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자란 무엇인가> 저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안경환 명예교수

   
▲ 안경환 명예교수 ⓒ투데이신문

전형적 남성형 미덕, 더 이상 분쟁해결에 도움 안돼
권위와 허세·불완전하고 나약한 본성 인정해야

모든 사람에 양성적 요소 있어
소프트파워 위해 여성성 계발해야

전쟁으로 분쟁해결 하던 시대서 태어난 가부장제
대안으로써의 가모장제의 등장, 나쁠 이유 없어

남성의 성욕, 신화 속에 함몰돼
21C 남성, 리더십보단 멤버십 키워야

【투데이신문 남정호 최소미 기자】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수천년 동안 하늘 높게 떠 있던 부계사회의 해는 점점 내려오고 있다. 가속도가 붙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모두가 바쁘다.

한 무리가 보인다. 무리 안에서 누군가는 지는 해를 어떻게든 살리려 애쓴다. 일부는 무리 안에서 나갈지 말지 머뭇거리기도 한다. 이전 시대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또 생각해본 적 없던 가치관이 쏟아지는 거리는 그들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무법천지일까.

나이 들수록 변화에 둔감하고 권위에 의존하고 남성중심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 진화할 줄 모르는 남성의 위기다. 과거에 남느냐 아님 벗어나느냐, 그 선택의 기로에서 발 못 떼고 있는 남자들의 위기다.

책 <남자란 무엇인가>를 통해 권위와 허세를 허물고 불완전하고 나약한 본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안경환(69) 명예교수. <투데이신문>은 저자인 안 교수를 만나 한국의 젠더갈등과 이 시대 바람직한 남자들의 삶을 물었다.

 

   
▲ ⓒ게티이미지뱅크

전쟁 위한 위계로 탄생한 가부장제
꼰대, 현재 살고 싶다면 젊은 세대 생각 배워야

Q. 법대 교수가 바라본 남성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이 신선했다. 책 쓰게 된 계기는.

법대 교수로서는 비교적 많은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도 많지만, 이런 주제로 쓴 적은 없었다. 사실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삶의 문제 아닌가. 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국은 남자-여자 문제기 때문에 그걸 남자 입장에서 관찰한 게 필요하다며 오래전부터 이 같은 내용의 책을 써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서문에 썼듯이 나는 가부장제도에 태어나서 남자로 가장 특권을 많이 누린 세대다. 그런데도 나름대로 힘이 들었다. 서문에서 첫애가 태어날 때 정말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처럼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책임과 부담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이 주제는 조금 더 폭넓은 독자와 세대를 염두에 두고 시도해봤다. 책에 젊은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인용한 것과 같이 그 세대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Q. 모든 분야에서 남성이 주도한 역사는 모성에 대항하는 역사라고 하셨다. 이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역사학자, 인류학자들이 하는 얘기다. 모계사회였던 원시수렵시대에서 농경사회로 넘어오면서 부계사회가 됐고 모든 사회 제도가 남성중심으로 가게 됐다. 이렇게 남성제도를 갖게 된 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모계, 모성사회에 대한 반대의 역사라는 수사적 표현이다. 부계사회, 즉 분쟁을 물리적인 힘과 전쟁으로 해결하는 시대는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에 그런 훈련을 해야 한다. 누군가는 명령하고 나머지는 명령을 받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게 평상 시에는 가부장제라는 수직적 관계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가부장제는 어느 사회에서도 그렇게 탄생했다. 모든 사회제도는 전쟁을 위해 위계질서를 세워야 했다. 그게 남성체제의 원칙이다.


Q. 20세기는 남자의 시대로 정의하셨다. 왜 그런가. 또 21세기는 남자에 불리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이 그런가.

전쟁으로 분쟁을 해결하거나 수직적인 구조를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이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도 철저했다. 지금 전쟁은 예외적인 상황이 돼버렸다. 평화 시에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상대를 설득하고 같이 공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전형적인 남성형 미덕 등을 고집하게 되면 더 힘들어진 거다. 이제는 분쟁을 해결할 때 더 이상 권위로 할 수 없다. 개별적인 설득과 이해를 통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남자들이 전통적으로 덜 훈련됐고 덜 익숙하다.

