부어 학술회의를 개최한 의도가 뻔하지 않은가.

박근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합의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는데도 처리를 못했으니, 우리가 쓴 그대로 가자’고 나오겠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수법 뻔히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은 우롱하려는 행각은 속이 뒤집힐 노릇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 가증스런 수법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이걸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권을 만났기에 뒤늦게나마 바로 잡을 기회를 잡았다는 점은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래서 세상은 이율배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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