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윤여홍씨, 유재은씨, 장재훈씨 ⓒ투데이신문

피닉스, 치킨으로 뜻맞는 사람끼리 만들어
초창기 회원 200명 이상···인기 예상 못해

치킨,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친숙한 메뉴
편하고 부담 없는 것이 가장 큰 매력

TV·라디오 등 다수 매체에 출연하기도
치킨 업체서 신메뉴 피드백 요청도 해

치킨 인기에 피닉스 기여한 바 크다 생각
도상국에 살아 있는 닭 기부하고 싶기도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대한민국은 치킨공화국이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 국민들의 치킨 사랑은 굉장히 뜨겁다. 이제 치킨은 주말 저녁 집에서 가족과 함께, 야구장에서 친구와 함께, 따뜻한 봄날 한강에서 연인과 함께, 남녀노소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먹을거리가 됐다.

대한민국 치킨 역사의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명동에는 최초의 전기구이 통닭 전문점인 ‘명동 영양센터’가 문을 열었다. 영양센터가 영화나 소설 속에 종종 등장할 정도로 전기구이 통닭은 고급 음식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60년대 말 국민 소득이 높아짐과 동시에 국내 양계장의 생산량이 10배 이상 증가하면서 닭은 접하기 쉬운 식재료가 돼버렸다. 1971년 해표 식용유가 최초로 출시되면서 닭과 기름의 양산화가 갖춰지며 본격적인 프라이드 치킨 시대의 서막이 열렸고, 6년 후 한국 최초의 프라이드 치킨집인 ‘림스치킨’이 탄생했다.

1985년에는 대구의 계성통닭과 대전의 페리카나에서 최초로 양념치킨을 선보이며 소위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간장치킨, 파닭, 시즈닝을 이용한 가루 양념치킨 등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 (왼쪽부터) 각자 선호하는 부위를 들고 있는 윤여홍씨, 유재은씨, 장재훈씨 ⓒ투데이신문

어느덧 치킨은 ‘국민간식’에서 일상이 됐고, 우리나라 음식문화에서 치킨을 빼놓곤 논할 수 없게 됐다.

‘치킨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신념을 계기로 모인 젊은이들이 있다. 바로 치킨 동아리 ‘피닉스’다. 지난 8일 <투데이신문>은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한 치킨집에서 ‘피닉스’와의 맛깔나는 인터뷰를 가졌다.

피닉스는 2013년 3월 치킨으로 뜻이 맞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학생들이 모여 만들었다. 현 회장을 맡고 있는 유재은(연세대 행정학과·25·여)씨는 첫 동아리 부원 모집 당시 지원자였다.

“피닉스는 2013년 3월에 처음 생겼어요. 연세대 경영대학에 다니던 분들이 ‘좋아하는 걸 해볼 순 없을까’하는 생각에서 재미 삼아 시작한 거예요. 처음부터 학교나 학과, 나이 등의 제한은 없었고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돼있었어요. 저도 첫 회원 모집 당시 지원자였어요. 동아리조차도 스펙 위주로 이미 준비된 사람을 찾았는데 저는 아니었거든요(웃음). 치킨을 좋아하기도 했고 저 역시 재미 삼아 들어가게 됐습니다”

장재훈(중앙대 사회학과·25)씨는 방송을 통해 처음 피닉스를 접하고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피닉스를 방송을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저 동아리 굉장히 특이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입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다른 동아리도 찾아보기도 했어요. 근데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을뿐더러 단순히 스펙만을 위해서 가입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피닉스 홍보글을 보게 됐어요. 다른 학교 학생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낯설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치킨도 좋아하고 어떤 동아리인지 호기심에 지원서를 쓰게 됐어요”

‘스펙에 도움 되는 동아리도 많은데 하필 치킨 동아리냐’라는 물음에 윤여홍(연세대 경영대학·25) 씨는 치킨 동아리라고 도움 안 될 것도 없다고 했다.

“저는 요식업에 관심이 많아요. 예전에 치킨집 컨설팅을 해서 매출을 200만원 정도 올린 성과도 있어요. 그래서인지 치킨이 좋아서 시작한 동아리지만 스펙에 전혀 도움 안 된다고 보진 않아요. 무엇이든 하면 좋다고 생각해요”

   
▲ 피닉스 활동 사진 <사진 제공 = 피닉스>

앞서 언급됐듯 피닉스는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때문에 동아리 가입 조건도 특별하지 않다.