Q. 소프트파워가 떨어지는 남자, 어떻게 보완할 수 있나.

모든 사람에게는 남성적인 미덕과 여성적인 미덕이 같이 숨어있다. 페미니스트의 이론적인 원조로 불리는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양성적인 요소가 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소프트파워를 보완하려면 숨어있는 여성적 요소를 자꾸 계발해야 한다. 그게 익숙지 않기 때문에 소프트파워가 떨어지는 건데 그 부분을 훨씬 더 훈련시켜야 한다. 이렇듯 소프트파워는 내재돼 있기도 하지만, 상대방으로부터도 그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어릴 때는 부모 말씀은 무조건 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말하는 거에 대해서 부모는 잘 안 듣고 지시만 했다. 듣는 자식 입장에서는 뭔가 좀 맞지 않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가부장제라는 사회제도가 그걸 그냥 끌고 간 거다. 이제 부모는 자식에게 자기가 경험한 내용을 판단의 자료로 제공해주고 듣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자식의 얘기를 자꾸 들어야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 세대가 중요하고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이 지금 세대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서문 마지막에 남의 글은 읽지 않고 자기 목소리만 빡빡 내는 우리 세대 꼰대들에 대해 썼다. 특히 나이 어린 사람들 얘기 안 듣는다. 왜 그런지 얘기는 안 하고 자기 핏대만 세우는 전형적인 남자들이다. 그런걸 극복해야 한다. 현재와 미래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 젊은 세대가 어떤 걸 생각하는지 자기가 배워야 할 것 아닌가. 주로 남자들이 그런 게 필요하다.


Q. 한국 사회의 음주에 대한 관용은 늘 지적돼왔다. 왜 그런가. 남자 중심의 사회와 관련 있을까.

한국의 음주는 옛날에는 선비들의 호연지기와 여유로 생각한 경향이 있었다. 특히 조선말, 일제시대에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푸는 하나의 의식이나 수단으로 생각했다. 직장생활 하면서 음주를 하며 직장상사 욕을 하는 것도 집단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거다. 그러다 보니 음주로 일어나는 기행이나 일탈에 상당한 관용을 베풀었다. 음주운전에 대한 관용만해도 그렇다. 누구나 마이카를 가진 시대와 내려오던 음주와 관련된 전통이 결합돼서 음주운전에 대한 관용의 도가 넓은 편이다. ‘사람들은 술도 먹고 운전도 하지만 술 먹고 운전하지 않는다’는 게 다른 나라의 전형적인 캐치프레이즈다. 우리는 그런 부분을 관용해주고 있는 거다. 다시 말해 음주를 남성문화의 하나의 호연지기나 집단적인 울분의 표현으로 생각했던 전통이 자동차 문화와 잘못 결합된 것이다.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

Q. 게임과 포르노가 청년의 사회적 경쟁력을 떨어뜨려 여성의 약진이 돋보이며 사이버 세대 남성의 나태, 방만, 일탈의 반사적 효과도 적지 않고 이는 세계 제일의 청년 자살률로 이어졌다고 하셨다. 더 구체적으로 인과를 설명해주신다면.

엄밀한 인과관계가 그때마다 있다고 보기 어렵겠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분명히 관련 있다. 예를 들어 기말고사 기간에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큰 운동경기가 있으면 남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진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한 학기 내내 수업을 했다. 시험지에 담당 교수 이름 쓰는 난에 나 대신 안정환이라고 쓴 남학생이 두 명 있었다(웃음). 스포츠란 현대판 전쟁이지 않나. 실제 전쟁을 못 하기 때문에 대리전쟁을 하는 거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남자의 전쟁본능이 투영된 거다. 게임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쟁이다. 그러니까 스포츠와 게임에 훨씬 더 남자들이 많이 빠진다. 포르노는 이론적으로 볼 때 남녀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경험적으로 볼 때 남자의 성은 공격적이고 이성적인 컨트롤이 어렵다. 지금은 쉽게 포르노를 접하기 때문에 접속한 비율을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40배 이상 접속을 많이 한다. 남자의 뇌 속에서는 늘 섹스밖에 없는 거처럼 보인다. 자연적으로 젊은 시절에 그 부분에 훨씬 더 빠지게 돼 있다. 인터넷 시대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 중에 남자의 경우, 쉽게 접근하고 짜증 내지 않는 게 바로 섹스다. 그러다 보니 옛날에 있던 섹스를 정제할 수 있는 사회도구나 시스템이 다 무너져버렸다. 가장 왕성하게 미래를 준비할 나이에 여기에 빠지게 되면 결국 다른 부분이 처지게 된다. 한국은 굉장한 경쟁사회다. 어느 순간 경쟁하는 단계에서 뭔가를 놓쳐버리면 만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남녀가 공평하게 경쟁하는 전형적인 게 시험이다. 모든 종류의 시험에서 같은 또래에서 여성들이 더 잘한다.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많이 성실한 것도 있고 포르노나 게임 등에 정신을 분산시킬 요소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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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 전통과 편견의 구분에서 벗어나야
정상-비정상 개념 대신 개인 선택의 문제로

