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요즘에는 제일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뉴스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매일 같이 막장 드라마에서도 보기 어려운 사실들이 터지니 당연하겠다.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모처럼 휴식을 즐기던 일요일 오후에도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며 뉴스 프로그램을 즐겼다. 그러다 우연히 TV조선의 ‘이봉규의 정치 옥타곤’이라는 프로그램에 채널이 고정됐다. 평소 즐겨 보던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그동안 보기 어려운 장면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앞장서고 있는 서경석 목사의 출연이었다. 그동안 대부분 언론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비판적인 보도를 주로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대통령을 비호하는 측의 입장에 대한 언급을 꺼려왔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안에서 밝혀지는 사실이나 이에 대응하는 대통령의 태도가 워낙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 여론이 좋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일 수 있겠다. 그러다가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의 입장을 말하게 하는 용기(?)를 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수의 횡포에 묻혀가는 소수 의견을 조명해주는 용기에 해당할 지 의문이다. 더 나아가 서경석 목사의 언행이 탄핵을 막는데 도움이 될 런지조차도 의심스럽다. 그래서 보수적인 색깔이 짙던 종합편성 채널들에서도, 서경석 목사 같은 사람의 출연을 꺼렸던 것이겠다.

그럴 만큼 요즘에는 X맨 시리즈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꽤 오래전에 인기를 끌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래된 X맨이란, 열심히 우리편에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적질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X맨이 다시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지러운 현 시국에서 이렇게 X맨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서경석 목사 역시 이런 역할을 하는 듯하다.

우선 이런 부류의 주특기인 ‘편가르기’ 자체가 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자초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새누리당 내분 사태를 언급하면서 쏟아냈던 말부터가 그렇다. 그는 ‘우파적 시각’을 운운하면서 ‘우파의 대표 역할을 해야 할 새누리당에서 인명진 같은 사람이 우파의 대표적 인물들을 비난하고 나가라 하는 것을 실책’이라는 식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파 집단 붕괴시켜 좌파 세상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논리를 편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이미 새누리당을 나간 사람들이나, 지금 당의 핵심 인물들에게 나가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좌파’가 되어야 하나? 사실 이미 새누리당을 떠났거나, 남아서 갈등을 빚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수·우파의 동지 아니었던가? 동지였던 이들이 왜 떠났거나 갈등을 빚고 있을까?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저질렀던 일들이, 도저히 비호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 아니던가?

뒤집어 말하면, 도저히 비호할 가치가 없을 것 같은 대통령을 비호해보겠다고 악을 쓰는 사람들이 당의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동지들까지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서경석 목사의 논리대로라면 바로 새누리당에서 기득권 놓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이 ‘우파’라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 지금 대한민국의 우파란 ‘대통령의 비리를 비호하는 집단’이 되는 셈이다. 우파가 이런 집단에 불과하다면, 반대로 대통령의 비리를 비판하면 모두 좌파가 돼 버린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을 ‘좌파세상’으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들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다. 자기만이 바른 역사 교과서 쓰려 한다면서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좌파세상’으로 몰아버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권희영 교수와 별로 다를 것 없는 논리다. 자기들 빼놓은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를 좌파로 몰아대는 것이, 좌파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인 셈이다. 차라리 ‘우리가 해먹는 것 방해하면 좌파’라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하긴 서경석 목사는 촛불집회에서 ‘이석기 석방’ 외치는 것을 보니 좌파 세상 만들자는 얘기고, 그렇게 되면 기독교를 믿을 종교의 자유까지 없어질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수도 없이 지적해왔다. ‘이석기 석방’은 촛불집회 참여자 전체의 의견이 아니다. 광화문에 한번밖에 못 나가본 필자부터도, 이게 참가자 중 소수의 주장에 불과하다는 점을 느낀다. 이런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도 뻔하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집회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주장하는 집단 있다고 일일이 따지며 분위기 깰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목사라는 사람이, 이를 빌미로 없는 말을 만들어가는 행각은 자질을 의심하게 한다. 도대체 촛불집회에서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얘기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결국 서경석 목사는 있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가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그는 기독교계를 끌고 들어갔다. 태극기 세력이 촛불 세력을 압도하고 있다며, 그 이유가 기독교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란다. 하긴 대통령 변호인이라는 사람을 비롯해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 여럿이 기독교인 티를 내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게 과연 대한민국 기독교계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목사라는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파렴치하게 있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내며 교인들의 선동하는 꼴을 보면서 제정신 있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도대체 예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기에, 기독교 팔아먹는 목사가 저런 짓을 하느냐’는 손가락질이 안 나올 것 같나? 덕분에 기독교에 정 떨어지는 사람까지 나올 것이다. 이게 기독교를 포교해야 할 목사라는 사람이 방송에서 벌인 일이다. 이제 기독교인들도 부담스러워 질 판이다. 서경석 목사는 기독교인들을 자신과 한통속으로 몰았다. 이런 말이 방송에 나왔음에도 기독교계가 가만히 있는다면 ‘침묵으로 동의를 표시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곤란해지기는 이런 사람의 말을 내보낸 TV조선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진행자는 이런 말들이 나오자 당황하며 진정시키려 했던 것 같으나, 서경석 목사는 그런 노력 자체를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내가 할 말 다 하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부르지 않았느냐’는 서경석 목사의 말이 방송에 그대로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러니 ‘제작진이 어렵게 모셔서 이런 말을 국민들에게 하도록 만들었다’고 밝힌 꼴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진행자도 ‘좋은 말씀 감사하다’는 식의 말을 몇 번씩 했으니, 제작진도 이런 의견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애를 쓴 공범자가 된 셈이다. 아직은 TV조선도 박근혜 대통령의 행각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다가 ‘보수 언론 민낯이 드러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부담스러울 시점일 텐데, 왜 이런 사람 주장을 여과 없이 방송에 내보냈는지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