“애초에 연세대 치킨 동아리 피닉스가 아니라 그냥 치킨 동아리 피닉스로 시작을 했어요. 그러니 누구든 가입이 가능했죠. 피닉스가 만들어진 배경이 취업 준비와 스펙을 쌓는 것에 대한 회의감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을 지양해요. 그래서 지원서를 내주신 분들은 모두 면접을 봐요. 사실 면접도 누군 붙이고 누군 떨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지원자를 미리 만나 어떤 분인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보는 거예요”

초창기 피닉스의 인기는 가히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교내에서 신생 동아리 최초로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지원했으니 말이다. 그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워 오리엔테이션은 각자 치킨을 시켜 인터넷방송을 통해서 진행했다. 점차 유명세를 치르면서 각종 라디오와 TV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다. 유 회장은 치킨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단다.

초창기 회원이 200여명일 때는 사실상 다 같이 모인다는 게 불가능했죠. 그래서 그렇게 다함께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번개식으로 되는 사람들끼리 모였어요. 이제는 인원이 많이 정리가 돼 13명 정도에요. 정기 모임은 격주 금요일마다 있어요. 사실 이것도 강제성은 없어요. 애초에 누구에게 강압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려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순전히 우리가 즐겁고 재미난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것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되는 사람들끼리 만나요”

“‘어떻게 치킨으로 동아리를 만들지’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다들 굉장히 신기해했어요. 당시 카톡으로 면접을 봤던 게 굉장히 화제가 됐어요. 온라인에서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고 그 덕분에 SBS '스타킹', KBS '1 대 100',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 방송 출연도 많이 했어요. 모 라디오방송에는 제가 치킨전문가로 나온 적도 있어요(웃음)”

   
▲ 인터뷰 장소인 신촌 ‘크리스터치킨’ ⓒ투데이신문

모두 치킨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모였지만 선호하는 치킨은 제각각이었다. 유 회장은 가장 기본인 프라이드 치킨을 추천했다.

“언젠가 들은 얘긴데 감자칩 회사들이 오리지널 맛을 없애지 않는 이유가 결국 소비자들이 오리지널로 돌아오기 때문이래요. 저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다른 치킨은 먹다 보면 질리더라고요. 결국은 기본에 충실한 프라이드 치킨이 저의 근본적인 ‘치욕(치킨욕구)’를 채워주는 느낌이에요”

장재훈씨는 양념이 자작하게 배인 간장이나 마늘치킨에 표를 던졌다.

“프라이드 치킨은 맛이 약간 심심하고 일반 양념치킨은 양념이 너무 많이 묻어있어서요. 매콤 달콤한 간장이나 마늘치킨을 가장 좋아해요”

‘치맥’이 하나의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흔히들 치킨의 짝꿍은 맥주라고 생각하지만 윤여홍씨는 막걸리와 함께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정말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치킨과 막걸리를 같이 먹어도 맛있어요. ‘치킨이랑 막걸리를 먹어야지’ 해서 먹는 것은 아닌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반주로 막걸리 드시는 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집에서 혼자서도 막걸리를 자주 먹거든요. 그래서 치킨에도 막걸리를 종종 먹곤 해요”

   
▲ 아리랑TV, 동아일보 인터뷰 <사진 제공 = 피닉스>

피닉스가 생각하는 치킨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사람들하고 모이면 치킨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그만큼 여러 사람에게 친숙한 메뉴고 어느 장소에나 있고요. 편하고 쉽게 살 수 있는 것, 그래서 부담이 없는 게 치킨의 매력인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대학에 입학해 얼마 지나지 않아 만든 좌우명이 ‘나중에 살면서 배고플 때 먹고 싶은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삶을 사는 게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다’ 이었어요. 저한테는 치킨이 가장 쉽게 부릴 수 있는 사치 같은 거예요”

유 회장은 피닉스가 치킨의 인기에 한몫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치킨의 인기에 피닉스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치킨이 ‘치느님’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때가 저희 동아리가 생긴 시점이에요. 제가 실제 구글에서 날짜를 지정해서 검색하면 ‘치믈리에’, ‘칠렐루야’, ‘치킨복음’ 등의 단어가 피닉스가 생기기 이전에는 없었어요. 사람들이 치킨을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더 많이 치킨을 소비하게 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먹고 노는 동아리로만 비춰질까 걱정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피닉스는 ‘그런 동아리가 맞다’고 쿨하게 인정했다.