Q. 한국 젊은 남자들은 가부장제의 끝자락에 놓여있으며 권력은 분산됐지만, 책임과 의무는 여전하다고 하셨다. 권위를 잃고 싶지 않아 하는 남성들이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느낀다. 또 그렇게 하기를 사회가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지금 남녀의 사회적, 법적 평등은 대부분 이뤄지지 않았나. 그런데 전통적 요소 같은 건 아직 남아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카드를 많이 쥔 쪽이 유리하다고 얘기들 한다. 남자의 카드는 결국 내가 남자라는 카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이 카드 하나밖에 없는데 여성의 경우는 남녀는 동등하다는 카드 하나와 당신은 남자기 때문에 나를 조금 더 보호해줘야 한다는 두 개의 카드가 있다. 그러면서 경우에 따라 카드 2개를 그대로 내민다. 같이 똑같이 대우받으려면 똑같은 책임도 분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은 책임을 나한테 더 지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혼 역시 두 사람만의 관계지만 사회적인 문화도 관련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서 갖고 있던 가부장제는 이제는 되돌릴 수 없이 무너져버렸다. 그러면 나도 이걸 털어버려야 한다. 내가 돈을 못 벌면 아내가 돈 벌고 난 집안일 하면 된다. 거기서 자존심을 상해하면 안 된다. 아직까지는 남자가 버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의 선택에 따라 정상 비정상 개념이 없어지는 거다. 전통과 편견이 주는 그런 구분에서 벗어나야 한다.

Q. 그렇다면 새 세대가 아버지 세대의 짐을 털어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의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남녀의 고정적인 역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각각 개인적인 성향과 능력에 따라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에 따라 서로가 공동으로 이끌어 간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가족법에 결혼 중에 생긴 재산은 누가 벌었든지 간에 공동으로 쓰고 난 뒤 절반은 배우자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번 돈도 절반은 법적으로 내 것이다. 책임과 의무도 분담한다고 생각해야 분업과 협업이 된다. 이제는 세대가 주는 전형적인 롤이 사라지고 있다. 자기 선택의 문제다. 그걸 깨야 된다.

Q. 퇴직 후 명함 사라지면 기죽는 남자. 남자에게 명함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 의미 부여는 어떤 요인 때문인가. 벗어날 방법은.

명함은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기 때문에 명함이 없으면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나처럼 퇴임한 사람도 명함이란 게 있어야 한다. 일본영향을 받은 게 좀 있다. 일본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명함 받는 순간부터 서로 무언중에 상대의 지위와 나의 지위를 비교해서 예의를 갖춘다. 서양에서는 어린애와 할아버지가 서로 퍼스트네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절대 용납할 수 없지 않나. 할아버지라는 단어 자체도 하나의 명함적인 요소 아닌가. 그게 좋은 의미로 옛날부터 내려온 질서도 있지만, 사람 간의 개별적인 소통을 막는 장애가 된다. 이걸 무너뜨리려면 직책과 인격을 구분해야 한다. 직책에는 나름대로 직격이 있다. 우리는 그 직격하고 인격을 같이 합쳐 구분해버린다.

