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2016년. 단 1년 사이에 상상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정치사회적 사건이 일어났다.

봄이 오기 전엔 국회에서 역대 최장시간 필리버스터가 있었고, 겨울엔 도심에서 역대 최대 인원이 참여한 시위가 벌어졌다.

오랜 세월 양당체제의 한 축이던 민주당이 당명을 바꾸면서 분당을 공식화 한 게 작년 12월 28일이었는데, 일년 뒤 올 12월 27일엔 또 다른 한 축인 새누리당이 분당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적 갈등을 경제적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인 개성공단을 성급하게 폐쇄해 오히려 외교적 숙제를 남겼다. 피해당사자들이 거부하는 내용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강행했고, 모든 학생들이 단 하나의 사관만을 익히도록 하는 국정교과서가 추진됐다.

전문가들이 사인이 명백하다고 말하는 시위참가자의 주검에 대해 공권력이 사인규명 하겠다며 경찰력을 동원하는 시도가 있었다. 경찰과 유족이 장례식장 앞에서 벌인 희대의 대치는 대통령의 비위 의혹이 분명해지고 나서야 겨우 경찰 철수로 끝이 났는데, 이는 경찰 스스로 정의나 명분과 관계없이 권력의 향방에 맞춰 행동했음을 보여주는 후진적 장면이었다.

고려말 신돈 이후 700년만에 권력 측근이 벌인 최악의 광범위한 국정농단이 있었다. 차라리 신돈은 공민왕에 의해 공식 등용돼 초기엔 개혁정책이라도 폈지, 일반국민들이 존재조차 모르던 장막 뒤의 최순실씨는 제 맘대로 청와대를 드나들며 사욕을 위해 전횡만을 일삼았다.

재계 상위의 대기업들이 얼토당토 않은 정권의 요구에 돈을 갹출했어야 했고, 몇몇 기업은 그 와중에 사업에 유리한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격이 안되는 특정인이 고등학교를 부정졸업해 대학교를 부정입학 했다는 의혹이 결국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저지른 횡포의 일부로 밝혀지며 탄핵정국의 도화선이 됐다. 그 결과 역사상 가장 낮은 지지도인 4%의 기록을 달성한 대통령이 등장했고, 그런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정권의 탄생과 유지에 종북좌파 딱지 붙이기 놀이를 하며 일조한 언론은, 돌아가는 눈치를 보다가 얼른 태도를 바꿔 과거를 세탁하며 책임을 피한다. 이 또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보기 힘든 유례없는 대변신이다. 굵직굵직한 것만 추려도 이렇다. 이 모든 게 불과 일년 사이에 벌어진 현실이다.

하긴 박근혜 정부는 시작부터 이상했다. 대통령 선거는 국가기관 개입 의혹으로 더럽혀 졌다. 대통령 수행원은 멀리 태평양 건너 남의 나라에 가서 성추행 의혹의 당사자가 된다. 정부 출범 후 비선출 권력자가 도대체 몇명이나 되는 건지 만만회니 문고리 삼인방이니 보도에 나오는 이름들을 일일이 외우기도 힘들다.

여객선 사고가 났는데 사태의 실체를 파악하기는 커녕 조사를 방해하고 유족을 불순분자로 몰았다. 제 할 일 열심히 하는 문화예술 종사자들을 반정부적 인물로 특정해 블랙리스트화 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전부 쓰자면 분량이 얼마나 될지 몰라 다 쓸 수가 없다. 언뜻 보면 이번 정권 특유의 성격이 이 모든 일들을 만들어낸 것 같아서, 대통령을 갈아 치우면 문제가 해결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건들의 핵심엔 권력과 자본이 얽히고 설킨 우리 사회에 대한 자화상이 담겨 있다. 모든 사건의 기저엔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라는 고민이 깔려 있고, 그것은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와 필연적으로 이어져 있다. 이 물음을 가지고 사는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하고 정당에게 집권의 기회를 주므로써 답을 만든다.

이는 지난 20세기 IMF 사태 이후 새롭게 변화한 경제질서와 민주주의의 동행을 우리 손으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 동안 어느 진영에서 어떤 대통령을 만들어 냈든, 성공이나 실패라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그래서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자신이다. 반성 없는 질주의 끝이 박근혜 정부의 탄생이고 현재다.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 온 지난 오랜 시간 동안의 부조리들이 일시에 터진 점에서, 올 한 해의 온갖 풍파들은 가히 전환적 국면의 신호라 할 만하다. 시대의 요구가 새로운 페이지를 열기 위해 2016년이라는 한 곳으로 분출된 것이라 봐야 한다.

지금 역사는 우리더러 변화하라고 말한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지점을 동시에 손보라고 명령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 중인 특검이 전방위적으로 광폭 행보를 보일 수 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열거한 사건들을 바로 잡으려면 사법제도의 건강을 위해 검찰을 개혁해야 하고, 민의를 소중히 하는 정치가 되도록 선거제도를 비롯한 정치제도도 손봐야 하며, 시민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 하는 언론풍토를 어떻게 개선시켜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폭으로도 깊이로도 여러 곳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씩 선별하여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대통령제를 바꾸면 해결 될거라거나, 개헌을 하면 된다거나, 정권만 바뀌면 된다는 식의 접근은 한방에 모든 것들이 바뀔 거라는 기대의 다른 모습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지점들은 어느 한 고리를 끊으면 나머지가 다 풀리는 사슬로 연결돼 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하나의 섬유들이 꼬이고 또 꼬여서 서로 엮여진 관계 속에서 산다.

때문에 현실의 부조리들을 개선하기 위해선 다양한 곳을 동시에 다초점 렌즈로 들여다보는 개혁의 안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다초점 개혁을 해야 한다. 그 첫번째 작업으로는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는 것이 돼야겠다. 2017년엔 부디 나부터 먼저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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