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비판적이었던 어느 정치인의 변신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탄핵에 들어갈 때 즈음만 해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연일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며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억울하다며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다. 이런 변신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외부자들’이라는 종합편성 채널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의 변신 이유를 밝혔다.

필자도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가 밝힌 변신 이유를 듣게 됐다. 그 내용을 보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에 대한 태도 변화 치고는 참 걸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입으로 밝힌 이유 3가지는 이렇다. 결국 나라가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위기의 본질은 첫째가 정치 리더십 위기, 둘째가 경제위기 셋째가 북한 핵 위기라신다. 여기에 위기 극복은 대통령이 해야 하는데, 촛불 시위했다고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정권을 바꾸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해설을 덧붙이셨다. 그러면서 촛불 시위 자체도 잔인무도한 시위라 몰아갔다. 심지어 집회에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언급하며 ‘폭도들을 몰아내야 되겠죠?’라며 선동하는 화면까지 비쳤다.

그러니까 김문수 전 지사의 논리를 정리해보자면, 북한 핵 위기와 경제 위기가 겹쳤으니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뜻으로 요약될 것이다. 그래서 촛불 들고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폭도’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겠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성립하려면,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리더십을 발휘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김문수 전 지사는 국민들이 왜 세월호 사건에 집착하는지,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도 ‘대통령이 사건 때 관저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공연히 따진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이건 ‘사고 났다고 대통령이 물에 들어가 직접 구할 것도 아닌데, 사고 시간에 어디서 뭘 하고 있던 무슨 상관이냐’는 청와대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식이라면 김문수 전 지사가 그렇게 강조하는 북한의 도발사태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 어떻게 될까? 하다못해 연평도 포격 사태가 박근혜 정권 때 일어났고,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 때처럼 굴었으면 어찌 되었을지 연상이 안 될까? 대형사고이건 전쟁위기에 몰린 상황이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에서 상황 파악이 가장 잘 되도록 시설을 갖추어놓았다는, 청와대 상황실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적절한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사고의 경우에는 사고 당한 사람의 희생으로 그칠 수나 있지만, 전쟁 위기에서는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대통령이 아무 지시를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전면전 같은 큰일로 번질 수 있다. 무력 충돌 같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현장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병사들이나 지휘관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반격의 충동을 느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군통수권자라는 대통령이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충돌이 확대되면서 끔찍한 비극으로 연결되기 쉽다. 현대전에 대해 기본만 알아도, 그렇게 확대된 충돌에서 날아오는 고성능 포탄 몇 발이면 몇 조에 달하는 아파트 단지 하나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상식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한다. 전쟁이던 대형 사고이던 대통령은 똑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대형사고 때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몇 시간 후에 나타나 ‘구명조끼 입고 있는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어려우냐?’고 헛소리할 정도로 사태파악이 되지 않았던 당사자가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래서 수백 명의 희생자가 난 다음에도‘자신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이런 식의 일처리가 잘못된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 사람이 전쟁 위기에서라고 다른 태도를 보이며 위기를 수습할 능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는 건가?

김문수 전 지사는 바로 그렇게 주장하는 셈이다. 그래서 북한의 핵도발 위기에 경제 위기까지 겹치는 상황이 되었는데, 위기 상황에서 몇 시간이나 나타나지도 않았던 대통령에게 위기 해결을 맡기기 위해 탄핵을 기각해야 한단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니, 김문수 전 지사께서는 국가적 재난 위기 때 박근혜 대통령이 보인 행태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기껏 인정해봐야 약간 무능했다는 점은 문제라는 식이다. 그런데 국가적 위기 때 대통령의 무능이나 무사 안일한 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국민이 그런 대통령에 운명을 맡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김문수 전 지사는 전혀 개념이 없을까? 그렇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자신이나 부서 수장 역할을 할 측근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비슷한 행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겠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래놓고 이런 정권이 바뀌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논리 역시 걸작이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종북세력이기 때문이란다. 이 자체야 자기 시각이 그렇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하겠지만, 진짜 걸작은 바로 그 근거다.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되면 김정은부터 만나겠다고 말했다는 게 그가 종북세력인 근거란다. 외교라는 게 상황에 따라 만나는 사람 순서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패널들의 반론에, 김문수 전 지사는 ‘외교의 외자로 모르는 소리’라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주적이고 미국은 동맹이니 북한 요인부터 먼저 만나면 종북세력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동맹인 대한민국 요인보다 김정은 먼저 만나면 트럼프도 종북 세력이라는 얘기가 되나. 굳이 미국 대통령 아니라도, 동맹인 미국 빼고 북한 요인 만난 대한민국 대통령도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가 측근인 이후락 정보부장을 보내 이른바 7.4공동성명을 이루어냈다는 점은 상식이다. 그러니 박정희 대통령도 미국 빼고 김일성 정권과 접촉했으니 종북세력이라고 몰아야 하나.

사실 적이고 동맹이고 가릴 것 없이 필요한 쪽과 접촉하는 거야말로 외교의 기본이다. 더욱이 핵 도발을 하려는 장본인이 김정은 정권이다. 미국과 아무리 얘기해 봐도, 왜 저러는 지에 대해서는 장본인보다 더 확실하게 얘기해 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저런 일을 벌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사태를 벌이는 장본인과 접촉은 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그런 판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는 판단착오의 문제일 뿐이지, 그게 북한을 추종한다는 ‘종북’이 될 수는 없다. 초등학생 수준만 되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이런 논리가 김문수 전 지사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일까? 물론 이해 못하는 건지, 하고 싶지 않은 건지가 진짜 문제겠지만.

이런 주장을 늘어놓은 다음, 김문수 전 지사는 현재 북한 핵도발에 대한 대책도 밝혔다. 1. 사드배치 2. 대한민국에 핵 배치 3.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이 그 대책이랍신다. 사드와 핵 배치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북한을 먼저 공격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지 김문수 전 지사는 개념이 없을 것일까? 입장을 바꿔 최근 중국이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대한민국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비교해보자. 며칠 전 중국의 강경파 장성 하나가, 외과 수술 하듯이 사드가 배치된 대한민국 영토를 공격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말대로 중국 폭격기나 미사일이 대한민국 영토 일부를 초토화시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저 ‘대국의 마음에 들지 않아 공격당했으니 참고 넘어가자’고 하게 될까? 그런데 나라 꼴이 벼랑 끝까지 몰려 작은 압박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북한이 공격받고 가만히 있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이럴 때 김문수 전 지사가 ‘선제 타격’을 하고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주장을 늘어 놓은 김문수 전 지사는 ‘현재 여당인 자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로 누가 좋겠느냐’는 패널들의 질문에 ‘자신이 가장 잘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손자들에게 위험한 나라 만들어 물려주면 안 된다’며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이런 분을 또다시 대통령을 뽑아 주거나, 아니면 정치인으로서의 영향력만 유지시켜 주어도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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