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조만 남은 건물 사이로 보이는 성매매 업소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1980년대 최고 전성기 누렸던 집창촌 ‘청량리 588’
성매매방지특별법 이후 쇠퇴…현재 4개 업소 남아
2021년까지 랜드마크타워·주상복합건물 건설 예정
오는 3월 강제철거 시작…4월까지 이주 완료 계획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맑고 서늘한 바람이 분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청량리(淸凉里). 그러나 여기에 ‘588’이라는 숫자가 붙으면 소위 ‘환락’의 대명사가 된다. 국내에서 가장 큰 집창촌, ‘청량리 588’이다.

이미 20여년 전부터 재개발 및 철거 논의가 오가고 무산되길 반복해왔던 이곳이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재개발에 돌입했다. 오는 3월 본격 철거작업을 앞두고 있는 청량리 588로 지난 21일 본지가 향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2동 일대의 윤락업소를 가리키는 청량리 588. 이 명칭에 대해서는 학계도 그 유래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전농동 588번지나 588번 시내버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만, 실제로 이곳은 전농2동 620 및 622~624번지 인근이며 588번 시내버스는 이곳을 지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청량리 588의 역사는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 화천 등의 격전지로 군인들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경원선의 종점이었던 청량리역 부근에 군인들을 상대로 한 성매매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

그러다 1968년 서울시가 사대문 안의 집창촌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종로3가의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청량리로 대거 유입됐다. 강원도나 경기도 동부로 떠나는 청춘들, 그리고 인근에 위치한 경동시장 및 청량리시장의 상인들과 이용객들이 이곳을 찾으며 청량리 588은 점차 몸집을 불려나갔다. 청량리 588 여성들은 월등한 미모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소위 말해 ‘연예인 뺨 치는’ 인기를 얻기도 했다.

   
▲ 비어있는 업소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정부는 미관을 위한 환경개선사업을 통해, 커다란 유리를 통해 성매매 종사 여성들을 볼 수 있도록 이곳 업소들을 ‘유리방’으로 탈바꿈했다. 쉽게 말하자면 ‘쇼윈도’를 통해 여성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올림픽의 열기에 이러한 변화까지 더해진 덕분인지 그 해 청량리 588은 전성기를 맞았다.

청량리 588의 인기만큼 이곳을 두고 재개발 및 철거 논의도 수차례 오갔다. 1981년 서울시가 이곳의 정비계획을 발표했으나 추진에 옮기지는 못했다. 1994년에는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으나 업소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러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며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자 청량리 588 업소의 수익은 점차 줄기 시작했다. 문을 닫는 업소들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재개발계획도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늦어도 2021년까지 65층 주상복합건물 4개동과 랜드마크 타워 등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지난 2012년 발표됐다. 청량리가 겪은 것 중 가장 큰 재개발이다.

여기에 동대문구가 2015년 재정비 사업시행 인가를 고시하며 지난해 5월부터 이곳 업소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청량리제4구역도시환경정비추진위원회는 적어도 4월까지는 이곳 사람들의 이주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 X자가 그려진 ‘유리방’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 쓰인 표지판을 지나 골목 안쪽으로 가보니 ‘유리방’이 즐비했다. 대부분 업소에는 곧 철거될 곳임을 증명하듯 빨간 X자가 그려져 있었다. 빈 의자와 하이힐, 메이크업박스 등이 새빨간 X자 너머에 나뒹굴고 있었다.

   
▲ 건물 안에 나뒹구는 메이크업박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 유리방 안쪽에 놓인 하이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한편엔 이미 철거가 완료돼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에 펄럭이는 공사천막이 스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 천막이 드리워진 공사현장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이와는 대조적으로 환한 조명을 켠 곳도 있었다. 아직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업소다. 유리 너머의 의자에 앉아있는 여성들도 두어 명 있었다. 1980년대엔 200여개 업소가 자리잡았던 청량리 588. 현재는 4개 업소만이 불을 켜고 있다. 그렇지만 이곳을 찾는 손님의 발길도 아직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몇몇 업소들은 철거를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걸어놓기도 했다.

   
▲ (왼쪽부터) 철거를 기다리는 빈 업소와 아직 영업 중인 업소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전 세계적으로 성매매는 합법·규제·불법 등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완전히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청량리 588의 부정적 역사를 없애고자 하는 움직임도 거세다. 서울시의 지역 문화유산 보존계획에 포함됐던 청량리 588의 성매매 역사는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지난해 제외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이로써 청량리 588은 복원되지 않고 언급 정도로 끝난다.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등지에서도 이곳과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물 등은 게시되지 않는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청량리 588. 곧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설 이곳에 다시 청량한 바람이 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