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치매 웹툰 <아스라이- 나를 잊지 말아요> 저자 예환 작가

   
▲ ⓒ투데이신문

‘아스라이’ 뜻, 기억나지 않고 가물가물
기억 잃는 치매 환자 모습과 비슷해

치매 걸린 외할아버지, 웹툰 연재 계기
치매 환자에 대한 편견 바꾸고 싶어

웹툰 통해 보이는 것, 현실에 20%
현실서 느끼는 감정 살리려 노력해

웹툰 작가로서 다양한 작품 그리고파
추후 아스라이 시즌2도 기획하고 싶어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드라마나 영화에 비극적 운명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몇 가지 병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치매(Dementia)’다.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자신의 배우자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에 그 가족들은 세상 다 무너진 듯 슬픔에 잠겨 눈만 마주쳐도, 먼 발치서 바라만 봐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치매에 걸린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역시 지금 당장이라도 가족의 곁을 떠날 것처럼 잠든 그들의 머리맡에 앉아 눈물을 훔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흔히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 보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안타까움 섞인 한숨을 당연하게 느낀다.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면서 말이다.

치매 환자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을 깨기 위해 나선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웹툰 작가 예환(29)씨다.

예환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통해 전해 들은 외할아버지의 소식은 슬픈 얘기도 많았지만 실소를 자아내는 재미난 얘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치매 환자를 둘러싼 편견을 환기해보고자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웹툰 <아스라이- 나를 잊지 말아요>다.

<아스라이- 나를 잊지 말아요>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돕는 요양보호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렸다. 치매 환자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인식을 바꾸는 것이 목적이었던 그는 아프고 힘든 얘기보다는 즐거운 얘기들로 재미와 감동적인 스토리를 풀어가는 데 집중했다.

전문가가 아니었던 그는 치매 관련 전문 지식을 쌓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만 꼬박 8개월이 걸렸다. 웹툰이 연재되기까지 책,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요양보호사, 치매협회, 사회복지학 전공자 등 다양한 도움의 손길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아스라이- 나를 잊지 말아요>는 단행본 출판이라는 기쁨까지 안았다.

자신의 웹툰을 통해 조금이나마 사람들이 치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예환작가. <투데이신문>은 지난 1월 25일 예환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부천의 만화산업종합지원센터를 찾아 치매 환자 가족으로서, 치매 웹툰 작가로서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사진 제공 = 예환 작가>

Q. 웹툰 <아스라이- 나를 잊지 말아요> (이하 아스라이)에 대해 소개 바란다.

2015년 3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연재한 <아스라이- 나를 잊지 말아요>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치매 환자를 보살피는 요양보호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제 막 요양보호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은자에게는 어릴 적 일찍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형제들끼리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돌봐야 했는데 그게 싫었던 어린 은자는 피하고 도망다니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뇌진탕으로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며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은자는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느꼈고 이를 씻어내기 위해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요양보호사가 되기로 한다. 마침내 요양보호사가 된 은자는 여러 치매 노인들을 돌보며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되는 스토리다. 그 안에서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통해 치매 환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Q. 제목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치매 환자 입장에서는 가족들에게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가족들 입장에서는 치매 환자에게 그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가제를 지었었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고 가물가물하게’라는 뜻의 순우리말 ‘아스라이’가 치매 환자들이 기억을 잃어가는 느낌과 비슷해 잘 맞는다고 생각해 대제목·소제목으로 두 가지를 합쳤다.

Q. <아스라이>의 연재 배경은 무엇인가.

외할아버지가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그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따금씩 집에나 가야 외할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슬프거나 힘든 얘기도 있지만, 그런 와중에 엉뚱하거나 재밌는 이야기도 많았다. 치매는 누가 언제 걸릴지 모르는 병이다. 내가 들은 여러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만화를 만들어 사람들이 치매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하길 바랐다.

Q. 치매에 대한 배경 지식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그렇다. 기초 지식을 쌓는데만 약 8개월 정도 걸렸다. 전문 지식과 관련해서는 책을 여러 권 구입했다. 그중 사례를 통해 갖가지 상황들을 치매 환자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조언하는 책 <치매와 마주하기>가 가장 많은 도움이 됐다. 치매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방송도 많이 찾아봤다. 에피소드를 그리기 위한 소재는 실제 외할아버지를 돌봐주신 요양보호사님과 ‘치매 노인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많이 얻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도 인터뷰 했다. 내가 직접 치매 환자를 돌보며 겪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화 안에서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해 디테일하게 나타낼 수 있는 소재를 수집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Q. 웹툰 속 치매 환자와 실제 치매 환자의 싱크로율은 어느 정돈가.

만화를 통해 보이는 것은 20%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상태가 굉장히 안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습들을 작품에 넣었으면 좋았겠지만 가족 간의 사랑을 중점으로 하다 보니 스토리를 밝게 풀어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때문에 치매 환자가 겪는 고충, 요양보호사의 실질적 고민 등은 최대한으로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비슷하게 표현하려고 했지만, 주변에 치매 환자를 겪고 있는 분들이 보기에는 미화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Q. 웹툰 속 주인공들의 롤모델이 있나.

주인공 은자는 앞서 언급한 나의 외할아버지를 돌봐주신 요양보호사님이 롤모델이다. 그래서 처음에 은자 역시 그분 연령에 맞춰 40대로 설정해 요양보호사가 남편, 자식과 겪는 갈등도 그리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40대가 아니다 보니 감정의 디테일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상황의 이제 막 요양보호사가 된 20대 사회 초년생으로 콘셉트를 바꾸게 됐다. 웹툰 속 치매 노인은 특정한 롤모델이 있던 건 아니다.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요양보호사님을 통해 전해 들은 여러 가지 실화를 바탕으로 캐릭터에 맞게 그려 넣었다.

