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지난 구정 당일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차례 준비를 하다가 양초와 제사향이 모두 떨어졌음을 알게 됐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근 편의점들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하의에 타이즈까지 껴입고 중무장을 한 채로 추운 새벽, 밖으로 나섰다. 명절 당일 그것도 어둠이 걷히지도 않은 새벽 시간에 과연 편의점들이 문을 열었을까 싶었지만, 집 앞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편의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는 젊은 남성이 앉아 있었다. 혹시 양초나 제사향이 있을까요. 직원은 머뭇거리며 일어나더니 자신은 오늘 임시로 들어와 가게를 맡고 있는 거라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명절 새벽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점주가 급하게 데려온 알바생인 것 같았다. 나는 골목을 벗어나 바로 옆 차도로 나서기로 했다. 그곳에서 나는 약간 놀라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존재가 어둠 속에 잠들어있던 그 시각, 평소에도 유동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그 도로가에는 여러 개의 편의점들이 모두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곳에 편의점들이 그렇게 많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예전에는 밤길을 나서면 붉은 십자가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지만 이제는 초과노동과 한계임금이 집약되어 있는 편의점들이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에 새로 생긴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곳에 아직도 새로운 편의점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20대 초반의 젊은 여직원이 한창 물품 정리를 하고 있었다. 혹시 양초나 제사향 같은 물품이 있을까요. 어딘지 모르게 분주한 모습에 크게 기대하지 않고 던진 질문이었는데 직원은 과도하리만치 친절한 태도로 나를 한 쪽으로 안내했다. 제사향은 모르겠지만 양초 같은 물건은 이쪽 아래에 모여 있습니다.

네.

나는 짧게 대답하고 허리를 숙여 판매대 아래로 몸을 기울였다. 직원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쪽에 모여 있으니까 아마 거기에 있을 거예요. 거기에 없으면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제가 예전에 본 적이 있으니까 분명 거기에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확실히 기억을 하는 것은 아니라서... 직원의 설명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왠지 목소리의 톤이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직원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직원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몸이 휘청거릴 때마다 눈을 다시금 부릅뜨고서 방금 지나간 상황에 맞춰 대사를 내뱉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분주해 보였던 그의 모습은 어떻게든 몸을 계속 움직이면서 잠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기가 불편해서 나는 다시 몸을 숙여 판매대를 뒤적였다. 양초는 있었지만 제사향은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 말 없이 양초만 집어 들고서 카운터로 향했다. 직원은 양초를 계산해주면서도 계속 비슷한 내용의 말을 반복했다. 아까 양초 말고도 뭘 물어보셨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지만 나는 차마, 제사향은 혹시 없나요, 라는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양초가 든 비닐봉투를 받아들고 도로로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다른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점주로 보이는 아저씨가 피곤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어림짐작이긴 했지만 아마도 그 분은 명절 새벽에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셨기에 직접 매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을 게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골목길로 접어들기 전 잠시 도로 주변에 펼쳐져 있는 편의점들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문득 얼마 전 SNS에서 읽었던 어느 분의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절이 아닌 휴가다.” 아직은 어둠에 잠겨있던 명절, 새벽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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