Q. 남자에게 결혼은 무엇인가.

욕망을 접고 사는 삶이다. 결혼식 주례를 하게 되면 연애 100년 하는 것보다 결혼생활 한 달이 더 힘들고 삶의 지혜를 깨우친다고 그런다. 연애가 시의 세계라면 결혼은 밋밋한 수필의 세계다. 연애가 열정적인 낭만 있는 사랑이라면 결혼은 건전한 생활의 사랑이다. 건전한 생활인 사랑이 이어지려면 서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관성이 생겨야 한다. 여기서 관성이란 부부 사이에 축적된 편한 상태를 뜻한다. 나중에는 금슬 좋은 부부는 몇십년 지나면 얼굴도 닮아간다는 말이 있지 않나. 관성이 생기려면 상대의 좋아하는 점에 대해서 공유해야 한다. 연애할 때는 이 사람하고 뭐가 통하는지만 자꾸 찾았을 거다. 서로 약간 위장하고 산 거다. 그렇게 하면 결혼 생활 못 한다. 나하고 다른 점이 뭔가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사람은 다 다르고 고칠 수 없는 것도 많다. 고쳐보려는 시도도 필요 없는 게 많다. 그렇게 되면 나한테 안 맞더라도 받아주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좋은 의미의 체념이다. 이처럼 결혼생활의 본질은 관성과 체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결혼생활에 도대체 이해 못 할 것이 숨어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 무슨 긴장된 일을 앞에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면 친정에 무슨 고민이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집에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일도 많이 보일 거다. 서로 좋아하는 부부나 오래된 연인 사이는 뭔가 둘만이 알고 통하는 몸과 마음의 어떤 비밀 코드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만 단단해지면 결혼생활이 안 무너진다. 기본적으로 결혼생활은 얼마만큼 함께 참아내느냐에 달렸다.

Q. 최근 메리지블루(marriage blue, 결혼 전 우울증)에 빠지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요인들이 작용했을까. 극복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결혼에 대해서 너무 큰 걸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결혼은 어차피 자기가 가진 일부를 포기하고 나머지 부분을 편하게 같이 사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결혼하게 되면 아내를 먹여 살려야 하고 애 키워야 하고 하는 걸 자기 혼자 다 지겠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또 ‘결혼하면 다른 걸 못하지 않나’라고 할지 모른다. 다른 게 결혼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걸 위해 사는 거다. 반면 결혼한다면 그걸 줄여가거나 포기해야 한다. 많은 부분을 접고 사는 거다. 특히 남자들이 전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나 결혼하고 난 뒤에도 좋아하는 걸 계속하고 싶어하는 생각 등 욕심이 조금 강하다. 그런 부분을 조금씩 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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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시대 흐름 따라 어느 정도 해소될 것
젠더 갈등, 합리적 분쟁 조절 전통 생겨야

Q. 이 시대 여성성에 대해 정의해주신다면.

아까 말한 대로 여성도 인간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모든 여성 속에도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가 있다. 미덕이나 강점이 있는 거다. 가정을 이끌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나 활동의 책임을 주로 여성이 많이 진다는 의미에서 가모장제는 나쁠 이유가 없다. 남자가 경제•사회적으로 항상 집에서 주도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육아를 남자가 다 못하는 것도 아니다. 가부장제의 오랜 전통에 따른 단점에 대한 대안이나 선택으로 가모장제가 등장하는 건 나쁘지 않겠다.

Q. 말씀하신 것과 같이 최근 가모장제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예능에서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속담을 바꿔서 ‘수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부장제를 탈피하기 위해 나온 말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에서 다수와 소수, 갑과 을의 위치가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입장에서는 강한 말이나 울분이 나오고 한다. 그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갑이 을에게 하는 말은 사회적 파워가 합쳐지면 탄압이고 폭력이 된다. 하지만 을이 갑에게 하는 말은 일종의 투정이나 아우성이다. 이 둘을 같은 차원에서 보면 안 된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게 오래 유지돼온 가부장제의 상징이라면 거기에 대응하는 말로 나온 ‘수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그와 같은 무게로 보면 안 된다.

Q.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들의 희생과 억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과거의 역사가 그래왔고 그건 잘못됐다. 이 같은 여성의 희생과 억압은 어느 나라에서도 있었다. 그 극복과정이 우리는 서구보다는 조금 더 늦었고 이슬람보다는 조금 빠른 거다.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의 역사는 남자의 역사라는 말이 있지 않나. 한국의 경우도 여성들이 굉장히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왔다.

Q. 머리말에 아들이 딸이었으면 했다고 하셨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더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그런 건 아니다. 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 때문이다. 개인이나 가족 외에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강요당하면서 산 세대에서 남자로 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자식이 태어나면 ‘아들은 비장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걸 훈련받고 살았고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 부담 말고 ‘개인으로 살아라’는 의미에서 ‘딸이었다면 훨씬 더 쉽지 않았나’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거다. 큰 사회적 의미를 가진 표현은 아니었다.