   
▲ <사진 제공 = 예환 작가>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웹툰 등장인물 중 ‘아재밌다’라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자기 딸과 함께 남편의 병문안을 간 에피소드가 있다. 병원 앞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고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와 ‘혼자 사세요? 나랑 같이 살래요?’라고 묻는데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남편이었다. 이 장면은 실제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놀이터에서 주고받은 내용이다. 이 장면을 독자들도 굉장히 많이 좋아해주고 SNS에서도 화제가 됐다. 그래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나는 에피소드다.

Q. 치매 환자의 내면을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책 <치매와 마주하기>를 읽으며 느낀 바가 많았다. 치매 환자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기억을 잃는 게 어떤 느낌인지 우리는 모른다. 실제 당사자가 되지 않는 이상 만화나 영화처럼 콘텐츠를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치매 환자들은 기억을 잃는 것이지 감정을 잃어버리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기억을 잃는 것일 뿐 좋고 나쁜 감정들은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지에 실례를 한 치매 노인의 옷을 벗기는 장면을 그릴 때는 치매에 걸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똑같다고 생각하며 ‘왜 모르는 사람이 내 바지를 벗기려고 하나’라고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Q.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힘들다’, ‘안타깝다’는 편견과 달리 그들이 일상에서 얻는 재미에 대해 잘 표현했다는 평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치매 환자에 대해 미화됐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연재 목적이 치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스토리는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바탕으로 풀어나가려고 했다.

   
▲ <사진 제공 = 예환 작가>

Q. 치매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이에 대한 우려는 없었는지.

그렇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꼭 치매 환자 얘기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했을 때 충분히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다.

Q. 독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초반에는 각 캐릭터를 소개하는 형식의 에피소드를 연재했는데 그 얘기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독자들도 점차 늘어난 것 같다. 자신이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와 은자의 이야기가 비슷해 공감된다고 메일을 보내주신 분들도 있었고, 반대로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됐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내가 누군가의 진로에 영향을 미쳤다는 거에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감사하기도 했다. 어떤 분은 지하철에서 치매 증상을 보이시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지하철 역무실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지하철 보안관들이 할머니를 모셔가려고 하자 여기 있어야 한다며 거절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아스라이>에서 봤던 내용을 바탕으로 ‘경찰 아저씨들이 집까지 모셔다 드릴 거예요’라고 할머니를 안심시키며 설득했다고 한다. <아스라이>를 통해 치매 환자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바뀐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

Q. 웹툰이다 보니 현실과는 멀다는 지적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 <아스라이>를 처음 연재하기 시작한 곳은 10·20대가 주로 이용하는 ‘피키캐스트’라는 SNS 사이트였다. 아무래도 연령층이 낮다 보니 치매를 겪어본 독자도 많이 없을뿐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할머니도 그랬어’라는 공감 댓글이 많았다. 그런데 <아스라이>가 단행본으로 출판되면서 몇몇 언론에서 소개되자 ‘치매에 대해 책에서 소개된 만큼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우려도 있었다. 나 역시 책 두 권만으로 치매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스라이>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바가 치매에 대한 참고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Q. 실제 가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연재하는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다.

‘혹시나 나중에 내가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라는 생각도 좀 했다(웃음). ‘웹툰을 보고나니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연락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댓글이 되게 많았다. 나 역시 평소에 연락을 잘하는 손녀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댓글을 보면서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할머니께 효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스라이> 연재가 가족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됐다.

Q. 치매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고충은 어떤 것이 있는가.

치매에 걸린다고 해서 상태가 갑작스럽게 나빠지는 게 아니라 병이 점차 진행되면서 마지막에는 식욕마저 잃고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환자가 오랜 시간 함께 달려가야 하는 ‘마라톤’ 같은 느낌이다. 다큐멘터리를 찾아 보니 일본의 경우에는 치매 환자에 대한 복지가 잘 돼있었다. 개인적으로 치매는 절대 호전될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반복적인 훈련과 돌봄을 통해 더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고 초기 상태에 머무르는 사례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시스템 마련과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정부 차원의 정책을 통해 사람들이 치매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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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스라이>가 단행본과 단편 영화로도 소개됐다. 소감이 어떤가.

요즘 출판 시장이 좋지 않아 정말 인기 있는 작품이 아니라면 책으로 출판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스라이>가 책으로 나올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때문에 지금도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기보다는 책으로 나온 거에 의미를 두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단편 영화는 웹툰을 연재하던 중에 계원예술대학교 학생들에게 졸업 작품 소재로 쓰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만들어지게 됐다. 생각보다 너무 잘 만들어져 놀랐고 내가 만든 캐릭터들이 영화 속에서 실제 사람들로 하여금 연기된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다. 기쁜 마음에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도 했다(웃음).

Q. 앞으로 나올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 계획 중인 것이 있는지.

<아스라이> 연재를 마치면서 시즌2로 요양병원을 배경으로 여러 환자들이 어울려 사는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아직까지 시즌2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오는 3월이나 4월에는 캘리그래피를 소재로 한 웹툰으로 인사드릴 것 같다. <아스라이>와 비슷한 취지로 내 웹툰을 통해 사람들이 캘리그래피에 관심을 갖고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웹툰 작가로서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은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다양한 작품을 그리는 것이 웹툰 작가로서의 꿈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에서도 말했다시피 치매 환자는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사라지는 ‘찢어진 일기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치매 환자 각자의 과거라는 일기장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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