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권 훼손 vs 종교의 자유…건축 전문가 “갈등 유발하는 종교 상징물 자제할 필요 있어”

   
▲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최근 가톨릭재단 여의도 성모병원 건물에 그려진 성모마리아 벽화(이하 성모 벽화)에 대해 인근 주민들이 조망권 침해 등을 호소하며 철거를 강력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병원 측은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기 때문에 철거 의사가 없다며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등포구청 측도 다수 주민의 민원에도 불구, 종교적 상징물은 옥외광고물로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강제로 행정적 절차를 밟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여의도서 ‘성모 귀신’ 출몰?···성모 벽화에 주민들 아우성

지난달 13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여의도 성모병원 주차타워 외벽에는 건물 전체를 뒤덮는 크기의 거대한 성모 벽화가 그려졌다. 치유의 기적을 상징하는 루르드 성모의 의미를 담아 내원 환자들의 쾌유를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

해당 벽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는 반면 일부는 그림이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너무 크고 공포스럽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해당 종교 신자가 아닌 이들도 있을 텐데 이는 강제적 전도행위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 리첸시아 아파트 B동 8층에서 바라본 성모마리아 벽화 ⓒ투데이신문

특히나 주차타워 맞은편 여의도 리첸시아 아파트 주민들은 더 심각한 피해를 호소했다.

총 248세대 가운데 약 35세대 정도가 관리실 혹은 민원을 통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B동 주민이라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리첸시아 B동 901호부터 4001호는 안방에서, B동 902호부터 4002호까지는 거실에서 벽화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실제 본지가 B동 8층 휴게실에서 관측해본 결과 벽화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벽화가 생긴 후로 커튼도 제대로 걷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며 이사까지도 심각하게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리첸시아 주민 A씨는 “그림이 어두운 데다 워낙 크고 공포스러워 ‘성모귀신’이 따로 없다”고 손사래 쳤다.

A씨는 “정말로 환자들의 빠른 쾌유를 바라는 뜻이었다면 병원 내부에서 볼 수 있도록 반대편 외벽에 그렸어야 한다”며 “(병원의) 종교적 성향은 이해하지만 성당도 아니고 해당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드나드는 병원에 굳이 성모 벽화를 그렸어야 했는지, 종교적 상징물을 이용한 병원 홍보가 목적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가톨릭재단 병원이 아니었어도 성모마리아를 그렸겠느냐”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특정 종교를 강요받는 것 같아 불쾌감을 느낀다”면서 “간부급에 해당하는 병원 관계자가 개인적 이력을 위해 일부 직원들의 부정적인 의사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벽화를 추진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불쾌감 및 조망권 훼손으로 인한 헌법적 권리인 ‘행복추구권’을 방해받고 있다며 아파트 내 서명 운동까지 벌이며 병원과 영등포구청 측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옥외광고물이 아니기 때문에 벽화 철거에 의무가 없을뿐더러 강제적 행정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옥외광고물’이란 공중에게 항상 혹은 일정 기간 노출돼 공중이 자유롭게 통행하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간판·현수막·벽보·전단 그 외에 유사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성모 벽화는 종교적 상징물이기 때문에 옥외광고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민원에 대한 영등포구청 측 답변 ⓒ투데이신문

행자부, 옥외광고물 여부 재검토 고려 중
영등포구청, 병원·주민 간 협의 필요해

행자부 옥외광고법령해석 담당자는 “앞서 영등포구청에서 이와 관련해 국민신문고를 통해 자문을 구해해왔으며, 해당 벽화는 옥외광고물로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면서 “당시에는 업소, 즉 병원 건물이라는 점이 언급되지 않았고 사진도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보완해 다시 한번 자문을 요청해달라고 구청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영등포구청은 현재까지는 옥외광고물로 판단되지 않기 때문에 행정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행자부에 다시 한 번 자문을 요청하기로 했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행자부 등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본 결과 옥외광고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돼 주민들에게 행정적 조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통지했다”면서 “다만 병원 측에도 강제 법규에 명시된 바가 없다 하더라도 인근 주민들을 배려해 내부적으로 의논을 거쳐 다른 계획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입장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원을 제기한) 주민을 대표하는 몇 분과 병원 측이 직접 만나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고 하루빨리 해결점을 찾는 것이 좋겠다 싶어 양쪽 모두에 의사를 전달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여의도 성모병원 “벽화 철거 의사 없어”

이와 관련해 여의도 성모병원 관계자는 벽화 철거에 대한 의사는 변함없으며, 내부적으로 그림 수정을 추진 중에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병원 홍보 및 전도행위 논란에 대해 “내원 환자들의 쾌유를 바라는 뜻일 뿐 병원을 홍보하거나 특정 종교를 전도할 목적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병원 간부급 관계자의 독단적 벽화 추진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또한 “벽화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담당 구청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민원인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병원으로서 질병으로부터 환자의 치료와 쾌유를 바라는 뜻을 토대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철거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다.

끝으로 “현재 벽화 업체 측과 수정 방향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며, 얘기가 마무리되는 대로 진행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필요한 경우 지역을 대표하는 병원으로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사안으로 협의하는 방향에 대해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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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전문가 “반감 유발하는 종교 상징물 자제해야”

이 같은 특정 종교 상징물 논란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앞서 고려은단에서도 2014년에 경부고속도로 신갈IC 부근에 ‘JESUS LOVES YOU’ 문구가 들어간 광고물을 설치해 ‘강제적 전도행위’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지방재정공제회 한국옥외광고센터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라 심의해 디자인을 승인했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해당 광고판은 철거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종교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탓인지 교회의 빨간 십자가, 성당의 성모마리아상, 절의 연등 등 종교 건축물 혹은 상징물을 도심 곳곳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를 단순히 자유로운 종교 행위로 인정해야 하는지, 특정 종교의 과잉된 전도행위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김영하 교수는 “(성모 벽화가) 환자의 쾌유를 바라는 취지라고 할지라도 병원은 해당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심 곳곳에 만연하는 종교 건축물 및 상징물에 대해 “주변과 어울리지 않거나 우리나라의 문화나 의식 수준을 넘어서는 것들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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