Q.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제와 관련해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이 과정에서 남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앞선 시대의 흐름을 보면 이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는 해소될 것으로 생각한다. 가족 내 문제는 개별적인 두 사람 간의 문제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사회적으로 얼마만큼 수용되느냐인데 지금은 대부분 두 사람 간의 문제 해결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관계는 없다. 사회적 관계에서 볼 때는 여성의 사회적인 진출인데 이제 공적 부분에서의 공개시험을 통해서는 여성이 이미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사적 부분에서의 역할은 사회와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이 변화 속도를 OECD 국가의 양성평등 지수로 보면 톱 클래스에 비해서는 우리가 많이 뒤져있다. 그러나 우리가 밑에서 중간으로 올라오는 추세를 볼 때는 중간 이하에서는 그렇게 나쁘진 않다. 이 중간 과정에서 여자가 결혼하면 직장 그만둬야 하거나 육아만 한다든가 등의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 이건 국가가 관여해야 하고 여성의 육아, 출산에 대해서 도와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가는 속도는 마음만큼 빠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가는 방향은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 시대 ‘꼴통’ 남자들이 볼 때는 과도하다 할 정도로 하고 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 세대는 윗세대의 가부장제 영향을 받았지만, 적어도 나는 내 아들딸은 차별 안 하고 똑같이 키웠다는 자부심이 있다. 오히려 딸에게 정성을 더 줬다. 내 딸이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할 때 거기에 대한 관용이나 이해 등이 훨씬 더 나아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그 부분에서 나이든 세대가 장애물은 안될 거다. 나이든 세대들은 사회변화를 주도하지 못하지만, 사회변화를 막는 힘은 있지 않나.

Q. 젠더벤딩(gender-bending, 성역할파괴)에 거부감 강한 남자들이 많다. 이들의 거부감은 어떤 요인이 기인한 것인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다. 사람들은 자기 경험 외에 새로운 생각을 못 하고 자기 경험대로 기대하지 않나. 그분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걸 나무랄 수 없다. 다만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문화가 있고 가치관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설득이 되고 어른들도 포기하게 되겠다.

Q. 세대 간 갈등과 더불어 젠더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서로 경쟁하다 보니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습관들이 쉽지 않다. 남자는 기본적으로 경쟁하는 삶을 산다. 한 여성작가가 남자 소변기 구조를 말하면서 얕은 칸막이 너머로 상대의 모든 것이 보이는 상황에서 볼일을 볼 때마다 남자들은 옆 사람을 곁눈질하면서 묘한 경쟁심을 느낀다고 얘기했듯이 남자들은 경쟁심이 몸에 배어 있다. 남자들이 목욕탕 가면 은연중에 쳐다보지 않나(웃음). 그런 구조가 여자라고 다른 게 아닐 거다. 권력이 주어지면 자기들끼리 경쟁요소가 있다. 남녀가 경쟁할 경우 상대에 대한 배려가 쉽지 않을 거다. 우린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 같은 게 조금 있다. 남자한테 주는 건 전부 다, 군 전역자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남녀가 경쟁할 경우 성실하게 준비하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많다. 대부분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는데 훨씬 더 익숙하다. 대체로 남녀가 다투기 시작하면 여성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합리적인 말을 많이 하니까 남성들이 해결하는 방법은 빨리 ‘알겠어’, ‘그만해’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세부적인 조정 스킬이 훈련이 안 됐다. 이 부분도 가면서 점점 더 나아질 거로 생각한다. 경쟁하는 부분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너무 절박하면 부당한 경쟁을 하려 한다. 그게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 중 하나같다. 그걸 남자 여자 따로 놓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이건 인간 대 인간의 문제다. 사회 전체가 합리적 방향으로 분쟁을 조절하는 전통이 생기게 되면 될 거다. 

