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필름, 사진, 그리고 기자의 길
[칼럼] 필름, 사진, 그리고 기자의 길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1.12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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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번 칼럼은 필름의 역사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개인적으로 한 때 사진 촬영에 취미를 붙인 적이 있었다. 종교사 전공이라 그런지 자료 획득을 위해서 사진 촬영은 필수였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진 촬영에 취미도 붙이게 됐다. 그에 따라 비싼 돈을 들여서 자연스럽게 카메라와 렌즈를 구입하게 됐고, 이런 저런 조작을 통해서 더 좋은 품질의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다.

사진 촬영에 취미를 붙이고, 장비를 구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소위 ‘장비병’에 걸리게 됐다. 한 때는 매일 온라인 쇼핑몰을 들락거리면서 렌즈와 카메라 본체의 가격 동향에 주목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카메라 관련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어느 날 한 때 필름 회사로 유명했던 “코닥(Kodak)”이라는 회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EKTACHROME is back.’, 즉 ‘엑타크롬이 돌아왔다!’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코닥 측의 설명에 따르면 엑타크롬은 좋은 화소, 깨끗한 화질, 큰 범위의 콘트라스트와 톤을 갖춘 영화 필름이라고 설명했다. 이 글을 보니 나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코다크롬(kodachrome)”이라는 필름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코다크롬은 코닥에서 생산했던 대표적인 카메라 필름이었다. 1935년에 처음 개발돼서 2009년 6월 22일에 단종이 발표될 때가지 코다크롬은 코닥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필름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필름이었다. 『한겨레』 2010년 3월 3일자 조경국 기자의 기고에 따르면,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 저격 장면이 담긴 동영상도 바로 코다크롬으로 촬영된 것이고, 20세기 가장 유명한 인물 사진으로 알려진 사진가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1985년 6월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사진으로 실린 ‘아프간 소녀’ 샤르밧 굴라)도 코다크롬으로 찍었다.”고 한다. 특히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표지 사진은 샤르밧 굴라의 파란 눈동자의 색이 잘 드러난 최고의 사진 중 하나였다. 이 필름이 오죽 유명하면 “사이먼 앤 가펑클”로 유명한 폴 사이먼의 히트곡 가운데 “kodachrome”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을까?

필자가 엑타크롬이 돌아왔다는 기사를 보면서 코다크롬이 생각났고, 코다크롬을 생각하면서 코다크롬으로 찍은 여러 사진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20세기의 유명한 사진 가운데 “독수리와 소녀”라는 사진으로 옮겨갔다. 이 사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진작가인 케빈 카터가 1993년 기아에 허덕이던 수단에서 찍은 것으로, 한 어린 소녀가 식량배급소에 식량을 받으러 가다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엎드려 울고, 뒤에서는 독수리 한 마리가 그 소녀가 숨을 거두기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많은 분들이 알듯이, 아프리카의 독수리 가운데 시체를 먹는 독수리들이 있다.) 『세계일보』 2016년 4월 13일자 박희준 논설위원의 글에 따르면,

카터는 결정적인 순간을 찍기 위해 20여분 간이나 독수리의 날갯짓을 기다렸으며, 사진은 1993년 3월26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리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리고 카터는 이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소녀를 구하지 않은 채 촬영에 열중했다는 비난도 함께 받았다. 그는 퓰리처상을 받은 지 석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물론 그가 수단 소녀 때문에 자살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래도 이 사진은 국제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라고 한다. 이 기사를 보충하자면, 카터는 자살하기 전 그의 유서에서 가난에 따른 고통, 현장 취재에 따른 스트레스, 그리고 남아공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폭력 현장을 취재하다가 살해당한 친구 켄의 곁으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면서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진은 “진실의 임무 VS 인간의 윤리”라는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카터의 유서를 봤을 때, 카터는 사진 촬영 후 그 소녀를 구해서 구호소로 데려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비난에 민감하게 반응했을텐데, 그는 다른 이유로 자살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의 종착점은 최근 덴마크에서 정유라씨가 구속된 것이었다. 최근 JTBC가 덴마크에서 취재의 대상이었던 정유라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이것으로 인해 기자로서의 임무를 다 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한 인터넷 기고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 답을 대신하려고 한다.

그를 찾아낸 것은 취재진의 개가입니다. 하지만 취재를 거부하고 은신해 있을 때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신병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보도하되 개입하지 말라”면서 신고를 하려면 취재하지를 말아야 한다는 ‘윤리’는 솔직히 배운 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딴지일보』 산하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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