“저희 먹고 노는 동아리가 맞아요. 처음에는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했어요. 튀김의 바삭함, 양념과의 조합, 닭 크기, 국내산 여부, 매장 분위기 등을 평가하는 거예요. 평가를 지양하는 제가 회장이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없어진 거 같아요. 치킨 동아리라고 하면 백이면 백 어느 치킨이 가장 맛있냐고 물어봐요. 근데 그거에 대해서는 정말 답을 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항상 ‘가장 맛있는 치킨’이 아니라 ‘가장 기억에 남는 치킨’이라고 말해요. (평가를 하는 게) 치킨으로 생계를 이어가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 제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각자 취향은 다 달라요. 그냥 내 눈앞에 있는 치킨을 가장 맛있게 먹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 BBQ 치킨대학 방문한 피닉스 <사진 제공 = 피닉스>

그렇다고 해서 정말 놀고먹느냐,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신제품이 출시되기 전 시식 품평회를 갖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에서 저희한테 신메뉴에 대한 시식회를 열어 피드백을 받고 출시 전 반영을 하시는 편이에요. 출시된 메뉴 가운데 가장 최근에 시식한 치킨이 BHC의 ‘치레카’에요. 저희가 시식회 때 말씀드린 부분 반영해서 메뉴랑 맛을 구성하셨다고 들었어요”

이들은 ‘대한민국은 치킨공화국이다’라는 말에 굉장히 공감했다. 윤여홍씨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닭고기 소비량이 세계적으로 봤을 때 많은 편은 아님에도 치킨집 수는 맥도날드를 추월할 정도란다. 요즘은 국외에서도 한국 치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맛도 맛이지만 갓 튀긴 치킨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것도 큰 장점이란다.

“외국에서 판매하는 치킨은 그냥 프라이드 치킨에 그쳤다면 한국에서는 다양한 소스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드라마나 매체의 영향도 무시 못한다고 봐요. 중국에서 SBS ‘별에서 온 그대’ 때문에 치맥의 인기가 엄청났거든요”

“제가 군복무를 카투사로 했는데 실제 그 주변에서 가장 장사 잘되는 곳이 배달해주는 파닭집, 치킨 집이었어요. 미군 친구들이 제대하면 미국에서 같이 치킨집 내자고 할 정도였어요(웃음)”

피닉스는 치킨의 세계화를 위해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맛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세계화를 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세계화에) 방해되는 것 같아요. 이미 한국 치킨은 유명하고 이대로도 충분히 맛있기 때문에 굳이 특별하게 뭘 만들어낸다고 해서 더 인기 있을 것 같진 않아요. 그리고 최근 중국인 친구가 명동에 있는 치킨집에서 포장을 해왔는데 튀김 상태가 엉망이었던거에요. 돈을 벌기 위해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이런 식으로 장난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 (왼쪽부터) 유재은씨, 장재훈씨, 윤여홍씨 ⓒ투데이신문

최근 우리나라 양계농장은 역대 최악의 조류독감(AI)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조류독감으로 닭 소비를 망설이는 이들도 많다. 피닉스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치킨을 먹는 것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지 않냐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제가 이제까지 사는 동안 조류독감이 한두 번 유행한 게 아닌데 그럴 때마다 (조류독감을) 신경 써서 치킨을 안 먹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치킨은 저랑 늘 함께하는 존재에요”

“저희가 지금도 이렇게 치킨을 먹고 있잖아요. 저희 어머니도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제가 개의치 않고 먹는 모습을 보니까 괜찮나보다 생각하시더라고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치킨 소비량이 떨어졌어요. 그래도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조류독감이 발생한다고 해서 치킨업계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더라고요”

유 회장은 그동안 치킨을 먹기만 했다면 이제는 좀 더 생산성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저희가 닭을 먹어서 죽이기만 했잖아요,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닭을 보내서 경제 순환에 도움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난해 남은 회비를 이용해 연말쯤 보육원에 치킨을 보낼까도 했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의미가 더 커질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살아 있는 닭을 생각해낸 거죠. 우리한테는 별거 아닌 닭 한 마리지만 도상국에 가면 보다 큰 의미로 쓰일 수 있잖아요. 더 많은 수의 닭을 보내기 위해서는 기업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아요”

우리가 시킨 치킨이 바닥을 보일 무렵, 윤여홍씨는 이런 말을 했다.

“치킨 동아리라고 해서 특이한 게 아니거든요. 단순히 공통분모가 치킨이라는 건데 너무 이색 동아리로만 비춰지는 것 같아요. 이번에 신입생들을 만났더니 치킨 동아리에 어떻게 가입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피닉스가 아니더라도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치킨 먹으면 그게 동아리고 모임이라고 했어요. 처음에 형들이 피닉스를 즉흥적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까이에서 항상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네친구’ 같은 치킨과 피닉스의 뜨거운 우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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