   
▲ 안경환 명예교수 ⓒ투데이신문

남자 성욕, ‘살아있는 징표’ 신화 속에 함몰돼
모든 이가 대등하다는 생각…남자다움의 출발

Q. 남자에 대한 설명에서 성욕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다. 성욕이 사라지면 남성성은 상실되는 것인가.

우리 세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생각했다. 때문에 거기 많이 집착한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성욕을 생에 대한 집착, 살아있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도 그런 신화 속에 함몰돼 있는 거다. 분명하게 여자의 성욕보다 남자의 성욕이 어릴 때부터 훨씬 더 공격적이고 이성적이지 않다. 이 부분이 습관이 되고 몸에 배서 노년까지 간다. 일본의 노인 매뉴얼을 보니까 절대로 성에 대한 관심을 끄지 말라고 하더라. 심지어 친한 친구들끼리 야동을 보라고 했다. 존재의 의미를 거기에 두는 거다. 사자들을 보면 힘없어진 수사자들이 쫓겨나지 않나. 옛날에는 성을 엄격한 결혼생활 속에 가둬두려 했다. 엄격한 가부장제를 통해 칠거지악 등으로 여자는 꼼짝 못 하게 만들면서 남자의 탈선은 자연적인 걸로 인정했다. 성매매 등을 보면 인간은 그런 부분이 덜 정화됐기 때문에 그 본능에는 도리가 없다. 게다가 이때까지는 그 본능을 부추겨서 푸는 걸 훨씬 더 도와주는 사회였다.

Q. 맨스플레인(mansplain)은 남자의 어떤 특징에서 기인했나.

여성에 대한 자기 확신, 소위 말하는 관계에서의 자기 지배력이다. 논쟁할 때 보면 항상 자기가 결론 내는 사람 있지 않나. 그 결론에 대해서 과정을 잘 설명하면 동의가 되는데 보통 아닌 경우가 많다. 밤새 토론할 때도 결국 체력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많다. 끝까지 고집 세워가지고(웃음). 그게 맨스플레인 아닌가. 남성의 자기지배와 자기주도, 그게 여성에 대해서는 훨씬 더 심한 거다.

Q. ‘남자가 울면 어디에 쓰나’, ‘남자가 말이 많으면 안 된다’ 등 과거부터 얘기돼온 남자에 대한 가이드라인들이 많다. 왜 생겨났나.

아까 말했던 농경사회 이후 전쟁시대, 여자는 집에서 가족을 챙기고 남자는 바깥일을 했다. 그 바깥일은 생계와 더불어 국가를 방위하고 전쟁하며 사회제도를 움직이는 것으로 역할 구분이 생긴 거다. 전쟁으로 인한 분쟁의 해결이 주를 이루던 사회에서 가부장제는 탄생했다. 그 안에서 가부장은 가족의 장군이었다. 장군이 흔들리고 하면 되겠나. 그런 식으로 작게는 한 가정, 크게는 한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면 어떡하냐는 거다. 인위적인 자기감정의 통제라는 성숙한 면도 있겠지만, 자연적으로 느낀 슬픔은 눈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구분을 못 하고 단지 나약한 인간으로 생각했던 거다.

Q. 이 시대 진정한 남자다움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우선 소통과 공감의 능력일 것이다. 그걸 하려면 무조건 누구를 이끄는 게 능사가 아니고 내가 다른 사람과 공감해서 같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게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 리더십만 중요한 게 아니라 멤버십도 중요하다. 리더십은 어떤 소속된 공동체가 있으면 자기가 거기서 톱이 된다는 생각이다. 멤버십은 그중에 내가 일원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이 이렇다 얘기하면서 여기에 많은 사람이 동조해주면 자연적으로 공동의 리더가 되는 거다. 이는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간에 모든 사람이 대등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Q.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다들 현재가 힘들다고 그러는데 언제나 다 힘들었다. 명나라 시인 얘기 썼지만 하늘 보고 ‘힘들다’고 했더니 하늘이 ‘나도 힘드네’ 하지 않았나(웃음).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할아버지 세대보다는 아버지 세대가 조금 더 행복했고 아버지 세대보다는 내 세대가 조금 더 행복했다. 내 세대보다 내 아들 세대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된다. 힘든 내용이 차이가 나는 거다. 적어도 지금은 굶어 죽는다는 걱정은 할 필요 없지 않나.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 의미를 두고 하는 일, 그게 나 자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특별하게 좋은 직업은 없다. 삶의 의미에서 중요한 건 타인과 소통·공감하는 거고 내가 가치를 두는 일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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