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요즘 한국사 국정교과서 등 역사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많아서 그런지, 역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상파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을 주로 방영하는 방송사에서까지 역사 관련 특집을 많이 내보내곤 한다. 얼마 전 MBC ‘무한도전’에 이어, tvN의 ‘어쩌다 어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역사 관련 특집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 그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제목이 재미있다.‘식사(食史)’라고 해서 음식처럼 역사를 즐기자는 메시지를 주려 한 듯하다. 역사학을 직업으로 하는 입장에서 이 자체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해왔듯이, ‘과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역사가 재미를 추구하는 대중의 흥미를 끄는 데에는 좋을지 몰라도, 자칫하면 잘못된 정보를 알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는 흔하다. 강사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며 열린 자세를 보였다. 그래서 자기는 ‘8종 교과서’에 근거를 두고 강의하는 것이니 그 점을 알아달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이 말에서 강사의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 사실 출판사에 상관없이,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알량할 수밖에 없다. 중고등학생 수준에서 진학을 위해 배우는 분량과 내용 정도로는, 교과서에 복잡한 사정을 다 써놓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인기 강사의 강연을 들어보면 70년대 국정교과서 수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만큼 철지난 군사정권 시대의 역사 인식이 많이 반영된 내용인 것이다.

이 강사의 강연 내용에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니다 다를까, ‘어쩌다 어른’에서도 첫 방송 무난하게 나아가는 것 같더니 다음 방송에서부터 문제가 될 만한 내용들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등 주변국과 역사 갈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은 ‘그저 예능 프로그램이려니’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2회 방송에서 언급된 광개토왕비에 대한 언급부터 그에 해당한다. 이날 방송에서 강사는, 광개토왕비가 일본참모본부 요원에게 발견돼 조작의 혐의가 있고 비문에 대한 해석을 두고도 ‘일본 측 해석이 틀렸으며, 이 점에 대한 인정도 받았다’는 식으로 소개했다. 바로 이런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 필자가 아는 한, 일본에서 정인보 선생 계열의 한국 민족주의적 해석에 동의했다는 말은 없다. 심지어 비문 조작설을 인정하는 것도 대세는 아니다. 석회를 바르기 전에 떠놓은 이른바 ‘원석 탁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두고 한국과 일본 학계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 내용도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비문 자체 해석은 일본 측의 것을 인정해주면서, 이 내용은 고구려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서 써놓은 이야기를 그동안 근대의 상황에 끼워 맞추어 멋대로 해석했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광개토왕비는 역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세운 것이 아니라, 장수왕이 아버지인 광개토왕의 무덤 지키는 사람 운영 규칙에 대한 기강을 잡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는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고전적인 이야기이고, 이성시 교수의 ‘만들어진 고대’라는 책에서 정리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입시 위주 강의에 주력하던 강사로서는 알기 어려웠을 내용이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유야 어쨌건, 한국 측 학자들조차 별로 신뢰하지 않는 비문 조작설이나 민족주의자들의 해석을 일본 측에서 인정한 것처럼 방송해버리면 그 후유증은 누가 책임질까?

동아시아 고대사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개토왕비 문제만 해도 이런 정도의 파문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것 말고도 방송 중 비슷한 효과를 낼 얘기도 제법 나왔다. 이 강사가 제시한 고대국가의 기준 같은 것도 은근히 파문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방송 내용에서는 고대국가의 기준을, 왕위세습·불교 도입·율령반포·영토 확장이라 했다. 옛날 국정교과서로 배운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문제가 많다.

이 중 제일 알아보기 쉬운 기준이, 마치 불교가 도입되어야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사실 중원제국에서부터 불교 도입 이전에 고대국가 차원을 넘어 제국체제를 갖추기도 했다. 반대로 일본은 성왕 때가 되어서야 불교 도입을 위한 갈등을 겪지만, 일본이 아무리 고대국가 성립이 늦었다고 해도 이때까지 고대국가 되지 못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니 한국 고대국가들도 불교 도입 이전에는 고대국가 체제 갖추지 못했다는 식으로 몰기는 무리다.

율령 역시 마찬가지다. 이게 기준이라면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가 되어서야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이런 기준으로 한국계 고대국가 성립 시기를 늦춰보려 하는 경향의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점을 짚어놓고 싶다. 이런 논리의 뿌리는 사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주입시키려 애쓴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자잘한 것까지 지적하자면 한이 없을 것 같다. 가야를 6가야라고 인식하는 것, 고구려가 광개토왕 때 즈음까지 백제를 ‘아들의 나라’로 인식했다는 식의 설명, 장수왕 때부터 남진정책 추진 시작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도 케케묵은 오해이고, 백제가 지배층의 사치와 향략 때문에 망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예능 프로그램이니 ‘그러려니’ 하며 즐기면 그만이지 뭐 때문에 이런 문제를 까탈스럽게 지적 하느냐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뭐라고 했나? ‘우리역사를 지키는 방법은 올바르게 알고 잊지 않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자막까지 내보냈다. 이래놓고서 정작 자기들이 내보낸 방송 자체는 왜곡으로 얼룩진 내용으로 채워놓은 셈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주는 악영향이 없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러고 보면 이날 강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에, 심지어 ‘없는 말’까지 만들어 방송에 내보낸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방송을 본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진실’로 믿고 있을 것이다. 방송이라는 것이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황당한 거짓말이라도 일단 방송에서 인기 얻으면 사실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보다 재미있게 가공해서 자극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더 신뢰를 얻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잘 알려져 있듯이, 광개토왕비에 대한 시비 같은 문제는 단순히 재미 있는 역사 이야기로 즐기고 끝낼 성격의 것이 아니다. 학술적으로도 논란 많은 동아시아 고대사 복원에 중요할 뿐 아니라, 한·중·일의 이른바 ‘역사전쟁’에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강사 자기 말로도 ‘총성 없는 전쟁’이라 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전쟁’에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는 행각은 아군에 ‘불량무기’ 공급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당장 광개토왕비에 대한 내용만 해도, 있지도 않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거짓말한 꼴이 돼 버렸다.

이런 강의 들은 사람이 외국에 나가 아는 척하고 다니다가 속칭 ‘임자’만나면 어찌될까?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외교관 중에 바로 이렇게 왜곡된 정보를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 몇 명 본 적이 있다. 이들이 국익 걸린 현장에서 일본이나 중국 측에 대고 잘못된 정보로 설치다가 망신당하면, 외교관 개인의 망신으로 그칠 상황이 아니다. 일이 잘못되면 국익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불거진 위안부 합의가 문제를 일으키는 현실만 보아도, 역사 문제 협상 한번 잘못한 결과가 우리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 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 주변에는 이런 강사가 제공한 수준의 설익은 지식을 가지고, 자신들만이 ‘바른 역사’ 찾는다고 사방에 문제 일으키고 다니는 사람들 투성이다. 이 중에는 ‘중증 환자’도 많다. 어디서 주워들은 정보는 신앙처럼 믿으면서, 이 정보를 직접 검증한 사람까지 엉터리로 몰아가는 차원이면 ‘중증 환자’라는 표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풍조 덕분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탄핵정국에서도 이렇게 ‘중증 환자’들이 설치는 꼴 흔히 볼 수 있게 됐나보다.

필자가 일을 추진할 때에도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애를 먹다 일이 틀어지기까지 한다. 이건 개인 차원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공기관까지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일이 흔하다. 방송에서 제공된 왜곡 정보가 쓸데없는 사회갈등, 외교 마찰에 이어 국익에까지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 연결되기 일쑤라는 얘기다. 이래서 ‘일개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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